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파주 임진각평화누리공원
서울에서 막힘없이, 또 부담없이 훌쩍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거기에다 달리는 즐거움과 다양한 볼거리까지 곁들여진 곳이라고 주문한다면 아마 선뜻 떠오르는 곳이 몇 되지 않으리라. 드문 그 몇 곳 중 망설이지 않고 손꼽을 수 있는 곳이라면, 파주시 문산읍의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을 들 수 있겠다.
많은 이들에게 "임진각"은 여전히 남북대립의 긴장이 흐르는 분단의 상징으로, 북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들이 명절이면 찾아가 그리움을 달래는 곳으로 여겨지지만 2005년 세계평화축전에 맞춰 조성된 평화누리공원은 임진각 일대 풍경을 확 바꿔 놓았다. 냉전과 분단을 넘어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3만 평 규모의 공원은 드넓은 잔디 언덕을 중심으로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공연장, 3,000여 개의 바람개비가 있는 ‘바람의 언덕’, 독특한 건물의 수상카페인 ‘카페안녕’ 등으로 구성됐다.
연못에 설치된 야외공연장의 객석을 겸한 완만한 잔디언덕은 그 자체만으로 구경거리다. 이스트섬의 모이모이상을 본뜬 대형 인물상을 비롯해 색색의 바람개비와 공공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셔터를 누르기 분주하다.
풍경 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더없이 발랄하고 생기 넘친다. 아이의 손을 잡고 연 날리는 젊은 아빠, 밀어를 속삭이는 다정한 연인들, 에너지 충만한 표정으로 활짝 웃는 젊은이들의 모습에는 그 어디에도 긴장감이나 비장함을 찾아볼 수 없다. 냉전과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을 그야말로 자유와 평화의 공간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바람의 언덕 위에는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계없이 이곳저곳을 맘껏 오가는 바람의 자유를 느껴보려는 것일까. 작은 바람에도 쉼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의 몸짓이 자유에 대한 갈망처럼 여겨진다. 설치미술가 김언경의 이 작품은 평화누리를 대표하는 풍경이 됐다. 음악의 언덕에 자리한 솟대집은 통일을 염원하는 솟대를 현대적으로 구성한 설치미술로 이 곳 또한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사진촬영장소다.
"카페 안녕" 앞의 설치미술도 눈길을 끈다. 거대한 수도꼭지가 물속에 박혀 있는데 이는 임진강과 한강이 서로 만나 서해로 흘러가듯이 분단된 우리 민족이 화합하고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설치미술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드넓은 공원 안을 거닐다보면 임진각평화누리공원에 담긴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읽혀진다. 그리고 여전히 임진각에 내재된 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일깨워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임진각 건물로 향하게 된다. 1972년 실향민을 위해 만든 3층 건물의 임진각은 암울한 시대의 상징물처럼 회색 콘크리트의 투박한 모습이었으나 현대식으로 리모델링됐다. 커피전문점과 캐주얼레스토랑이 들어선 것도 변화의 한 모습이다.
3층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과 DMZ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전쟁의 흔적들이 곳곳에 상채기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 경의선 철교와 자유의 다리, 실향민들이 합동차례를 올리는 망배단, 평화의 종, 통일연못, 장단역에서 옮겨온 녹슨 경의선 기관차도 보인다.
통일연못 위를 가로질러 놓인 작은 나무다리가 자유의 다리다. 이 다리는 1953년 전쟁포로 교환을 위해 가설한 것으로 당시 포로들이 차로 경의선 철교(임진각 철교)까지 와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지금은 다리 끝에 육중한 철문이 닫혀 있고 철문 너머로는 민간인통제구역이다.
가로막힌 철문에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적은 색색의 메모 리본과 깃발이 빛바랜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 자유의 다리 위편에 있는 임진각 철교는 예부터 장단면에 있는 자연마을의 이름을 따서 ‘독개다리’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각 전망대에 서서 독개다리 너머, 저 멀리 민간인통제구역 마을과 북녘땅을 조망해본다. 어디서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목덜미를 시원하게 훑고 지나가지만 망원경을 잡고 선 심정은 해갈되지 않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바람이 더없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리라.
*찾아가는 길
자유로를 타고 마정 분기점에서 판문점 방향으로 나가 도로 차단점에서 유턴 후 평화누리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된다. 혹은 1번 국도 통일로에서 판문점 방향으로 달려가 도로 차단점에서 유턴해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경의선 전철을 이용할 경우 서울역(지하철 1·4호선 환승) – 신촌 – 가좌 – 성산DMC(지하철 6호선 환승) – 수색 – 화전 – 행신 – 능곡 – 대곡(지하철 3호선 환승) – 곡산 – 백마 – 풍산 – 일산 – 탄현 – 운정 – 금릉 – 금촌 – 월롱 – 파주 – 문산에서 내린다. 문산역에서 ‘문산 - 도라산’ 관광열차 이용해 임진강역에서 하차.
9710번과 909번 버스를 이용해도 문산까지 올 수 있다. 문산터미널에서 임진각행 버스로 갈아탄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