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진델핑겐 디자인 센터 내에는 핸드볼 경기장 크기의 강당이 있다. 이 공간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곳으로, 벤츠 경영진들이 디자이너의 작품을 평가하고, 방향을 품평하는 곳이다. 물론 일체의 사진 촬영 등은 허락되지 않는다. 보안을 위해서다. 볼펜을 끄적거리며 스케치하는 행위도 제지를 받는다. 그만큼 디자인은 자동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브랜드 정체성을 내비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규 디자인 유출은 결말을 미리 알아버린 추리소설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 곳에서 메르세데스-밴츠 디자인 전략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홍콩, 대만의 일부 언론에게만 공개된 특별 컨퍼런스다. 미래 소형차 디자인과 벤츠의 전통 등 회사 내부 디자인 도전 과제와 철학 등도 공유했다.
현재 벤츠 디자인 부문은 전 세계 50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칼스배드 디자인 센터를 총괄하는 이일환 디자이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밖에 미국 팔로알토, 이탈리아 코모, 중국 베이징, 일본 요코하마, 그리고 이 곳 독일 진델핑겐 디자인 센터가 있다.
자동차 디자인은 브랜드 메시지를 형태 언어라는 표현법으로 전달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한 브랜드 디자인의 핵심가치는 총 3가지로 전통과 감성, 진보성으로 나뉜다. 이 중 전통은 1920년대 벤츠와 현재 벤츠의 동일한 이미지를 목표로 한다. 그동안 벤츠가 추구했던 업계 리더십, 품질, 역사, 혁신, 안전에 현대적인 감각, 고급스러움, 역동, 브랜드 유전자가 접목된다.
감성은 기본 비율이 가져다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도모한다. 이는 형태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게 디자인 전략 발표자인 클라우스 프렌젤 독일 선행 디자인 시니어 매니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브랜드 특유의 탄탄한 기본 비율은 누가 보더라도 벤츠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이다.
진보성은 미래 요소를 포함한 디자인 개념이다. 최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공기 역학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 공기 역학을 디자인에 강조한 것은 이미 1930년대부터 있어 왔던 일이지만 현재는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시도가 이뤄진다. 프렌젤 매니저는 4도어 쿠페 CLS를 예로 들며 벤츠 스포츠카 전통의 수직 그릴과 긴 보닛을 갖고 있으면서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공기역학적 선들로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고 전했다.
앞으로 벤츠의 모든 신차는 이 같은 핵심가치에 따라 제작된다. 소형차 디자인 전략도 다르지 않다. 소형차 전략에 따라 달라진 B클래스는 이전과 다른 역동성을 갖고 있지만 MPV 특유의 실용성을 담아냈다. 특히 수직 그릴을 접목, 전통적인 요소를 그려내면서 현대적인 해석이 가미됐다.
A클래스도 마찬가지라는 게 로버트 레스닉 승용차 외관 디자인 시니어 매니저의 설명이다. 특히 전통과 미래 조합을 중시한 점과 브랜드 자체의 자신감을 갖춘 것이 A클래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경쟁 브랜드의 내세우는 공격성은 철저하게 숨겨졌다. CLS에도 들어가 있는 드로핑 라인(Dropping line)이 적용돼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형태로 공기역학을 추구했다. 물방울에서 차용된 이미지로 진취성도 내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클래스나 B클래스 모두 세부 라인에만 신경 쓴 것도 아니다. 전체 비율 역시 소형차에서도 벤츠의 다른 차급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A클래스는 전체적으로 넓고 낮아진 스포츠카의 정형을 따르고 있다. 레스닉 매니저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이미지에서 풍기는 벤츠만의 독창성"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아키텍처에서 분리된 차종이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다. 레스닉 매니저는 "동일한 아키텍처라도 다르게 해석해 탄생시키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량"이라며 "최근 자동차 업계에 부는 자연 영감 디자인도 시류에 동참하는 것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형태언어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래야 최신 유행을 따르면서 한눈에 벤츠임을 알아볼 수 있는 훌륭한 벤츠 디자인이 탄생한다"고 정리했다.
진델핑겐(독일)=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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