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관음사 길을 잃었다. 네비가 찾아주는 목적지가 아닌 발길 닿는 대로 가려 했던 생각은 좁은 농로에서 진퇴양난으로 멈춰 선 자동차와 함께 콱 막히고 말았다.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무덤을 찾아가던, 충남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에서였다.
마을초입의 동리사람이 일러준 ‘이짝 골목을 따라 쭉 가서 고개 마루 올라서면 보인다’던 김옥균 유허지 대신 일방통행로처럼 이어진 길은 고추밭과 개울을 끼고 직진만을 허용하더니 결국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멈춰 섰다.
차머리를 돌릴 틈도 없던 좀 전의 좁은 길과 달리 의외로 그곳엔 제법 널찍한 주차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길 잃은 차들을 위한 회차로인가, 반가움에 차를 돌리는데 ‘관음사’라는 작은 팻말 하나가 걸음을 잡는다. 절이라니? 어디? 비닐하우스를 앞에 둔 허름한 농가가 전부인데.
바로 그곳이 관음사였다. 낡은 유모차가 마당 한쪽에 뒹굴고, 칠이 벗겨진 게양대에는 태극기가 내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절집마당으로 들어서자 대웅전 현판과 울긋불긋한 단청이 보인다. 그리고 나타난 피어싱한 석탑!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석탑은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었다. 탑의 상륜부는 사라져 보이지 않고, 기단과 탑신부도 모서리가 닳고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모습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맨 위층 옥개석 귀퉁이에 매달린 작은 종. 모서리에 구멍을 뚫어 귀걸이처럼 종을 매단 모습이 마치 피어싱을 한 것처럼 보였다.
일종의 풍경인 풍탁이었다. 법당의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불탑의 옥개 부분에 종을 매달아 소리를 내게 한다. 큰 것은 20㎝가 넘으나 대부분은 10㎝ 내외의 작은 모양을 하고 있다. 경주 감은사지에서 나온 신라 때의 청동풍탁과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풍탁이 유명하다고 한다.
새삼 쇠락하고 작은 이 절집에 눈길을 돌려본다. 관음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 이름은 동림사로, 조선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폐사되었는데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42년 동림사지에 법당을 올리고 절 이름을 관음사로 바꿔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절 마당에 있는 석탑은 전체적인 치석수법과 양식을 살펴볼 때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음사를 뒤로 하고 길을 나오며 또 다른 풍경들을 새롭게 만났다. ‘내려 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이란 고은 시인의 시처럼, 길을 잃고 갈팡질팡 헤매느라 보지 못했던 마을 풍경들이 돌아 나오는 길에는 새록새록 눈에 띄었다.
영인초등학교 부근에서 만난 여민루도 그 중 하나다. 조선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워졌던 문루로, 어찌 보면 주변 풍경 속에 생경해보이지만 그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자전거 탄 아이의 모습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아산향교도 인상적이다. 고즈넉한 숲을 뒤로하고 구릉지에 있는 향교는 외삼문을 별도로 배치하지 않고 마치 행랑채와 같은 건물의 가운데 3칸을 삼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배치 좌향이 북향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향교 중 하나라고 한다. "ㄱ"자 모양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마당을 두고 후면에 명륜당과 동재를 배치해 두었다.
명륜당 뜰을 서성이다 문득, 때론 이렇게 길을 잃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갖는다.
*맛집
면사무소 부근에 있는 조은식당(544-8972)은 소박하지만 정성어린 상차림이 돋보이는 맛집이다. 백반을 시키면 국과 여러 가지 나물무침, 생선구이, 장아찌, 간재미회무침 등 십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나온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 서평택IC → 아산만방조제 → 38번 국도를 타고 아산시로 향하다가 아산온천 단지로 가는 아산 교차로에서 나온다. 교차로에서 나와 영인면 소재지로 향한다. 이후 여민루, 아산향교, 관음사 이정표를 따라 움직인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