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까다로운 이성 같았던 F1

입력 2012년10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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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F1 취재였다. 모터스포츠 취재를 위해 자주 찾는 영암이지만 F1이 열리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은 지난 5월 슈퍼레이스와 KSF 통합전 이후 처음이다. 간혹 시승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상설트랙과 달리 이곳은 자주 접하기 어려운 곳이다.

 솔직하게 모터스포츠 부문을 배정받고 부족하게나마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 분야의 매력에 대해 차츰 알아가는 "초짜"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이런 기자에게 F1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일적인 측면을 떠나 한 사람의 모터스포츠팬으로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꼈다. 매년 전 세계 6억명 이상의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최고의 축제에 나도 동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알론소와 페텔의 명승부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설렜다. 이성과 전화상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만날 약속을 잡은 그런 설렘과도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기자의 넘치는 애정과는 달리 F1은 무척 까다로운 상대였다. 취재 신청부터 작성해야 했던 수많은 문서들, 한 달 이상 진행된 허가 절차, 각종 제한과 금지로 답답함이 느껴지던 취재 현장 등 F1의 첫 인상은 예민하고 콧대 높은 아가씨 같았다.

 그런데 이 아가씨,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다. 상대방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꾸 허점이 엿보인다. 사전에 신청한 기자 출입증이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하다던데, 동행한 타 매체 기자 두 명은 출입증에 사진이 서로 바뀌어있다. 이미 발급된 출입증이라 교체가 불가능하단다. 페독에 입장하기 위해 출입증을 센서에 접근시켰는데 갑자기 경보가 울린다. 락(lock)가 걸렸다며 진행요원이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그 곳에는 재발급이 불가능하다던 출입증이 분류도 채 되지 않은 채 산처럼 쌓여있었다.

 배포자료에서도 F1은 초면에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으로 단독 표기했던 것. 프리뷰 리포트라는 이 자료는 전 세계 기자들에게 배포되는 일종의 한국 GP의 소개글이다. 후에 해명자료를 받긴 했지만 F1에 대한 인상은 이전에 언론을 통해 전해들었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자꾸만 연상시키게 했다.

 그러나, 단연코 F1은 F1이다. 연습 주행부터 경주차의 퍼포먼스와 배기음은 빠르고 격렬했다. 페독과 미디어센터에서 만나는 팀 관계자와 외신기자들은 F1이 국제대회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아침에 페독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보면 선수들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페독 입구에 사진기자들과 해외 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유다. 경기가 다가올수록 드라이버들은 극도로 예민해지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전에는 서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팬들의 싸인 요청에 밝은 얼굴로 응하기도 한다.

 처음 영암서킷에 온다면 반드시 준비해야할 물건이 있다. 바로 귀마개다. 750마력짜리 엔진 24개가 내뿜는 배기음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소리를 낸다. 스릴러 영화에 종종 삽입되는 바이올린 고음 연주와 비슷한 소리가 수백 배 증폭된 느낌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관중들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시속 300㎞를 넘나드는 속도만큼이나 그 소리는 무자비하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소음일 수도 있는 이 소리야말로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이끄는 힘이다. 경주차들은 고막을 찢는 듯한 고음역대의 소리와 함께 놀라운 속도와 움직임으로 관중들의 혼을 빼놓는다. 골수 모터스포츠팬이라면 이것 하나만으로 모든 불편함을 용서할런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두 대회에 비해 많이 정돈된 느낌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제대로 갖추고 시작한 첫 대회다"라는 말도 들려왔다. 대회운영이 F1조직위로 일원화되고, 경기위원장과 의료책임자에 한국인이 배정되는 등 운영체계가 정리되고 국내 단체의 참여도가 높아져서다.

 실제 F1조직위에서도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완성도 있는 대회 운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목포대교를 비롯 각종 접근로의 완공에 힘입어 경기장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일단 성공한 모습이다. 경기장 주변은 물론 인근 주차장에는 셔틀버스가 넉넉히 배치돼 관람객들을 끊임없이 실어 날랐다. 첫 대회 당시 바가지요금과 함께 "러브호텔"로 비난을 받았던 숙소 문제도 많이 개선된 모습이다. 가수 싸이 초청을 비롯 각종 문화행사와 연계한 시도도 가족단위로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위한 풍부한 볼거리 제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결승전 후반, 서킷 한켠에 뜯겨져나간 인조잔디가 루이스 해밀턴의 경주차에 걸려 질질 끌려가는 장면이 방송화면에 잡혔다. 해외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국제행사에 맞지 않는 헤프닝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현장에서 처음 접한 F1 한국 그랑프리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더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의 경험에서 FIA와 F1조직위는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믿으며,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하고 친밀한 F1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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