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특히 세단을 연상시키는 세련된 외형과 안락한 승차감을 갖춘 도심형 SUV는 투박한 오프로더 이미지를 벗고 패밀리카 입지를 확보한 지 오래다. 그런데 국산차와 수입차를 불문한 SUV "폭풍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토요타다. 캠리의 열풍 속에 성공적인 2012년을 보냈지만 대표 SUV인 RAV4의 부진은 아쉬웠다. 같은 일본 브랜드인 혼다가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CR-V의 선전을 이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토요타는 그러나 4세대 RAV4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내·외관을 완전히 바꾼 풀체인지모델인 데다 쉽고 즐거운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RAV4를 타고 태안반도 일대까지 약 400㎞ 구간을 주행했다.
▲스타일&상품성 군살을 뺀 겉모양이다. 4세대의 크기는 길이 4,570㎜. 너비 1,845㎜, 높이 1,705㎜, 휠베이스 2,660㎜다. 3세대보다 각각 50㎜, 10㎜, 40㎜ 줄이면서도 실내공간을 죄우하는 휠베이스는 그대로 가져갔다. 패키징 실력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앞모양은 날카로워졌다. 전조등이 커지면서 라디에이터 그릴로 파고든다. 그릴 역시 크기는 줄되 역마름모꼴 형태로 범퍼쪽을 향하고 있다. 공기저항을 고려해서인지 상단부 그릴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처럼 디자인 요소일 뿐 공기구멍은 없다. 엔진에 유입될 공기통로는 하단에 있다. 이 부분이 상단으로 치고 올라오며 묘한 긴장감을 준다.
옆모양은 컴팩트 SUV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유선형 실루엣은 세련되게 다듬었다. A필러의 경사는 완만하게, 직선형 지붕은 아치형으로 바꿨다. 각졌던 후면부도 부드럽게 변했다. 차체 키가 낮아지면서 창문 크기도 작아진 듯 하다. 그러나 실내에서 답답할 정도는 아니다. 기존 17인치에서 18인치로 커진 휠은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건 다소 고리타분했던 뒷모양이다. 무거운 스페어 타이어를 떼어내는 대신 템포러리 타이어를 채택, 데크 보드 아래에 넣었다. 덕분에 좌우로 열리던 트렁크 도어는 상하로 열린다. C필러 하단에서 시작해 드렁크 도어 중앙까지 자리잡은 커다란 리어 램프는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에어로 스태빌라이저 역할도 한다. 툭 튀어나온 리어 램프 경계선은 당당한 어깨선을 드러내며 상단부의 컴팩트함을 강조한다.
실내는 대담함과 단순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2WD에는 내비게이션도, 멀티미디어 화면도 없다. 당연히 후방카메라도 없다. 스티어링 휠과 센터페시아에는 딱 필요한 장치만 있다. 최근 실내가 복잡한 장치와 수많은 버튼으로 채워지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계기판은 3개의 원으로 구성했다. 잔여연료 표시계가 엔진회전계만큼 큼직하게 자리잡은 게 인상적이다. 센터페시아는 앞좌석 탑승자를 향해 돌출돼 있다. 여기에 인스트루먼트 패널에 금속 광택의 수평 프레임을 적용, 대담함을 더했다. 과한 기능을 빼고 실용성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가격 대비 고품질을 소비자가 느낄 수 있도록 포인트를 줬다. 우선 센터페시아를 투톤 컬러 인조가죽으로 마감했다. 실내 곳곳에 스티치도 적용했다. 작은 차지만 호평받을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의 스티치는 장식을 위해 덧댄 느낌이 강해 아쉽다.
단순하지만 알찬 기능으로는 에코 드라이빙 인디케이터를 꼽을 수 있다. 저속 또는 탄력 주행을 할 경우 계기판 좌측 하단에 에코 아이콘이 깜빡인다. 간단한 표시지만 운전습관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시트는 의외로 단단하다. 버킷 시트까지는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운전자를 지지한다. 4WD에는 전동 시트 포지셔닝과 메모리 기능이 있지만 2WD는 모두 수동이다. 크게 불편하진 않다.
실내에서 가장 칭찬받을 부분은 뒷좌석과 적재공간이다. 성인 남성이 앉아도 전혀 좁지 않다. 신장 170㎝대 중반의 남성이 앉았을 때 무릎과 앞좌석 간에 주먹 2개 이상의 여유공간이 있다. 좌우 너비도 넉넉하다. 지붕도 높아 장거리 여행에 불편함이 없다. 그러면서 화물공간도 547ℓ를 확보했다. 구형 대비 11ℓ 늘어났다.
▲성능 및 승차감
엔진은 4기통 2.5ℓ 가솔린을 얹어 구형과 동일하다. 특징은 동력성능이 다소 줄었다는 점이다. 최고출력은 184마력에서 179마력으로, 최대 토크는 24.1㎏·m에서 23.8㎏·m로 각각 5마력과 0.3㎏·m 떨어졌다. 대신 연료효율은 복합기준 11.0㎞/ℓ로 5.8% 개선했다. 기존 4단에서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결과다. 6단 변속기 채택은 여러모로 탁월한 선택이다. 연비 증가 외에 운전도 편하게 만들어준다. 기민한 변속반응 덕에 가속 시 스트레스가 줄었다.
시동을 걸자 부드럽게 엔진이 깨어난다. 진동과 소음이 세단 수준이다. 엔진 소음에 관해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디젤 SUV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장점이다. 가속 페달에 발을 얹자 부드럽게 앞으로 나간다. 주행성능은 무난한 편이다.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 모두 말랑말랑한 느낌이다. 페달 조작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토요타는 RAV4를 소개할 때 "펀 투 드라이브"를 강조했다. 주행의 즐거움이라고 하면 스포티한 성능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차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쉽고 재미있는 운전을 추구하는 것. 다소 강한 인상의 디자인과는 사뭇 다른 주행감각이다. 생활형 SUV로서 과하지 않은 성능을 선택한 셈이다.
토요타가 주목한 부분은 핸들링이다. 정확하고 안정적인 조향성능은 고속주행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믿음을 결정하는 요소다. 4WD에는 코너링 시 앞·뒤축 토크 배분을 90대10에서 50대50까지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다이내믹 토크 컨트롤 4WD 시스템"을 적용했다. 2WD는 이런 기능을 체험할 수 없지만 태안의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동승했던 기자들 모두 코너링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차체 크기가 줄었다지만 RAV4의 지상고가 높은 편임을 감안했을 때 성공적인 세팅이라는 평가다.
새 차는 4세대로 넘어오면서 드라이브 셀렉트 모드를 갖췄다. 연료효율을 강조하는 에코 모드와, 주행성능에 초점을 맞춘 스포츠 모드가 있다. 에코 모드는 변속시점을 앞당기면서 저회전을 적극 사용한다. 시속 100㎞에서도 1,800rpm 전후에서 안정적 주행이 가능하다. 스포츠 모드로 변환하면 날카로운 엔진음과 함께 3,000rpm까지 변속영역을 넓히면서 가속성능이 높아진다. 반면 스티어링 휠은 20% 정도 무거워진다.
달리기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110㎞ 이상까지 무리없이 올라간다. 안정성도 수준급이어서 고속에서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속도를 올릴수록 풍절음이 심해지고 노면진동도 강해진다.
카즈히코 마츠모토 토요타 엔지니어는 "루프레일의 유무에 따라 상단 풍절음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별도의 프레임이 없는 모노코크 보디를 채택한 만큼 차체 강성이나 실내 풍절음 차단 등에 많은 신경을 썼다"며 "엔진이나 노면소음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방음재도 풍부하게 썼다"고 말했다.
▲총평 시승행사에서 한국토요타는 RAV4를 "올해 토요타 브랜드의 최고 기대주"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 나카바야시 히사오 대표도 "벤자, 시에나와 함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토요타 SUV의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력차종이었던 캠리의 파괴력이 다소 둔화되고, 하이브리드카의 성장이 제한적인 가운데 많은 판매대수를 확보할 수 있는 3,000만 원대 SUV의 성공이 회사로서도 절실한 상황이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아발론이 준대형 세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4세대 RAV4는 확실히 최근 소비자 입맛에 맞는 매력을 많이 갖고 있다. 개발과정에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요구를 최대한 많이 반영했다는 설명에 수긍이 간다. 토요타는 자동차를 잘 아는 회사다. 그래서 중도를 지켜 빚어낸 4세대 RAV4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판매가격은 2WD 3,240만 원, 4WD 3,790만 원이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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