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의 미국 내 연료 효율이 논란이다. 이른바 효율이 과장됐다는 게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주장이다. 지난 7월 시민단체 컨슈머 워치독의 문제 제기를 미국 정부가 인정하면서 한국차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컨슈머 워치독의 연비 과장이 오히려 과장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컨슈머 워치독의 효율 논란이 유독 일본 및 한국차를 겨냥하고 있어서다. 워치독은 현대차에 앞서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의 효율도 과장됐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혼다는 시민단체 압력에 못이겨 20만대에 200억원을 배상해야 했다.
반면 2009년 GM이 파산했을 때 워치독은 미국차 구매를 적극 주장한 바 있다. GM 회생에 미국인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GM차를 많이 사는 게 곧 "미국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당시 GM차를 가장 많이 위협하는 경쟁사가 일본차와 한국차였다. 이번 워치독의 현대차 효율 문제 제기에 특정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 이번 연비 과장 논란의 중심에는 현대차가 아니라 미국 환경보호청이 있다. 미국도 국내와 마찬가지로 모든 완성차 효율의 공식 측정은 정부가 관장한다. 따라서 환경보호청이 이미 공식 효율로 인정한 부분이 잘못됐다고 스스로 부정하는 형국이 됐다.
근본적인 이유는 코스트 다운(Coast Down) 시험의 도로 조건 때문이다. 자동차 효율을 측정하기 위해선 자동차가 탄력 주행할 때 도로 마찰력을 산출, 컴퓨터에 기입해야 한다. 발생하는 모든 저항을 감안해 연비 측정 전에 조건을 만드는 셈이다. 저항 값은 제조사가 국제 시험 규격에 따라 데이터를 뽑은 뒤 이를 연비 측정 기관에 제출토록 돼 있다. 현대차 미국 공인 효율은 현대차가 내놓은 도로 저항값이 반영됐다.
현대차는 국제 기준을 준수해 한국 내에서 시험을 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결과를 미국 환경보호청에 제출했고, 미국 연비 시험은 환경청이 주도했다. 그러나 변수는 도로였다. 미국과 한국의 도로 표면이 달랐다는 얘기다. 미국 도로는 시멘트 재질이 많고, 한국은 아스팔트가 대부분이어서 상대적으로 거친 시멘트 도로의 저항이 더 높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도로 저항 값을 다시 산출했고, 이를 대입시켰더니 효율이 일부 하락했다는 게 이번 논란의 요지다.
도로 저항 값은 국내에서도 적극 활용된 바 있다. 지난 2009년 BMW가 국내로 들여오는 완성차의 도로 저항 값을 별도로 측정, 효율을 높인 적이 있다. 당시 시험을 진행했던 회사 관계자는 "시험 결과 국내 도로의 저항 값이 낮았고, 이를 정부에 제출해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오른 적이 있다"며 "한국 도로의 표면이 매끄럽다는 얘기와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도로 차이를 감안하지 않는 것은 현대차의 실수다. 현대차는 의도하지 않은 잘못을 인정하고, 90만대에 860억원을 보상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현대차에 떠넘기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제조사가 내놓는 도로 저항 값의 검증을 하지 않은 곳이 미국 정부여서다. 게다가 과거 워치독의 미국차 구매 촉진까지 떠올리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간 자동차전쟁의 서막이 열리는 것 같다. 오래 전 "자동차는 산업 민족주의 상징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던 일본 내 원로 자동차칼럼니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자동차가 차지하는 산업비중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 한국 모두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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