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 보탑사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전국의 모든 절집이 오색연등으로 화려하게 수놓였다. 불자는 물론이고, 불자가 아닌 이들도 오늘 하루 크고 작은 절집을 찾아 이를 경축하고 화사한 봄나들이를 즐기리라.
충북 진천군 연곡리에 위치한 보탑사는 꼭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가 아니라 이 맘 때면 유독 많은 이들이 찾아가는 절집이다. 보탑사의 4계 중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때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에이, 절집들이 다 그렇지 않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필경 아직 이 맘 때의 보탑사를 보지 못한 게 틀림없다. 오색연등 물결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보탑사의 5월을 수놓고 있다. 온갖 종류의 야생화가 앞다퉈 피어나고, 소나무와 연못이 어우러진 멋진 조경의 정원과 색색의 꽃들은 이 곳이 정말 절집인가 싶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보여준다.
눈길 주는 곳마다 향달맞이, 금낭화, 물망초, 탑꽃, 하늘매발톱, 앵초, 천상초 등등 온갖 야생화가 꽃 핀 절집은 살뜰하고 세심한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군가 쉬지 않고 가꾸는 손길이 있어야만 가능한 풍경이다.
그 해답은 절집 안을 조금만 둘러보면 쉬 알게 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뜰을 가꾸는 스님들의 모습이 그 곳에 있다. 보탑사는 조계종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 곳 스님들은 수행의 하나로 꽃을 가꾼다. 정진의 손길로 가꾼 야생화이기에 유난히 아름답고 풍성한 꽃송이를 그렇게 피워내는 듯하다.
그래서 보탑사에는 보기 드물게 "꽃공양"을 할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빼곡히 내단 연등 아래 자잘한 꽃화분이 가득 진열됐다.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는 불자의 모습도, 꽃향기에 취한 부처님의 모습도 더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꽃이 있기에 보탑사가 이렇듯 아름다운 절집이 된 걸까. 아니다. 보련산 자락에 있는 보탑사는 절 자체로도 충분히 빼어나다. 중심이 되는 3층 목탑을 비롯해 스님들의 거처인 해행당까지 경내의 모든 건축물이 눈길을 끄는 독특함과 세련됨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절터에 지난 1996년 지광, 묘순, 능현 스님의 발현으로 창건된 보탑사는 3층 목탑을 완공한 이래 지장전, 산신각, 해행당, 8각의 영산전, 적조전, 수련원, 7각의 범종각, 9각의 법고각, 미소실, 삼소실, 반가사유상, 천왕문 등 불과 15년만에 대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불사는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해 여러 부문의 장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한 3층 목탑은 높이가 42.71m로, 상륜부까지 더하면 무려 52.7m에 이르는 대탑이다. 14층 아파트 높이와 비슷한 거대한 이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로, 단 1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지었다.
일반 목탑과 달리 1층에서 3층까지 걸어서 법당 내부를 오르내릴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통층 목탑이다. 1층 금당은 심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불을, 심주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 그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백자 원탑을 모셨다. 2층 법보전에는 윤장대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한글법화경을 총 9t의 돌판에 새겼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이 밖에 장수왕릉을 재현해 만든 지장전,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부처가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해 만든 영산전, 와불열반적정상을 모신 적조전, 7각 법종각, 9각 법고전 등의 건축물이 조성돼 있다.
사방으로 아낌없이 가지를 내뻗은,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가 있는 보탑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왕문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보탑사의 규모는 쉽게 짐작 가지 않는다. 연등이 길게 줄이은 층층계단에서 올려다 보이는 좁은 풍경 속에는 굽은 소나무와 팔각의 지붕들이 엉킨 모습뿐이다. 하지만 계단을 다 올라 절마당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3층 목탑과 어우러진 절집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빼곡하게 내단 연등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도 그 곳에 있다. 색색의 꽃들과 오색연등이 어우러진 5월의 보탑사는 그야말로 눈부시고 황홀한 색의 향연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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