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예당관광지 진눈깨비처럼 날리던 눈발이 예산을 지날 무렵 맹렬한 기세로 차창에 달라붙었다. 미련없이 와이퍼를 작동해 눈발을 내쫓다가 문득 그 곳으로 방향을 튼 건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던 안도현의 시 <겨울 강가에서>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한적한 국도는 벌써 눈 속에 묻히기 시작했고, 얼어붙은 예당저수지는 "뛰어내린 어린 눈발"들로 새하얀 눈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 이런 눈 속에선 길을 잃어보는 것도 어떠랴. 느슨해진 감상으로 무작정 향했던 그 곳엔 뜻밖의 겨울풍경이 나그네의 언 마음을 녹여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전국에서 온 낚시꾼들이 사시사철 끊이질 않는다는 예당저수지는 그 명성답게 눈 속에서도 얼음을 깨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텐트가 색색으로 수놓고 있다. 무채색의 풍경 속에 컬러풀한 그 풍경이 즐거운 편지처럼 읽혀진다. 얼어붙은 호수면 위로 솟은 나목과 갈댓잎이 멋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자 그 모습을 담기 위한 사진동호회 사람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1962년 만든 예당저수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했다. 수면적 329만여 평으로,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자 중부권 최고의 낚시터로 유명하다. 겨울철 얼음낚시를 비롯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데 주로 붕어, 잉어를 비롯해 뱀장어, 가물치, 동자개, 미꾸라지 등이 잡힌다. 저수지를 끼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곳곳에 분포된 100여 개의 수상좌대가 낚시터의 명성을 잘 말해준다.
국도변 표지판을 따라 예당관광지로 들어서면 풍경은 더욱 그윽해진다. 충남 예산군 응봉면 후사리와 등촌리 일원에 조성한 예당관광지는 예당저수지를 중심으로 조각공원과 산책로, 야영장, 잔디광장, 야외 공연장 등 여러 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다.
2004년 조성한 조각공원은 위치와 구성이 오래도록 발길을 잡는다. 바다처럼 드넓은 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들어선 조각공원에는 공모작가의 작품과 중견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빛을 낸다. 가슴을 힘껏 내밀고 도약하는 듯한 젊은 나신, 끊임없이 퍼주는 할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화수분’, 청솔 아래 드러누워 책 읽는 조각상 등이 있다.
조각공원에서 판 다리품을 쉬어갈 수 있는 근사한 카페도 근처에 있다. 야외공연장이 보이고, 저수지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는 연인들에게 인기다.
추운 날씨와 눈 때문에 인적이 끊겼지만 저수지에 만든 산책로도 예당관광지의 인기코스다. 나무데크가 연결된 길은 1시간 정도 걷기에 적당하다. 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하류쪽인 응봉면 후사리에 마련한 팔각정을 찾는 게 좋다. 예당호와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몸과 마음의 휴식을 돕는다.
시나브로 눈발이 가늘어진다. 예당호로 뛰어드는 어린 눈발들도 점차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꽁꽁 언 수면 위에는 하얗게 쌓인 눈이 순백의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다시 안도현의 시를 되뇌인다.
‘....그런 줄도 모르고 / 계속 철 없이 철 없이 눈은 내려, /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찾아가는 길
서울 → 서해안고속도로 → 대전당진간고속도로 → 예산·수덕사IC → 예산 → 국도 21호선(35㎞) → 군도 3호선(3㎞) → 예당저수지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