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 용궁역 휴가철이 본격 시작되면서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 간이역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과 낭만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다. 출근시간에 쫓기고, 택시를 잡기 위해 뛰고, 심지어는 엘리베이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는 현대인들은 삶 자체가 늘 속도경쟁이다. 그러기에 시속 50km로 달리는 기차여행은 색다른 경험이고, 인적 드문 간이역을 찾는 건 바쁜 일상을 내려 놓는 쉼표다.
경북 예천의 용궁역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간이역이다. TV 드라마와 예능프로가 방영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옛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용궁역의 한적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많은 여행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붉은색 지붕의 아담한 용궁역사는 키 큰 나무들에 가려 제모습을 금방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낯선 이와 내외하듯 슬쩍 몸을 틀고 선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텅 빈 대기실의 긴 의자가 적막하다. 역무원도 없고 승객도 보이지 않는 빈 대기실엔 열차시각표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으로 나가면 여의주를 손(!)에 든 화려한 용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아마도 용궁(龍宮)의 지명 유래를 말해주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리라. 용궁면은 용담소와 용두소의 두 용이 이뤄 놓은 수중 용궁과 같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근처에 있는, 물돌이동으로 유명한 회룡포의 이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텅 빈 플랫폼 풍경은 오래 전 시간 속으로 거침없이 나그네를 이끈다. 벌겋게 녹슨 철로와 나무굄목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어린 시절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빠앙~" 기적이 울고, 열차바퀴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린 마음도 왠지 다급해지며 함께 달리고 싶었던 그 시절. 열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고장을 얼마나 많이 꿈꾸었던가.
하지만 현실의 기차역은 텅 비어 있다. 시간이 되지 않아서인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글거리는 한여름의 햇살뿐. 한때는 숱한 화물이 나가고 들어 와 쌓였을 창고도 텅 빈 채 잡초만 무성하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한 그 풍경 속에 핀 선로 변의 빠알간 다알리아 꽃송이가 눈물겨울 만큼 붉다.
용궁역은 김천과 영주를 잇는 경북선에 있다. 경북선은 김천역을 기점으로 상주, 문경, 예천을 거쳐 종점인 영주역에 다다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철도 노선이 수도권과 지방을 연결하고 있는 데 반해 경북선은 그렇지 않아 여객수송량이 적은 편이다. 이웃한 문경이 탄광으로 호황을 누리던 70년대만 해도 오가는 인파로 꽤 북적였던 이 곳도 탄광산업의 내리막과 함께 이용객이 서서히 줄어들고 2004년부터는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 간이역이 됐다.
경북선의 몇몇 주요 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간이역에는 "선택정차"를 한다. 하지만 이 곳 용궁역은 역무원이 없는 역임에도 "필정차"를 하는 간이역이다. 이는 주변 회룡포와 기타 관광지를 찾는 방문객들 때문이다. 경상북도는 지난 2009년부터 경북순환열차를 운행하며 경북 북부의 주요 관광지(상주, 문경, 예천, 영주, 안동, 의성)를 연계한 패키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용궁역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맛집
용궁역 앞 도로는 순대거리로 유명하다. 박달식당(054-652-0522)을 위시해 토박이순대(054-653-6038), 흥부네토종한방순대(054-653-6220) 등 소문난 맛을 자랑하는 순대 전문식당이 길게 이어진다.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1박2일>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박달순대는 실팍한 돼지 창자에 선지와 당면을 두둑히 넣어 만든 다양한 종류의 순대를 선보인다. 박달순대의 구수한 맛을 한 번 경험한 이들은 다른 순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찾아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예천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가 예천읍을 기점으로 삼는다. 회룡포는 예천읍에서 문경 방향 국도 34번을 타고 가다가 용궁면 소재지에서 LG주유소가 있는 샛길로 접어들어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5km 내외 혹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안동 방향으로 향한다. 점촌을 지나면 바로 용궁면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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