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중형 세단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준중형 차의 상품성 강화, SUV의 대중화, 가격 인상에 따른 수요 이동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업계에선 신차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한다. 최근 1~2년간 부분변경 등을 거친 데다 신차 출시 계획이 내년 이후에나 잡힌 상황에서 하반기에 집중된 수입 신차 공세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세계 3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피터 슈라이어가 빚어낸 K5는 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2010년 출시 이후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올해 K5의 판매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5월까지 누적 판매대수는 2만2,371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3%나 감소했다.
반격의 선봉에는 기아차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K5 부분 변경이 나섰다.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기아차는 큰 변화보다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미 검증된 디자인은 최대한 살리면서 그간 단점으로 지목되던 주행 성능과 실내 품질을 높여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 기자회견장에서 K5의 경쟁 차종으로 수입 중형·준대형 차를 지목하며 상품성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글로벌 경쟁력도 강조하는 동시에 내수 수성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스타일 & 상품성
변화의 핵심은 "디테일"이다. 기존에 호평 받았던 디자인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감각을 살리기 위한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했다. 모험을 감수하기보다 강점을 부각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살렸다. 페이스리프트답게 전면부에 많은 공을 들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은 조금 다듬어 최근 출시한 신차들과 일관성을 살렸다. 그릴 주변의 크롬라인은 얇아지고, 대신 겉에 검은색 유광 재질의 마감을 더했다. 하단 공기흡입구에 크롬라인을 한 줄 더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주간주행등도 헤드램프와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4개의 아이스큐브로 구성된 LED 포그램프는 신차다운 감각을 담았다. 그러면서 범퍼 라인이 미남 배우의 턱선처럼 날렵하다.
실루엣은 큰 변화가 없다. 눈에 띄는 점은 18인치 알로이 휠과 앞바퀴 펜더가 도드라졌다는 점이다. 힘이 느껴지고, 트렁크 끝단이 치켜 올라가 후미 라인에 긴장감이 더해졌다. 큼직한 리어 램프는 측면 캐릭터라인을 따라 길어졌다.
실내는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일반 플라스틱으로 마감됐던 부분이 대부분 가죽과 블랙 하이그로시로 교체됐다. 센터페시어, 손잡이 등 곳곳에는 크롬 재질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다. 계기반과 주행 정보를 표시하는 슈퍼비전 클러스터도 큼직하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외형에 비해 밋밋하다고 지적됐던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 개선됐다. 3스포크 방식의 얇아진 휠은 그립감도 좋고 버튼 배열도 최적화됐다. 에코/일반/스포트 모드를 선택하는 주행모드 버튼이 휠에 달려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쉽게 모드를 변경할 수 있다. 좌측 하단 버튼을 누르면 음성인식 기능이 활성화된다. 내비게이션 조작, 전화걸기, 라디오 채널 변경 등을 지원한다. 인식률이 좋은 편이다.
시트의 착좌감도 만족스럽다. 승차감 개선을 위해 수 개월간 영업용 택시에 신규 시트를 투입, 현장의 건의사항을 반영해 개발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장시간 운전 시 피로를 최소화하기 위해 쿠션의 강도와 시트 형태, 조절 각도 등을 고려한 것. 엔트리 트림인 트렌디에 뒷좌석 열선 시트가 기본 적용된 점도 반갑다.
▲성능
파워트레인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직렬 4기통 2.0ℓ CVVL 엔진은 최고 172마력, 20.5㎏·m의 성능을 낸다. 주행 면에서 기아가 내세운 점은 두 가지다. K7에 적용했던 주행모드 통합제어 시스템 기본 적용과 정숙성 강화가 그것.
시동을 걸고 아이들링 소음과 진동을 확인했다. 가솔린차답게 조용하다. 다만 시동이 걸린 줄 몰랐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다. 가격대를 생각하면 큰 불만은 없는 수준이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저속주행에서도 마찬가지. 기존 K5도 실내 정숙성에 대해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외부 소음 유입을 줄이기 위해 이중 접합 차음 유리를 윈드실드에 기본 적용하고 실내 카페트 흡·차음재를 보강했다. 여기에 휠 강성을 높여 노면에서 전달되는 진동·소음도 감소했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라 주행 속도를 높였다. 가속성능을 느끼기 위해 모드는 스포트로 변경했다. 계기반 바늘이 4~5,000대 RPM을 가리키며 카랑카랑한 엔진사운드가 안을 채운다. 소리가 사뭇 요란하다는 느낌이다. 가속 성능이나 고속주행 실력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치고 나가는 성능과 엔진음 사이에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구간도 있다. 다소 과장된 듯한 엔진소리에 비해 풍절음 등 외부소음은 잘 차단되는 편이지만 노면 소음은 개인 취향에 따라 신경이 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승차에는 18인치 알로이휠이 적용됐다. 일반 16~17인치 휠보다 직경이 커지고 접지면이 넓어진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스포트 모드에선 스티어링 휠이 다소 무거워진다. 고속 주행과 코너링을 위한 변화다. 에코 및 일반 모드와 차이가 상당해 다소 낯설 정도다. 일반 주행이나 주차 등에서 무거운 스티어링 휠이 오히려 부담일 수 있는데, 상황에 따라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제동성능은 다소 아쉽다. 일반적인 페밀리 세단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가격과 쓰임새를 고려했을 때 스포츠카에 적용된 고성능 브레이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역동성이 강조된 것에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제원표 상 브레이크는 앞바퀴 17인치, 뒷바퀴 15인치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됐다.
개인적으로는 코너링 성능이 인상적이다. 20여㎞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에서 생각 이상의 재미를 느꼈다.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스티어링 휠의 움직임에 따라 정확한 몸놀림을 보여줬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에서 급 커브를 돌 때도 자세를 바로 잡는 실력이 상당하다. 동승했던 기자는 하체 움직임에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총평
중형 세단은 자동차 회사의 "허리"에 해당한다. 허리가 튼튼해야 굳건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K9, K3, 카렌스 등 최근 출시한 신차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K5에 쏠렸다. 올 하반기에도 기아차는 K3 쿠페와 신형 쏘울 등의 투입을 예고했지만 확실한 "한 방"은 역시 중형 세단의 몫이다.
일단 시작은 나쁘지 않다. 하루 평균 계약 건수가 220여 대에서 6월 들어 550대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기아차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착한 가격"을 넘어 "개념 가격"으로 강조하는 가격 정책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보일 지는 궁금하다. 가격은 2.0ℓ 가솔린(자동변속기 기준) 2,195~2,785만 원이다.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사진제공 = 기아자동차,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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