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서천 문헌서원 입추 처서 지나자 그 뜨겁던 폭염이 거짓말처럼 물러났다. "처서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에 그야말로 모기의 극성도 사라졌다. 옛 사람들은 모기가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타나는 때라며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처서를 경계로 확연히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길 떠나는 발걸음도 한결 여유로운 때다. 이맘때면 배롱나무 꽃 그림자가 멋스럽게 드리워지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도리에 위치한 문헌서원으로 떠나보자. 문헌서원은 고려 말 대학자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을 배양한 서원이다.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과 함께 고려 말 삼은(三隱)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가정 이곡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이곡은 다름 아닌 목은의 아버지로, 고려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학가로 손꼽힌다. 출중한 문장으로 원나라에까지 문명을 떨쳤던 그는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을 비롯해 100여 편의 시가 <동문선〉에 전해진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차마설>은 말을 빌려 타는 일상의 사소한 체험에서 삶의 태도를 발견하는 내용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동서천 분기점에서 나가 국도 29번을 타고 기산면으로 향하면 서천의 관광명소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한산모시의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는 한산 모시마을과 영화 JSA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밭이 있고, 문헌서원이 위치한 곳도 그 인근이다. 길가에 선 표지석을 보고 한적한 들길로 들어서면 말끔하게 단장된 문헌서원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와 여러 종류의 나무가 우거진 숲에 석조상이 자리하고 있다. 목은이색선조상이다. 석조상의 앉은 자리가 아직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 듯하다. 거북 등에 오석을 세운 큰 비석들도 입구에 주루룩 서 있는 모습이 제자리를 잡은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선조 27년(1594년)에 건립된 문헌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광해군 2년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 이듬해 나라에서 문헌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9년 지어진 것으로 1984년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문헌서원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는 강당과 진수당, 서재가 배치된 강학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강학 공간 뒤 한단 높은 대지에 사당을 배치한 묘당 공간이다. 이곳에 위치한 이색영당은 방문객들이 1순위로 찾는 대표적인 명소다. 사당 뒤쪽에 자리한 아름드리 백일홍을 보기 위해서다. 백일홍이 만개하는 8월이면 꽃이 가지를 따라 피어오른다. 지붕위로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백일홍 꽃이 사뭇 영당을 붉게 물들인다.
서원 안에는 3칸의 사우(祠宇), 이색선생 문집 목판각 등이 잘 보존된 창고,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 3칸의 목은영당, 목은선생 신도비, 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목은영당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0m 정도 가면 목은이색의 묘가 나온다. 이곳은 문헌서원의 좌측 기린산 중턱에 해당하는 자리인데, 이 묏자리는 무학대사가 잡은 곳이라고 한다.
*맛집
서천읍 삼거리에 위치해 상호도 삼거리칼국수(041-953-0233)는 서천의 소문난 맛집. 골목 안 허름한 외양과 달리 늘 손님들로 붐빈다. 30년 넘는 단골들도 많다. 메뉴는 오직 칼국수 하나. 계란을 풀고 석화가 듬뿍 들어간 칼국수는 얼큰하고 시원하다. 게다가 값은 싸고 양은 푸짐해 부담 없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 나들목이나 동서천 교차로에서 국도로 내려선다. 기산면 문헌서원 입구 삼거리에서 표지석을 따라 들어가면 마을안길 삼거리 지나 곧 문헌서원 주차장에 이른다.
이준애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