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행 ⑧ 첼시구장과 옥스퍼드"우리나라에서도 축구장 한 번 가본 적 없는데 영국까지 와서 왜 굳이....?"
그래 왜 굳이 왔겠는가. 런던 풀햄 스탬포드 브리지의 첼시홈구장을 찾았을 때 녀석은 입을 댓발이나 빼물고 툴툴거렸다. 국내 프로축구팀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프리미어리그를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소 귀에 경 읽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보라는 것이다, 확인하라는 것이다. 조용한 영국인들을 뜨겁게 달구는 그 열정의 세계를, 지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시청하는 스포츠 리그의 현장을 직접 한 번 느껴보라는 의미에서였다.
팀컬러인 푸른색으로 온통 도배된 첼시홈구장에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순간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방문객을 먼저 맞았다. 트로피를 높이 쳐든 존 테리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며 녀석은 기어코 결정타를 한 방 날린다.
“어? 쟨 삼성팀인가봐. 삼성유니폼을 입었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팀의 기라성 같은 선수를 졸지에 신생팀을 만들어 이적시켜 버린 녀석은 그 이후에도 “박지성이 왜 안보이냐?”는 등 주변사람들을 포복케 하는 질문을 쏟아내며 첼시구장을 둘러봤다. 첼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박물관과 프레스룸, 선수들의 락커룸에 이어 스타디움까지 돌아보는 걸로 관람코스는 마무리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를 새삼 절감하며 첼시구장을 나와 런던 북서쪽에 자리한 유서 깊은 학문도시 옥스퍼드로 향한다. 축구장에서부터 계속된 무덤덤한 표정은 이 고색창연한 도시를 마주하고서도 여전하다. 이곳은 공기부터 다르지 않느냐는 호들갑스런 감탄을 ‘썩소’로 가볍게 날리며 상가골목에서 찾아낸 패스트 푸드점에 환호성을 울린다. 누가 대한민국 중2를 감히 건드릴까.
케임브리지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학문 도시인 옥스퍼드는 옥스퍼드셔 주 내에 위치한 중심도시이다. 어원을 보면 Ox(소)+ford(개울)이란 말이 합쳐진 것으로 ‘소들의 개울’이라는 뜻이다. 양털의 집산지에 불과했던 이 작은 도시가 13세기에 대학이 설립되면서 이후 40여개의 대학이 자리한 학문의 도시로 뿌리를 내렸다.
흔히 "옥스퍼드"라는 이름이 대학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이 도시 안에 단과대학들이 뿔뿔이 흩어져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대학이자 대학이 곧 도시인 셈이다. 주요 볼거리는 하이스트리트를 끼고 있는 남동부 대학가에 몰려 있다.
옥스퍼드 산하 칼리지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곳은 크라이스트처지 칼리지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당인 동시에 대학이다. 16세기에 설립된 이곳은 수많은 유명인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데 13명의 역대 영국 총리를 비롯해 ‘사회계약설’의 존 로크,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집필한 루이스 캐롤과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 등등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보다 <해리포트와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학교 호크와트의 식당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더 관심을 끄는 곳이다. 영화 속 장면 그대로인 식당은 지금도 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라고. 크라이스트처치 안에 있는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4세기 라파엘의 영향을 받은 에드워드 존스의 작품이다.
보들 리언도서관도 옥스퍼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14세기 초에 세워진 이 도서관은 영국에서 출간된 모든 도서의 초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인공 세 명이 볼드모트와 싸우기 위해 책을 찾던 장소로도 등장한 곳이다.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영국 최초의 돔형 도서관으로 웅장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밖에서 볼 때 3층건물이지만 실제로는 2층으로 되었다고 한다. 보들리언 도서관의 열람실로 일반인의 출입은 제한되는 곳이다. ‘카메라’는 라틴어로 방이라는 뜻.
옥스퍼드 시내 중심탑인 카팩스타워를 비롯한 최고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세인트메리 교회 등 옥스퍼드 거리를 거닐면 수백 년 전에 세워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줄을 잇는다. 좁은 골목을 누비며 다니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도시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인다. 하지만 파스텔톤으로 단장한 상가거리는 신구가 어우러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옥스퍼드를 기억하게 만든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