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근대문화유산거리
군산의 근대문화유적지를 찾는 이들 중에는 더러 어디서 무엇부터 봐야 할 지 난감해한다. 그럴 때면 망설일 것 없이 군산내항을 기점으로 삼으면 된다. 왜냐하면 1899년 군산항(지금의 군산내항) 개항과 더불어 근대문물의 유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니 "문물의 유입"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군산을 장악하면서 군산은 수탈의 역사로 얼룩진 근대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군산은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세곡이 모이는 군산창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군산진이 설치됐던 경제, 군사적 요충지였다. 대한제국은 이러한 군산이 일본에 독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이 곳을 각국의 공동조계지로 정했다. 조계지란 개항장에서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지역이다. 하지만 군산은 일본제국주의의 필요에 종속돼 왜곡된 성장을 겪었다.
과거 군산진이 위치했던 자리에 일본영사관을 두고 본정통(현재 해망로)이라는 일본 도시의 가로명을 붙이며 도시를 형성해 갔다. 본정통을 중심으로 관공서 및 은행, 회사 등이 들어선 상업, 업무지구가 형성됐고 동남부의 군산역 부근에는 정미업을 중심으로 하는 공업지역이 만들어졌다. 당시 모습을 말해주는 게 지금 남겨진 군산의 근대문화유적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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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내항의 부잔교는 대표적인 일제 수탈의 상징이다.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여 "뜬다리 부두"라고도 불리는 부잔교는 1926~1938년 모두 4기의 다리가 건축됐는데, 3,000t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다리였다. 일제는 이 곳을 통해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조선 전체 쌀 수출량의 32.4%(1909년)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붉은 벽돌건물의 (구)군산세관과 일본18은행, 공사중인 옛 조선은행 건물 등이 모여 선 곳도 모두 군산내항 인근이다.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1908년(순종 2년) 만든 군산세관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다. 프랑스인인지 독일인인지가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 지었다고 하는 건물은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녔다는 군산세관의 건축사적 의의 너머에는 쌀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군산의 아픈 역사가 있다.
일본18은행과 (구)조선은행 등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곡물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금융기관들이다. 18이라는 숫자는 당시 총독부가 전국에 18번째로 허가해준 은행이라는 뜻으로, 당시 농민들에 대한 수탈의 최전선을 자임하며 일본 사업가들에 의한 미곡 반출, 토지 강매 등을 자행했던 곳이다. 초기에는 대부업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주고 이 돈으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 한 고리대금업으로 농민들의 농토를 갈취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이로 인해 더욱 부를 축적해 나갔고, 우리 농민들의 삶은 극도로 빈한해졌고, 군산항에 운반해 온 쌀의 하역작업을 했던 조선인들의 거주지는 조계지 밖 둔율동, 개복동 등의 산기슭으로 옮겨졌다. 군산 시가지는 자연히 지배와 피지배, 개발과 소외라는 이중성을 가지며 성장했다.
군산 신흥동에 자리한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은 당시 일본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일제시대 큰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살았던 집으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목조 2층 주택으로,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이 집은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콩나물고개 위의 토막집은 당시 조선인 도시빈민층 모습을 보여준다. 땅을 파고 가마니로 지붕을 만든 토막집은 청동기시대 반지하 주거형태와 비슷하다. 이 곳에 사는 이들은 남자는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고, 여자는 식모살이와 미선공을 하여 하루하루 힘들게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의 모습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3층 근대생활관으로 가면 보다 생생하고 자세히 볼 수 있다. 박물관이 위치한 곳도 군산내항 인근이다.
*맛집
군산의 근대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걸음이라면 중앙로에 자리한 이성당(063-445-2772) 빵집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에 문을 열어 현재까지 영업을 이어오는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앙금빵과 야채빵은 군산에서 전설로 통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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