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거제 지심도 마치 화르륵, 이는 불길같다. 남쪽에서 전해 오는 봄꽃들의 그 기세가. 박차고 나가는 산수유 매화에 뒤이어 벚꽃들도 벙글기 시작했다. 앞다퉈 봄소식을 전하는 화려한 봄꽃무리 속에서 담담히 웃고 있는 붉은 꽃망울이 눈길을 잡는다. 어여쁜 섬 지심도의 동백이다.
지심도 동백은 11월부터 피기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까닭에 이 맘 때면 섬 전체가 점점이 흩어진 동백꽃으로 붉게 물든다. 누가 감히, 이 붉게 물든 섬 지심도를 빼놓고 봄을 말하랴.
거제도 장승포항에 자리한 지심도터미널은 요즘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다섯 달 정도 이어지는 지심도의 동백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동백이 피긴 하지만, 바닷바람까지 더해져 몹시 추운 때라 꽃들도 관광객도 잔뜩 움츠려야 하지만, 모진 삭풍을 견뎌낸 이 맘 때면 겨우내 미처 터지지 못한 꽃망울들까지 앞다퉈 꽃송이를 터트리고 있다. 그래서 하루 다섯 차례 지심도를 오가는 세 척의 선박들이 가장 바삐 움직이는 때가 요즘이기도 하다.
지심도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딸린 작은 섬으로, 면적이 불과 0.356㎢(11만 평)이고 해안선의 길이도 3.7km에 그친다. 섬에 나 있는 일주도로인 오솔길을 따라 1~1시간반만 걸으면 지심도의 곳곳을 빼놓지 않고 모두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 불린다. 배를 타고 지심도로 향하면 섬 전체가 커다란 숲으로 보일 만큼 여러 수목들이 빽빽하게 우거졌다.
섬 전역에 걸쳐 후박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팔손이, 풍란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과 식물들이 자란다. 이 중 60%~70%를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어 지심도는 그야말로 "동백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이 동백숲은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시림 상태로 잘 보존돼 있다. 굵고 실팍한 동백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숲에는 붉은 꽃송이가 발길 닿는 곳마다 뚝뚝뚝 떨어져 있어 "사뿐이 즈려밟고" 가기엔 차마 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선착장에 내리면 언덕 위에 자리한 마을까지만 비탈진 시멘트길이 이어지고 섬을 일주하는 길은 대체로 평탄한 오솔길이다. 동백하우스를 비롯해 등나무, 갈매기, 동박새 등등의 이름을 내건 소박한 민박집이 마을 중심에 자리잡았고, 이를 기점으로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면 수월하게 지심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다.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진 해안으로 향하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이 발길을 잡는다. 지심도의 끝 마끝해안에는 오랜 세월 해풍과 맞서 온 늙은 소나무군락이 먹먹한 감동을 준다. 붉은 꽃송이와 솔잎이 수북하게 깔린 원시의 숲길이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새 대나무숲이 주위를 에워싼다.
이제는 폐교가 된 아담한 학교도 섬의 풍경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작은 섬에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제 강점기의 쓰린 흔적이 남아 있다. 광복 직전까지 주둔했던 일본군 1개 중대가 사용했던 요새가 상처처럼 섬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지저귐이 드높은 지심도의 봄날이 무르익고 있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외로운 섬이지만, 동백꽃으로 붉게 수놓인 지심도의 봄날은 외롭지 않다. 어여쁜 동백꽃 보러 오는 어여쁜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맛집
지심도에는 민박을 겸한 식당집이 전부다. 시장기를 가실 수 있게 하는 간단한 메뉴들이다. 장승포에는 전문적인 맛집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요즘은 도다리쑥국과 멍게덮밥이 대세다.
*찾아가는 요령
남해고속도로 서마산IC에서 나와 14번 국도를 타고 고성 → 통영 → 거제대교 → 장승포에 이른다. 혹은 남해고속도로 → 진주분기점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 통영IC → 국도 14호선 → 거제 → 장승포에 도착한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