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길상사 꽃이 진 자리에 움튼 연초록 신록이 꽃보다 눈부신 때다. 오랜 세월동안 꽃 피고 지기를 되풀이해 온 충북 진천 길상사의 늙은 벚나무도 꽃을 떨군 가지마다 초록을 내달았다. 꽃더미에 묻힌 길상사가 아름답고 멋스럽다면 신록 속에 자리한 그 모습은 또다른 운치와 기상이 느껴진다.
아니, 길상사가 언제 진천으로 옮겨갔대? 혹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절집 길상사(吉祥寺)를 말하는 것일 테지만, 진천에 있는 길상사(吉祥祠)는 사찰이 아닌, 바로 신라 김유신 장군(595~673)의 영정이 봉안된 사당이다.
김유신 장군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알만큼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장군은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인물로,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등인 태대각간에 올랐으며 사후에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됐다. 그런데 장군의 무덤이 경주에 있는 것과 달리 이 곳에 사당이 있는 건 어떤 인연에서일까. 그 까닭은 바로 진천이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부터 김유신의 태가 묻힌 태령산 아래 사당을 짓고 조선초기까지는 국가에서 향과 축을 내려 봄과 가을로 국행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병화를 입어 폐허가 된 걸 여러 차례 재건해 오다 1927년 현 위치에 건물을 짓고 길상사라 했다. 지금의 모습은 1976년 사적지정화사업으로 갖춰진 것으로, 본전인 흥무전에는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장군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역사에 관심있는 이라면 김유신 장군이 진천에서 태어나게 된 사연을 벌써 짐작했을 것이다.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의 로맨스는 신분제가 엄격했던 당시 사회에서 용납받기 어려운 결합이었다. 왜냐하면 김서현은 멸망한 가야의 왕손이었고, 만명부인은 신라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듯, 결국 만명부인이 만노군(지금의 진천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따라가자 둘의 결혼을 묵인하게 됐고, 그 결과 김유신은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것이다.
진천군 상계리 계양마을로 가면 태령산 아래에 김유신 장군 탄생지가 조성돼 있다. 태령산 정상에 올라가면 장군의 태를 묻은 태실이 있는데, 고려·조선시대의 태는 많이 남아 있지만 신라 태로는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태실이다.
길상사를 알리는 표지석을 따라 들어서면 신록이 눈부신 진입로가 나온다. 초입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도 좋고, 계속 진입하면 홍살문이 보이고 그 안에도 넓은 주차장이 있다. 잘 정비된 경내를 걸어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가파른 계단이 내삼문까지 이어진다. 계단 중간에 왕벚나무가 실팍한 몸피를 내보이며 자리를 잡고 있다. 계단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고목은 지난 봄 꽃 피웠던 흔적을 말끔히 털어내고 푸른 나뭇가지를 활짝 펼치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내삼문 안으로 들어서면 본전인 흥무전의 당당한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흥무전 안에 봉안된 영정 속 장군의 모습은 그 보다 더 당당하고 늠름하다. 흥무전 뜰에 서면 저 멀리 진천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주변을 에워싼 고목과 꽃들이 어우러진 봄날의 풍경이 가득하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 고급 수입 중형세단, 브랜드별 연료 선호도 확연▶ 닛산, 전기차 리프 한국 투입 적극 검토▶ 한국토요타, 인천 전시장 정식 개장▶ 푸조, 부산 전시장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