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현대차, 애스톤마틴 인수를 상상하다

입력 2012년11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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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의 테어다운
 
 최근 쿠웨이트 투자사인 다(Dar)社에서 매물로 다시 내놓은 애스톤마틴을 현대차그룹이 매입한 뒤 고급 브랜드 런칭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많은 독자들은 현대차가 고향(한국)에서 대접받지 못한다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게 본다.  현대차가, 그것도 007의 애마이기도 한 영국의 애스톤마틴을 인수한다고? 굳이 영어로 표현하면 쓸데 없는 의미의 "러비쉬(Rubbish)"가 떠오른다. 

 반면 삼성전자가 캐나다 블랙베리를 인수한다는 소문부터 최근 미국의 2대 CPU 제조업체인 AMD 인수설은 가능성이 높게 본다. 한국의 필라가 세계적인 골프업체 타이틀리스트 인수도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던가?


 물론 현대차그룹이 고급차 브랜드 인수 후 성공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는 분명 있다. 이웃 나라 일본 업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1989년 미국 시장 점유율 10%였던 토요타는 당시 회장이던 도요다 소이치로의 지시 아래 "렉서스"라는 고급 브랜드를 북미 시장에 런칭한다. 혼다는 이미 2년전인 1987년 고급차 브랜드 아큐라를 소개해 실리콘 밸리 신흥 부자 사이에서 인기있는 레전드를 비롯해 훗날 페라리를 긴장시킨 NSX와 같은 명차를 연이서 선보였고, 닛산 또한 토요타와 마찬가지로 1989년 인피니티를 만들어 고급차 업계를 일시적으로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 BMW와 벤츠의 북미 판매량이 급감했고, 벼랑에 몰린 포르쉐는 대우차 또는 토요타에게 매각된다는 소문이 무성할 정도였다. 벤츠 E클래스 가격이 4만 달러 이상인 당시에 S클래스와 맞먹는 LS 1세대가 3만8,000달러에 등장했고, 고장률은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3년이 지난 지금, 렉서스는 북미 시장과 한국을 제외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미미하다. 유럽에선 람보르기니 이상으로 보기 드물고, 중국은 아우디나 BMW에게 밀려 오히려 희소가치가 독일 고급차보다 높은 상황이다.


 왜 이럴까? 결국 소비자들이 명품을 선택할 때 보는 것은 브랜드 역사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고급차 또한 명품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즉 23년 전 렉서스와 아큐라, 인피니티는 중고가 차종으로는 훌륭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가격상승에 비례할 수 있는 "명품"류의 신비감을 만들지 못했다. 또한 세계 최고 제조품질이라는 초반 마케팅은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 뿐 고풍스러운 유럽 귀족들이 경주에 몰고 나가 승리를 했다거나, 1960년대 007 영화의 멋진 MI6 스파이가 애마로 삼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BMW나 벤츠 등 전통 유럽 브랜드와 같은 가격에서 승부를 건다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반면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브랜드를 인수해 높은 제조품질과 기술력을 투입, 명성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사례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우선 "공무원 전용"으로 인식되던 아우디와 저질품질로 망하기 직전의 폭스바겐은 기술과 디자인 고급화를 통해 쇠퇴하던 운명을 바꿔놓았고, 저가 브랜드인 세아트와 스코다는 물론 최고급 벤틀리, 람보르기니, 부가티, 그리고, 포르쉐까지 성공적으로 인수해 급속 성장을 이뤄냈다. 폭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 중 포르쉐를 제외한 모든 고급차가 역사와 전통은 있었지만 인수할 당시 너무 쇠락해서 아무도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폭스바겐그룹은 브랜드를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만들기보다  과감한 인수 및 공격적인 통합을 통해 비유기적(Inorganic) 성장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인도의 타타그룹 또한 같은 범주에 든다. 한편으로는 세계 최저가 차인 나노를 만드는 반면 2008년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해 양사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물론 타타 또한 폭스바겐과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자(라탄 타타)가 이런 비유기적인 성장을 도모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매물로 나온 애스톤마틴의 인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면 어떨까? 행여 일부 소문처럼 현대차가 V12 엔진의 슈퍼카를 개발 중이고, 제네시스를 독자 브랜드로 만든다 해도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는 렉서스와 같은 험하고 기나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만 명백할 뿐이다.

 사실 필자는 애스톤마틴의 경우 현 시점이 재규어/랜드로버처럼 인수하기 좋은 시기로 보고 있다. 우선 애스톤마틴은 기존 포드 오너십 때 사용하던 포드 엔진(벤츠 엔진도 사용하고 있다) 및 플랫폼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향후 유럽과 미국시장 연비상향에 대응하기 어려운 슈퍼카 위주로 구성된 제품군을 고연비 대중차로 희석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대차가 제네시스 1세대(BH)때 개발해놓은 후륜구동 플랫폼 및 각종 파워트레인(엔진 및 변속기)을 애스톤마틴에 공급하면서 기술향상을 꾀한다면, 특히 벤츠처럼 차종 다양화를 통해 현재 20만 달러 가격대에서 10만 달러 대까지 내린다면 판매량 증가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즉, 에쿠스 6~7세대(또는 그 이상)에 이르러야 볼 수 있는 대당 10만 달러의 차종 ASP를 순식간에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현재 애스톤마틴에게 관심을 표하는 회사들은 인도의 마힌드라와 토요타로 알려져 있다. 이 때 현대차가 관심을 표하고 적극 시도한다면 양사보다 인수 가능성은 더 높다. 토요타는 이미 렉서스가 있어 애스톤마틴을 현대차만큼 공격적으로 키우기 어렵고, 마힌드라는 SUV와 트럭 위주여서 애스톤마틴의 역사와 기술 발전 속도가 더딜 수 있다. 게다가 애스톤마틴이 요구하는 인수 대금 8억 달러는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10조원 이상의 현금으로도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는다. 또한 애스톤마틴에 추가로 들어가는 투자금도 현대차그룹이 충분히 공유할 수 있어 향후 필연적인 고급차 브랜드 런칭의 짐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다. 


 얼마 전 삼성전자 핸드폰 개발자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3류는 가격으로 호소하고, 2류는 가치로 호소하며, 1류는 감성으로 호소한다". 2류와 1류 사이에서 방향을 못잡는 일본 자동차 업체의 고급 브랜드 현실을 볼 때 현대차그룹은 그들의 염원이기도 한 고급차 브랜드를 새롭게 그릴 수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이 필요한 상황이다. 독자 브랜드 런칭은 결국 리스크 때문에 일단 내려놨지만 언젠가는 대중차를 뛰어 넘어 고급차 시장에서 날개를 펼쳐야 한다. 기아차에서 근무하던 시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꾼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애스톤마틴을 현대차 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박관영(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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