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 세미원 & 연꽃박물관 계절이 계절인 만큼 썰렁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나 양평으로 나들이한 걸음이라면 이곳을 빼놓긴 좀 아쉽다. 양서면 용담리에 자리한 세미원과 연꽃박물관이다. 팔당호가 삼면에 둘러싸인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물과 꽃의 정원"이다. 드넓은 세미원의 곳곳을 살피기엔 겨울 강바람이 더없이 매섭지만 그래도 발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곳들이 한둘 아니다.
세미원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연꽃박물관이다. 진흙 속에서 성스럽게 피어나 군자의 꽃이라 불리고, 종자가 많이 달려 다산의 징표로도 여겨지는 연꽃은 한국인의 생활 속에 폭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꽃이다. 불교가 이 땅에 정착되면서 불상의 좌대나 광배에 조형된 연꽃 문양을 시작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인들의 생활 속에 다양하게 자리 잡아온 연꽃은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일생생활 속에 화려하게 담겨져 왔다.
이러한 연꽃 관련 유물 1천여 점을 한데 모아 지난 2010년 문을 연 연꽃박물관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2층과 3층 전시실에는 연꽃과 관련된 생활용품을 비롯해 고서, 음식 등 다양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책을 중심으로 문방사우나 이와 관련된 물건을 구경한다는 뜻의 책가도, 삼강오륜의 교훈적이고 길상적인 뜻을 지닌 문자를 통해 소망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그림 문자도, 온갖 꽃과 새들이 등장하는 화조도, 물고기와 조개류 및 게 등을 그린 어해도 등이 있다.
황해도 해주 지역에서 만든 소반인 연꽃무늬 해주반, 한국인이 즐겨 먹는 떡인 절편에 무늬를 찍은 연꽃무늬 떡살 연꽃 등 음식 관련 전시물을 비롯해 연꽃잎을 두룬 청자상감연화문대접, 혼례에서 신부가 비녀에 걸어 늘어뜨렸던 고이댕기, 불교에서 아키타여래가 극락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탱화 아미타극락회상도, 돌 지난 어린아이가 썼던 모자인 밀화굴레, 꼭지 부분을 연꽃 봉우리모양으로 꾸민 멋스러운 연봉숟가락, 태어난 지 일 년 되는 아이에게 입히는 저고리와 돌띠인 연꽃무늬 돌저고리 및 돌띠, 연꽃 문양이 새겨진 연화문수막새 등 다양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세미원 정원으로 나오면 다양한 테마가 기다린다. 일 년 내내 아름다운 수련 꽃을 볼 수 있는 수련전시관을 비롯해 한반도 지형을 본 딴 뜰 국사원, 특이한 장독대 분수, 정자가 멋스런 페리기념연못,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본 뜬 세한정, 동전 모으기를 실천하는 사랑의 연못 등이 이어진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열수주교.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 위로 놓인 다리는 정조 임금의 효와 정약용 선생의 지혜를 기리는 배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두물머리에 조성된 석창원으로 이어진다.
물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 가운데 우리 선조들이 정서적으로 가까이 했던 식물을 꼽는다면 연과 석창포이다. 세미원이 연과 수련이 펼쳐진 곳이라 한다면 석창원은 문자 그대로 석창포 위주의 온실이다. 석창포는 현대인에게 생소한 식물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문방오우(文房五友)라 하여 붓, 벼루, 먹, 종이 등과 함께 선비의 서재엔 필수의 식물이었다. 맑은 물가에 맑은 물만 먹고 살아 선비의 청빈사상과 일맥상통하고, 선비의 방에서 등장 그으름을 없애주는 웰빙식물이었다.
이밖에도 세미원에는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여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예술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고 또한 물 관련 문화재들과 시등(詩燈)들도 설치되어 자연과 문학과 미술이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찾아가는 요령
6번 국도를 타고 양평 방향으로 향한다. 신양수대교를 건너자마자 우측 양수리 방향으로 진입해 500m 가면 양서 문화체육공원이 나온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미원으로 입장하면 된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