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기행⑦ 영국 런던 흐리고 변덕스런 날씨로 유명한 영국답게 런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방인을 맞았다. 영상의 기온임에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스산한 기운에 자꾸만 몸이 움츠려 드는 것과 달리 멀리 보이는 런던아이(London Eye)에 녀석의 입이 헤, 벌어진다.
템즈강변에 위치한 런던아이는 1999년 영국항공이 새천년을 기념해 만든 관람용차로 밀레니엄휠이라고도 불린다. 이제는 런던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는데 135m 높이의 관람차에 오르면 런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녀석의 껄떡거림을 못 본 척하곤 등을 떼밀어 웨스트민스터 구역으로 향한다. 빠듯한 일정에 남은 시간은 이제 런던의 하이라이트만 돌아보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과 정치, 종교를 대표하는 중심지인 웨스트민스터 구역은 그런 면에서 첫 번째 코스로 돌아봄은 당연하리라. 웨스트민스터사원과 빅벤, 국회의사당, 버킹엄궁전, 웰링턴 아치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고딕양식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영국 왕실의 심장과도 같은 이곳은 지금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또한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도 치러지는 곳으로,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처칠, 리빙스턴, 뉴턴, 다윈, 헨델, 셰익스피어, 찰스디킨스 등 영국의 유명 정치가와 과학자, 음악가, 시인들이 잠든 곳이기도 하다.
때마침 빨간색 2층버스가 지나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한다. 템즈 강변에 자리한 고풍스러우면서 위엄 넘치는 의사당건물은 세계 최초 의회제 민주주의를 발달시킨 영국의 연륜을 보여주는 듯하다. 원래 이곳은 웨스트민스터궁전이었으나 1834년 화재로 불타고 벽돌로 지어진 웨스트민스터 홀만 남게 되자 1840년 재건해 지금의 의사당을 건설했다.
이 건물 북쪽에 그 유명한 빅벤이 자리하고 있고, 남쪽에는 의사당에서 가장 높은 100m 높이의 빅토리아 타워가 서 있다. 빅벤은 영국여왕즉 위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엘리자베스타워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빅벤으로 불린다.
주마간산 격으로 이들을 훑어보고 내달려간 곳은 세계3대 박물관 중 한 곳인 대영박물관. 사실 대영박물관이란 호칭엔 제국주의적 냄새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영문명(British Museum) 그대로 ‘영국박물관’이라고 함이 더 옳다. 하지만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그곳에 전시된 전시물은 대부분 제국주의의 영국이 자행한 문화적 침략과 약탈의 흔적을 말해 주는 것들이다. 이곳은 영국의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입장료가 무료인데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약탈한 것을 차마 돈까지 받으며 전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40만 년 전의 선사유적부터 금세기 미술품까지 엄청난 양의 인류문화재가 모여 있는 이곳을 모두 돌아보기란 불가능하다. 특정시대나 지역, 장르 등 특화된 한 분야를 공략해 보는 것이 빠듯한 일정에선 현명한 방법이다.
전시내용은 크게 이집트, 그리스·로마, 서아시아, 동양 유물로 나눌 수 있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기 전시물은 단연 이집트 유물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집트 유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 스톤을 비롯해 투탕카멘왕의 사자상, 아메노피스 3세의 두상,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 등이 줄 잇는 이집트 전시관을 둘러볼 때면 놀라움과 감탄보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남의 것을 약탈 할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함이 앞선다.
그런 심정은 그리스·로마관에서도 계속된다. 파르테논신전에서 주요 부위를 떼어온 조각들과 목 없는 군상들을 보면 예술의 아름다움보다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