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철도박물관 ‘…나의 사투리에서 흙냄새가 나던 날들의 추석 무렵 / 시내버스 운전사의 어깨가 넉넉했다 / 구멍가게의 할머니 얼굴이 사과처럼 밝았다 / 이발사의 가위질소리가 숭늉처럼 구수했다 / 신문대금 수금원의 눈빛이 착했다’라고 맹문재 시인은 <추석 무렵>을 노래하고 있다. 코밑에 추석을 앞둔 우리의 ‘추석 무렵’은 어떠한가. 시인의 마음처럼 넉넉하고 푸근하고 숭늉처럼 구수함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기차 기적소리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 맘 때 철도박물관 나들이는 고향 가는 길처럼 즐겁다.
철도박물관은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에 자리하고 있다. 더러 “왜 하필 의왕시에 철도박물관이 있지?”라고 의아해하는 이들이 있다. 의왕시는 철도를 이용하기 위한 물류기지로, 한국교통대학교(구 철도대학),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이 모여 있다. 그래서 철도박물관이 이 곳에 위치한 건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다. 지난 8월에는 이 일대가 국내 유일의 철도특구로 지정돼 오는 2017년까지 철도공원과 철도거리 등 철도중심 특화지역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1899년 개통된 노량진-제물포 간 철도로, 일제 수탈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당시 제물포에서의 개통식 사진을 보면 곳곳에 휘날리는 일장기와 욱일승천기, 일본 순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흰옷 입은 조선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당시 사람들에게 기차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었고, 경이의 대상이었다.
‘우렁탸게 토하난 긔뎍(汽笛) 소리에 / 남대문을 등디고 나 나가서 / 리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 / 날개 가딘 새라도 못르겟네.…’
1908년 최남선은 <경부 텰도 노래>를 지어 근대 문명의 이기인 철도 개통(경부철도선 1905년)을 찬양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철도역사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우렁탸게 토하난 긔뎍’ 소리는 사라지고 이제 서울-부산 간을 2시간대에 달리는 고속철도가 등장했다. 이런 변화의 모습이 고스란히 철도박물관에 실물과 각종 유물, 자료 등으로 남아 있다. 초창기 철도 역사와 발전과정은 물론 철도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다.
박물관은 본관 1, 2층 전시실과 옥외전시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 2층 전시실에는 철도건설 이전의 교통수단과 세계 최초 증기기관차, 우리나라 최초 증기기관차 등의 모형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기차에 대한 모든 걸 볼 수 있다. 철도역사실, 철도차량실, 모형 철도 파노라마실, 전기신호통신실, 시설보선실, 운수운전실, 미래철도실 등으로 구분해 어린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시선을 잡는 사진 하나는 중앙홀에 걸린 경인철도기공식이다. 1897년 3월22일의 기공식에는 참석자들의 옷이 백색 상복이다. 1895년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상기간중이었기 때문이다. 국모를 잃은 백성들이 상복을 입은 채 수탈을 위한 철도건설에 모여 선 사실이 풍전등화의 나라 운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옥외전시장에는 증기기관차, 디젤전기기관차, 지하철 전동차 등 각종 기관차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귀빈객차, 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 등 이제는 사라진 추억 속의 열차들이 전시됐다. 선로 보수를 위한 장비와 차량 보수를 위한 장비들도 볼 수 있다.
*교통편 :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왕역 하차 2번 출구(도보 10분 소요, 버스 1-1, 1-2)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