페라리가 아주 특별한 시승 행사를 마련했다. 아시아 최초로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각국의 기자들을 초대한 것.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승에 최근 국내 출시한 캘리포니아30, 캘리포니아, FF 등이 나왔다. 페라리 FF 홍보대사인 배우 연정훈 씨가 직접 페이스카를 몰며 기자들이 탄 차를 이끌었다. 한국 자동차 전문 매체로는 오토타임즈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1코스-FF(낙산해수욕장~한계령~낙산사)
첫 코스는 낙산해수욕장에서 한계령 휴게소, 다시 낙산사에 이르는 약 80
㎞ 구간으로 뱀처럼 꼬불꼬불한 길이 계속되는 와인딩 로드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패션 전문지 여기자와 함께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그란투리스모 FF를 탔다. 첫 기착지인 한계령 휴게소까지 동승석에서 FF의 다양한 기능과 함께 승차감을 집중적으로 체험했다.
동승한 여기자의 운전 숙련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소형차로 매일 출퇴근 한다던 그녀는 FF처럼 고급스럽고 큰 차는 처음이라고 했다. 내심 한계령까지 매우 급격한 곡선주로가 즐비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즐거운 마음으로 페라리의 성능을 느껴 보기로 했다.
FF(Ferrari Four)는 여러 면에서 기념비적인 자동차다. 우선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시스템이 탑재됐다. 오직 달리기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편안한 주행과 다목적성을 추구했다. 때문에 대중성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게 페라리 아시아태평양 사장 사이먼 잉글필드의 설명이다. FF 국내 출시 당시 방한했던 페라리의 엔리코 갈리에라 세일즈 마케팅 수석 부사장은 FF에 대해 "진화"라고 전했다.
실제로 FF의 외견은 기존 스포츠카만큼 부담스럽지 않다. 기본적으로 롱노우즈, 숏테크로 구성됐으며, 2도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엉덩이 부분은 다소 풍만하게 그려져 차의 성격을 대변한다. 이전 페라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디자인이다. 오히려 페라리 로고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자체로도 아주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고 있다.
FF에 장착된 4륜구동 시스템은 4RM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아우디의 콰트로, BMW의 X드라이브, 벤츠의 4매틱처럼 4륜구동 시스템의 브랜드 네임이다. 하지만 장치는 평범하지 않다. 일반적인 4륜구동과 차별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단일 구동축에 의해 후륜 트랜스 액슬이 엔진에 연결돼 있는 전통적인 프런트-미드 엔진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전륜에는 동력전달장치(PTU)가 엔진과 연결돼 앞 차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페라리 특유의 무게 배분인 47:53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PTU가 엔진의 토크를 네바퀴로 각각 전달하고, 제어하기에 일반 4륜구동과 달리 전륜과 후륜사이에는 어떤 기계적인 연결도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FF는 후륜스포츠카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면서 4륜구동의 주행 감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전륜의 경우 좌우 바퀴에 토크가 다르게 전달되는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적용됐다.
그래서인지 운전이 미숙한 여성운전자가 FF를 몰아도 전혀 불안감을 느낄 수 없었다. 흔히 초보 운전자들은 곡선 주로 주파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지만 FF는 스트레스가 크지 않아 보였다. 운전을 직접 한 말레이시아 여 기자는 "이 차를 운전하는 일은 마치 내 소형차만큼 쉽다"는 소감을 전했다. 처음엔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없을 만큼 긴장했던 그녀였지만 나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를 함께 이야기 할 정도로 여유를 찾았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스티어링 휠을 잡았다. 이전의 시승과 달리 차를 조금 격하게 몰 심산이었다. 아무래도 동승석에 앉는 것과 다른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FF의 움직임은 기대 이상이었다.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는 대로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이 명불허전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와인딩 코스에서 차를 급히 돌려봐도 중심을 잃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승한 여기자는 과격한 주행에 실내 손잡이를 잡았을지언정 적어도 운전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안정적일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어링 휠에 부착된 마네티노 셀렉트는 F1 머신에서 유래한 기능이다. SCM3, 자성유체 서스펜션, ABS/EBD, E-드리프트, F1-트랙, 4RM을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주행 감성을 택할 수 있다. FF는 총 5가지의 주행 모드(눈길, 젖은 노면, 컴포트, 스포트, ESC오프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행을 스포트 모드로 진행했다. 날카로우면서도 완벽한 코너링이 이뤄졌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와인딩 구간이어서 속도를 높여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FF에는 배기량 6,262
㏄ V12 엔진이 장착돼 최대 660마력, 70
㎏.m의 토크를 낸다. 최고 시속은 335
㎞,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까지 가속시간은 3.7초다. 7단 F1 듀얼클러치가 조합됐다. 연료효율은 ℓ당 6.5
㎞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약간 불만이다. 크라이슬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같은 피아트 그룹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가리켜 "완벽한 페라리에 딱 하나 허술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반면 조작은 매우 익숙해 편했다.
▲2코스(낙산사~정동진~낙산해수욕장)
코스는 낙산사에서 동해고속도를 거쳐 정동진, 다시 같은 코스로 낙산해수욕장까지 오는 경로였다. 시승차는 캘리포니아 30이 준비됐다. "에브리데이 스포츠카" 컨셉으로 만들어진 2도어 컨버터블 제품이다. 국내에서도 3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가 시작됐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것과 동시에 빗방울도 내렸다. 때문에 가장 기대했던 오픈 드라이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FF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말레이시아 기자가 운전을 했다.
캘리포니아도 페라리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우선 최초의 하드탑 컨버터블이고, 최초로 엔진을 앞쪽에 배치했다. 2+2 시트 개념으로 뒷좌석은 승차보다 적재에 유용하다. 차의 특성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수납공간 부족을 최대한 해결했다.
캘리포니아 출시 직후 그동안 페라리를 즐겨온 마니아들은 "페라리 같지 않다"고 비판했다. 차의 성격이나 세팅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캘리포니아 30은 차의 무게를 30
㎏ 줄이고, 출력은 30마력 높였다. 또한 핸들링 스페셜 패키지를 선택항목으로 마련, 다이내믹한 주행감성을 원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시승차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기존 캘리포니아와 외관상 차이점은 발견하기 어렵다. 외관보다 동력 성능 변화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페라리여서 외관상 차이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일례로 페라리에서 선보이는 테일러-메이드는 내장 시트 등을 청바지 같은 독특한 소재로도 꾸밀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적삼이나 삼베 등의 소재도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캘리포니아 30은 8기통 엔진으로 페라리에서 가장 낮은 배기량이다. 그렇다 해도 배기량이 4,300
㏄에 이른다. 일반차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최대 490마력, 51.5
㎏.m의 엔진 토크를 갖고 있다. 최고 시속은 312
㎞,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 가속 시간은 3.8초다. 7단 F1 듀얼 클러치가 장착됐다. 연료효율은 ℓ당 7.6
㎞ 수준이다.
직선 주로 일색의 고속도로여서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물론 페이스카 덕분에 위험한 주행은 되도록 피했다. 그래도 차의 성능을 충분히 뽑아내면서 달렸다. FF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캘리포니아 30의 성능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엔진음만큼 넘치는 힘이 차를 받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존의 캘리포니아와 배기음도 약간 다르다.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의 질을 높였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조금 더 역동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역시 페라리 마네티노가 적용됐다. 주행상황에 맞춰 컴포트, 스포츠, CST 오프 등 세 가지 모드가 지원된다. 컴포트나 스포트나 잘 달린다는 대전제는 결코 변함이 없다.
간간히 드러나는 곡선 주로에서도 매우 안정적으로 도로를 움켜쥐고 나간다. 약간의 흔들림이 있지만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이다. 그래도 급격한 코너에선 최대한 속도를 줄여 안전하게 진입 후 탈출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물리법칙을 피할 수 있는 차는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감안하지 않고 과격한 주행을 하면 사고가 된다.
제동 또한 훌륭하다. 전통의 스포츠카 제조사답게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는" 기본공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역시 캘리포니아 30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FF와 동일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조작은 익숙하나 페라리에 어울리는 외견은 아니다.
이번 시승 행사에 참여하면서 평소 접하기 힘든 페라리의 차를 타봤다는 것보다 한국 시장의 지위 상승이 더 기쁘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이외 장소에서 시승행사를 진행하는 일이 좀처럼 없을 뿐더러 아시아에서 최초로 시도됐기 때문이다. 초청된 기자들 또한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것을 크게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자동차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 한국보다 슈퍼카 시장이 성숙한 일본에 비해 판매량은 적을지 몰라도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페라리가 한국 시장 잠재력을 인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위상에 따라 페라리를 공식 수입하는 FMK는 올해 "페라리 오너스 클럽"의 본사 인증을 추진한다. 페라리 오너스 클럽은 페라리를 소유한 사람들의 커뮤니티로 특별하게 본사 승인 없이 정식 모임으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인증 요건에는 페라리 오너의 품위 등이 포함된다.
때문에 FMK는 페라리 오너스 클럽 발족을 계기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적극 실천하겠다는 각오다. FMK 유정훈 상무는 "페라리 오너스 클럽은 고가차를 타는 사람이 모인 단순 커뮤니티가 아니다"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페라리다운 선진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양(강원)=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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