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시 청마 생가와 기념관 거제도,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지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라면 그 곳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임을 기억할 것이고, 더러는 울산과 함께 세계적인 조선도시라고 얘기할 것이다.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무엇보다 거제가 품은 빼어난 관광명소들, 해금강과 외도는 물론 얼마 전 개통한 거가대교며,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름난 ‘바람의 언덕’등도 빼놓지 않고 말할 것이다.
이와 함께 거제는 많은 이들 가슴에 시심(詩心)을 심어준, 우리 현대문학사의 거목인 청마 유치환(1908~1967)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청춘의 한 시절을 거쳐 온 이라면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되는 그의 <행복>을 읊조리지 않았던 이가 없을 것이고,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으로 시작되는 그의 <깃발>에 감춰진 상징성에 매료되지 않은 이가 드물 것이다.
한 때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이냐 거제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거제는 청마가 태어나 두 살까지 살았던 곳으로, 통영은 성장했던 고향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지난 2000년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 청마 생가가 복원되고, 2008년에는 청마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거제는 명실공히 청마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마의 생애와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관 마당에는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과 <깃발><행복><출생기> 등 청마의 대표시를 새긴 시비가 먼저 마중한다. 높이 2m 규모의 청동상은 사색에 잠긴 선생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청마의 시 감상과 함께 1, 2층 전시관에는 청마의 발자취와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여러 전시물이 있다. 친필원고와 작품집들, 지인들의 서신, 생전의 애장품을 비롯해 어렸을 적 살았던 당시 둔덕골의 모습도 모형으로 재현했다.
청마기념관 옆에 자리한 생가는 선생이 태어난 1908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했다. 두 채의 초가는 담쟁이가 휘감은 돌담으로 에워싸였고, 싸리문 대문을 들어서면 우물과 장독대가 있는 마당과 텃밭이 보인다. 툇마루 앞 댓돌 위에 놓인 흰 고무신은 금방이라도 안방문이 열리며 주인장이 나와 방문객을 맞을 듯하다. 안방에는 무쇠삼발화로와 놋쇠주전자며 촛대, 붉은색 2단 붙박이장이 당시의 생활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방 한쪽 구석에 놓인 목단사기요강의 모습까지.
기념관과 생가가 있는 곳에서 나와 청마로를 따라 1.2km 가면 선생이 잠든 묘지가 나온다. 둔덕면 방하리 지전당골 선산에 위치하고 있다. 청마는 부산 남여상 교장으로 재직중이던 1967년 2월13일 밤 부산 문인협회 이사회에 참석 후 귀가 도중 부산 좌천동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했다.
처음 묘지는 부산 하단동 승학산 기슭에 안장됐다가 양산시 백원공원묘원에 이장, 그 후 1997년 4월 지금의 자리인 선산으로 묘지를 이장했다. 생전에 선생은 모친 묘비에 쓴 ‘사모곡’에 “멀지 않아 제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 이 하늘 우러르고 묻힐 날을 기약 하오매”라고 적었는데, 그 소원대로 어머니의 묏가에 영원히 잠든 셈이다.
생명에 대한 애정이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청마 선생은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작품으로 『청마시집』 『제9시집』 『유치환시선』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미루나무와 남풍』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 13권의 시집과 『예루살렘의 닭』 『동방의 느티』 『나는 고독하지않다』 등 3권의 수필집,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등이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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