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마음 내려 놓고 새해 새 마음 채운다

입력 2012년12월2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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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사


 전국의 이름난 해넘이& 해맞이 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날을 맞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올해도 변함없는 행렬을 만든다.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향하는 사람들, 더러는 높은 산정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새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저마다 사연들을 안고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 날을 마주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그 반대의 새해맞이는 어떨까. 왁자지껄한 인파 속이 아니라 인적 드문 산사에서 풍경소릴 벗삼아 새 날을 계획해 보는 건?



 겨울 산사에는 여름 절집에서 듣지 못하는 심연의 소리가 있다. 내면을 울려 오는 깊고도 묵직한 그 울림은 한 햇동안 소진된 빈 가슴을 어루만지고 채워준다. 서두를 것도, 급할 것도 없다. 낙엽 진 숲길을 만나 호흡하고, 맑은 바람 속을 거닐어 절집에 다다르면 세상사의 시름이 저 만치 물러난다. 아쉬움과 미련도 찬 바람에 씻긴다. 겨울 산사로 떠나는 걸음은 내 안의 길을 찾아가는 사색의 여로이기도 하다.



 때마침 서설이라도 내린다면 절집 풍경은 선물이 따로 없다. 눈길 주는 곳마다 그대로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눈을 가득 인 법당 지붕들이며,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가녀린 움직임, 화려한 단청과 어우러진 순백의 눈, 요사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마저 그림같은 설경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든다.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언제 찾아가도 깊고 고요한 분위기가 마음을 정갈하게 하지만 텅 빈 겨울 풍경은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을 일깨워준다. 천년고찰이 품은 세월의 나이테를 더듬으며, 인적 뜸한 절집 마당을 조용히 거닐다 보면 마음 속에 가득찬 온갖 욕심과 이기심, 번뇌들을 하나둘 내려 놓게 된다. 감로수를 꽝꽝 얼어붙게 하는 매서운 추위에도 가슴 저 밑바닥에 얼지 않는 샘 하나가 자리잡는 듯하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자리한 구인사로 가면 겨울 절집 풍경이 색다르고 풍요롭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는 40여 동의 거대한 고층건물과 각종 현대식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 번에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국내 최대 법당을 비롯해 평소에도 절집 자체가 볼거리인 이 곳은 기막힌 설경을 자랑한다.
 
 소백산 연화봉 등성이를 따라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절 건물들이 눈 속에 묻히며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화려함도, 거대함도 눈 속에 묻히고 주변 산세에 먹물처럼 스며들어 한 폭의 수묵화로 피어난다. 조사전 절 마당을 수놓았던 화려한 등 위로도 아낌없이 눈발이 내려앉았다.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자리한 거조암은 또 어떤가. 장식도, 단청도 없는 간결하고 단순한 절집은 수식이 필요없는 겨울 풍경과 잘 어울린다. 어찌 보면 밋밋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거조암 영산전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속에 담긴 절제된 단순함의 미학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거조암을 찾는 이들은 영산전에 모셔진 오백 나한의 모습에서 또 다른 위로를 얻기도 한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오백나한상의 모습이 천차만별, 각양각색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익살맞은 얼굴로, 더러는 하품을 참고 있는 듯한 모습도 있고, 한쪽 무릎을 세워 안고 심드렁히 귀를 기울이는 나한도 있다. 마치 속세의 인간군상을 보는 듯한 그 모습에 절로 피식, 웃음이 난다. 세상사 다 그렇고 그런 것, 연연해할 것 하나 없다는 깨달음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획하는 이 맘 때, 더 절실히 와 닿는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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