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거닐고, 음미하고, 사랑했던 도시

입력 2013년03월0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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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기행 ⑥ 이탈리아 피렌체


 
비다. 피렌체 중앙역을 빠져 나왔을 때 오락가락하는 빗줄기가 먼저 다가왔다. 역 건너편으로 비에 젖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우울하게 보였다,라고 한다면 "꽃의 도시" 피렌체에 대한 모독이겠다. 오래 전 기억 속에도, 책자나 화면을 통해서 만난 피렌체는 늘상 꽃 같은 화사함으로 남아 있건만 우울이라니.

 
비 때문이리라. 하필이면 피렌체에서 비를 만나다니.....의기소침해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빗물처럼 중세도시 피렌체로 스며들었다.


 "어? 이 건물, 넘 재밌어요. 아수라 백작처럼 두 얼굴을 하고 있네요!"

 
이럴 때 자신의 역할이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종종종 앞서 가던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평소보다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녀석이 가리키는 건물은 좀 전에 본 그 우울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하지만 정면에서 본 그 모습은 좀 전에 본 뒷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얼핏 보기엔 다소 높고 단순한 바실리아풍의 건물이지만, 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단정한 기하학적 무늬며 둥근 창, 맨 밑부분의 장식 등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욱 화사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피어났으리라.


 
비로 인해 우울했던 마음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반전처럼 일순 환하게 갠다. 그래, 여긴 꽃의 도시라 일컫는 바로 그 피렌체가 아니던가. 저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 학자와 정치가들이 모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 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는 르네상스 문화를 꽃 피운 곳이 아니던가! 그들이 거닐고 그들이 음미하고 그들이 사랑했던 피렌체를 어찌 비로 인해 망설일 수 있으랴. 우리는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마키아벨리, 지오토,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만나기 위해 힘차게 걸음을 옮겨 놓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피렌체는 걸어서 다니기 좋은 도시다. 좁은 골목의 끝에는 넓은 광장과 고풍스런 건물이 나타나고, 어디에서나 보이는 두오모는 길을 잃어도 이정표가 되어준다. 아니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 보이는 건물마다, 펼쳐지는 골목마다 중세의 역사와 르네상스 시대의 흔적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있기 때문이다.


 
두오모는 그 중심에 있다. 반원형의 붉은 지붕 큐폴라(cupola)와 대리석으로 치장된 정교한 벽면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1296년에 공사가 시작돼 1446년에 완성된 두오모의 정식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성모교회라는 뜻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피렌체로 향하게 했다.



 
두오모 입구 남쪽에 있는 종탑은 "조토의 탑"으로 불리는데, 건축물 자체의 웅장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못지않게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풍경은 압권으로 꼽힌다. 붉은 지붕으로 뒤덮인 고색창연한 그 모습은 어떤 수식어를 덧붙여도 부족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피렌체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산 조반니 세례당은 4세기경에 지어진 건물로, 두오모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례당 자체보다 부조가 새겨진 3개의 청동 문이 더 유명한데, 특히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예찬했다는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동쪽 출입문은 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시뇨리아 광장은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중심이 되었던 곳답게 주변으로 베키오궁전과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볼 수 있는 로자 데이 란치, 우피치미술관 등과 연결된다. 15~16세기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가졌던 메디치가문은 르네상스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메디치 가문이 살았던 베키오궁전과 이탈리아 최고 미술관으로 꼽히는 우피치 미술관으로 가면 화려하게 꽃피운 르네상스 문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아르노 강에 놓인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도 피렌체의 명소 중 한 곳이다. 아르노 강에는 10여개의 다리가 있지만 2차세계대전과 홍수로 파괴되어 이후 건립되었으나 폰테 베키오만은 1345년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이 다리 위에는 금속공예품과 가죽제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온 이탈리아 장인들의 솜씨와 명성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곳이다.


 
강 건너 언덕 위에는 피렌체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이 있다. 붉은 지붕들 사이로 우뚝 솟은 두오모와 종탑이, 아르노 강을 가로지른 오래된 다리들이 꿈결처럼 아스라이 펼쳐진다. 문득 시간을 거슬러 르네상스 시대의 어느 한때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인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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