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망해사 잠깐의 인연이어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사람이 있듯이 절집 중에도 그런 곳이 있다. 잠시 머물렀던 짧은 기억임에도 늘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곳, 전북 김제에 있는 망해사가 그렇다. 천년고찰이 지닌 고색창연함이나 산중 대찰의 빼어난 위용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아릿한 첫사랑처럼 그 곳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가슴 한쪽에 자리하고 있다.
스무 몇 해 전, 지금처럼 내비게이션도 없고 지도도 변변찮은 그 무렵 진봉산 끝자락에 자리한 그 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던 이유는 ‘바다를 바라보는(望海)’ 그 매혹적인 이름 하나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김제평야를 지나 얼어붙은 산비탈을 가까스로 올라 어렵게 찾아간 그 곳은 절집이라고 이름 붙이기 무색할 정도로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울도 담도 없는 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건물 두어 채가 전부였다.
어렵게 찾아갔으니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게다가 얼굴을 할퀴는 매운 삭풍은 잠시도 서 있기 어려울 만큼 사나웠다. 미련없이 발길을 돌려 나오려는 그 때 잿빛 장삼을 입은 그와, 그의 뒤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았다. ‘스님’이 아니라 ‘그’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건 비록 출가는 했으나 번뇌를 떨치지 못한, 스물 서넛쯤의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 쉬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요한 걸음으로 다가와 합장을 하며 “어인 일로 이 곳을 찾아왔느냐”고 묻는 젊은 스님의 눈빛은 검고도 깊었다. 하마터면 “어인 일로 스님이 됐느냐”고 되물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홀린 시선을 거두며 스님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막 일몰이 시작되는 황금빛 바다가 있었다.
추위 탓인지, 삭이지 못한 번뇌 탓인지 아그리파상처럼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바다쪽으로 시선을 던질 땐 설핏 풀어지는가 싶더니 곧 다시 굳어졌다. 자신이 바다를 가리기나 한 것처럼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며 합장을 했다.
“네, 이 곳은 바다가 모든 번뇌를 덮어주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번뇌가 들끓고 있는 듯 했지만 그는 나타날 때처럼 조용히 걸음을 옮겨 낡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얼얼한 충격(절대 추위 때문이 아닌)으로 서 있는 눈 앞으로 일몰이 펼쳐지는 바다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웠다. 매운 해풍이 삼킬듯이 불어왔지만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계절이 바뀌어 몇 차례 망해사를 더 찾아간 적이 있지만 이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준수하면서도 고뇌에 찼던 젊은 스님과 그 뒤로 펼쳐지던 불타는 낙조의 바다는 지금까지도 늘 기억의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다시 찾아간 망해사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울도 담도 없던 절마당은 드넓게 자리한 주차장까지 갖췄고, 요사채 건물들은 말쑥했다. 바닷바람에 금방이라도 현판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던 ‘낙서전’은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있었다. 절집 앞으로 펼쳐지던, 숨을 멎게 하던 황홀한 그 바다도 예전 모습이 아니다. 새만금방조제에 둘러싸인, 가둬진 바다가 그 곳에 있다. 아, 나는 첫사랑같은 절집을 잃었고, 절집은 바다를 잃고 그 옛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 서김제 나들목 - 만경로 - 만경읍 - 702번 지방도로(지평선로) - 진봉면을 거쳐 망해사 입구에 이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