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지 시간 9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제65회 프랑크푸르트모터쇼"가 개막했다. 1897년 시작된 세계 최초의 모터쇼이자 유럽 최대 모터쇼로, 116년 역사를 자랑할 만큼 자동차 업계에선 가장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올해 슬로건도 "세계 최대의 모터쇼"를 채택했다. 중국에게 빼앗긴 세계 자동차 업계의 눈을 다시 독일로 향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올해 출품차들의 경향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다뤘던 "친환경" 기조가 완전히 폭발한 듯 하다. 그러나 먼 미래가 아닌, 현실 세계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친환경 경쟁이 시작된 분위기다. 각 사는 자신들의 제품전략에 따라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신차를 소개했다.
기본적으로 유럽 시장은 독일과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빅3가 강세다. 여기에 영국과 스페인, 체코 등이 가세하는데, 워낙 합종연횡이 많아 국적 의미는 날로 옅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각 업체들이 거대 회사의 산하로 포함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기술 공유 역시 그런 흐름에서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최대 모터쇼답게 작은 차가 여전히 중심에 위치하지만 크기를 떠나 고효율을 추구하는 모습은 역력하다. 유럽연합 배출가스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개발의 모든 초점이 고효율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높아지는 기름값 부담도 포함도 있다.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것에서 친환경차가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나온 친환경차들은 단순히 컨셉트카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구입하고, 사용하는 자동차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친환경차는 하이브리드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미 유럽에선 전기차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다.
물론 점유율은 아직 낮지만 확장세는 매우 빠르다. 지금 추세라면 내연기관차는 속된 말로 "뒷방"으로 밀릴 처지라는 게 모터쇼를 찾은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유럽 업체들의 친환경차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은 양산형 전기차 2종을 선보였다. e-골프는 1회 충전으로 최대 190㎞를 주행할 수 있으며, "e-업!" 역시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최고 시속 130㎞를 낼 수 있고, 1회 충전으로 최대 160㎞를 주행한다.
전통의 강자 BMW와 벤츠 등도 이에 뒤질세라 다양한 친환경차를 내놨다. 특히 BMW가 내놓은 i8은 앞바퀴는 모터로, 뒷바퀴는 엔진으로 구동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다. "BMW=후륜구동"이라는 명제를 따르면서도 부족한 성능을 전기모터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엔진은 3기통 1.5ℓ 가솔린 터보를 장착해 최고 223마력을 발휘한다. 최고 시속은 250㎞다. 벤츠는 최고급차 S클래스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추가했다. 연료효율은 유럽기준 ℓ당 33.3㎞로 더 이상 대형 세단에서의 효율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 69g로 친환경성도 다분하다.
유럽 업체의 경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중간에 위치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볼보가 공개한 컨셉트 쿠페 역시 가솔린엔진과 모터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로 개발되고 있다. 최고 400마력의 강력한 성능이 무기인 셈이다. 푸조는 208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접목한 208 하이브리드 FE를 출품, 고효율 경쟁에 가세했다.
이처럼 유럽 업체들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집중하자 원래 하이브리드 강국인 일본은 기존 하이브리드의 효율 외에 성능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유럽 시장에 접근했다. 특히 토요타 야리스 하이브리드-R 컨셉트는 지금까지 효율에 치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고성능 레이싱카를 목표로 했다. 르망24 내구레이스 참전 노하우를 실제 양산차에 적용시키겠다는 의도다. 기술적인 면에서 효율과 성능 모두 유럽을 넘겠다는 자신감의 상징으로 읽혀졌다.
반면 아쉬운 점은 한국 업체들이 특별히 내세운 친환경차가 없다는 점이다. 모터쇼가 열리는 박람회장 전시관 사이를 운영하는 셔틀로 수소연료전지차가 운행됐지만 전시관 주요 출품작들은 모두 내연기관차였다. 그나마 수소연료전지차는 단 시간 상용화가 힘들다는 점에서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현재"에 집중할 때 한국은 "먼 미래"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유럽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다양한 친환경차 장려책이 보급돼 있어 인프라 등도 속속 갖춰지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제도가 있어도 인프라가 없다. 또 정부 입장 자체가 "일단 한번 만들어봐" 수준에 그친다는 점도 한계로 남는다. 뿌리를 내릴 토양을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제조사가 본격적으로 뛰어들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친환경차가 자동차 시장을 지배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이미 도로에서 다양하게 운행되는 각종 친환경차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친환경차 후진국이다. 여러 지원책이 있지만 소비자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데다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환경차 보급을 정부에 목 매달고 있는 형편이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봄날 눈 녹듯 사라지고 있다. 친환경차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다.
프랑크푸르트=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