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 활박물관
하늘엔 죽음의 냄새를 맡고 날아온 수리매가 유유히 공중을 선회하는데.... 흔들리던 초목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바람을 계산하느냐?"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던 청나라의 명궁 쥬신타(류승용 분)는 냉소를 띠며 조롱한다. "바람마저 널 도와주지 않는구나" 그리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남이(박해일 분)의 활을 떠난 화살이 부러질 듯 휘어지며 날아가 순식간에 쥬신타의 목을 사선으로 꿰뚫어 버린다. 목에 꽂힌 화살을 느끼면서도 쥬신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말한다. "어, 어찌 이런!" 그때 역광 속 실루엣으로 선 남이는 대답한다.
"두려움은....직시하면 그 뿐...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영화 <최종병기 활>의 명장면, 명대사다.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는 "활"이라는 이색 소재와 함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와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그 해 최다관객수(총 745만 명)를 기록하는 등 여러 가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있는 활박물관에 들어서면 영화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전시한 여러 종류의 활과 살을 살피며 부쩍 흥미를 가진다. 영화 <최종병기 활>이 등장하기 전과 후, 활박물관에 갖는 관람객들의 관심은 크게 달라졌다. 좋은 영화 한 편이 잊혀져 가던 ‘활’에 대한 관심까지 다시 "활활"타오르게 한 셈이다.
부천 활박물관은 우리 전통 활인 각궁의 모든 걸 보여주는 곳이다. 각궁은 부천시를 대표하는 전통문화로 5대 1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부천에서 각궁의 제조, 궁술, 궁도의 뜻을 널리 알려 "각궁과 부천"을 한 데 융화시킨 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으로 지정된 고(故)김장환 선생 및 고(故)김박영 선생이다. 두 사람의 뜻을 기려 대대로 이어 내려온 각궁에 대한 자료, 제조,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 지난 2004년 12월 개관했다.
각궁(복합궁)은 짐승의 뿔이나 뼈, 탄력이 좋은 나무, 동물의 힘줄 등 다양한 재료를 천연접착제로 단단하게 고정시켜 만든다. 복합궁은 보통의 나무로 만든 활보다 탄성이 좋다고 한다. 여기서 발사한 화살은 중장비의 갑옷마저 뚫고 들어가 치명상을 입힌다고 하니 가히 최고의 무기였음을 상상할 수 있다. 재료와 모양에 따라 목궁, 죽궁, 철궁, 복합궁, 직궁, 만궁 등으로 활을 구분할 수 있으며, 화살 역시 특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영화 속에 나왔던 육량시와 편전에 대한 얘기도 보인다. 갑용이 몹시 떨리는 목소리로 "육량시...."라고 했을 때 강두가 대체 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화살촉이 무려 여섯 냥짜리 화살말이네. 지금 보지 않았는가. 웬만한 기계식 수노(쇠뇌.장전식 활)보다 강하지" 이와 비교해 놓은 정량궁이 눈에 띈다. 정량궁은 각궁 중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것이다.
쥬신타 : 편전이다.
노가미 ;!?
쥬신타 : 애깃살 말이다. 남한성 전투 때 보지 못했느냐? 예리하게 형제들을 저격하던 그 비수살 말이다.
노가미 : (수화로) 저렇게 거친 것은 처음입니다.
쥬신타 : (화살) 촉만 없을 뿐...놈이 화살을 부러뜨려 응용한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와 함께 소개해 놓은 전시물은 관람객의 흥미와 관심을 배가시켰다.
각궁 외에도 각종 활과 화살, 화차 등 국토를 지키고 수양하던 각종 용품과 유물 등 다양한 전시물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신기전기는 조선 초기의 로켓병기인 중 소신기전의 대량발사장치다. 문종이 발명한 화차의 한 부분으로, 화차의 수레 위에 올려 놓고 사용했는데 사각 나무기둥에 둥근 구멍을 뚫은 나무통 100개를 나무상자 속에 7층으로 쌓은 것이다. 나무통 구멍 속에 중 소신기전 100개를 꽂아 화차수레의 발사각도를 조절한 뒤 신기전 약통의 점화선을 한 데 모아 불을 붙이면 위층에서 아래층까지 차례로 100발을 발사한다. 제작설계도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연장로켓포라고 한다.
부천활박물관은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짜임새있게 구성한 전시내용이 도심 속에서 맛보는 박물관의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찾아가는 요령
부천종합운동장(원미구 춘의동)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전철 이용 시 지하철 7호선 부천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서 내려 도보로 3분 거리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 더위도 잊게 하는 "이야기의 비밀" 속으로 "풍덩"▶ 더위도 범치 못하는 양반가의 고즈넉한 뜰▶ 청춘을 "들었다 놨다" 했던 풍경이… 왠지 "낯설다"▶ 여름이 즐겁다, 맛있다, 느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