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김삿갓문화제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전국이 축제 열기로 뜨겁다. 정읍의 구절초축제, 산청의 한방약초축제, 고창의 모양성제, 의성의 가을빛 고운 대축제, 광천의 토굴새우젓 재래맛김 축제, 단양의 온달문화축제, 포천의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축제 등등 각 지역의 개성과 특성을 살린 다양한 축제들이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수놓고 있다.
그 가운데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서 열리는 김삿갓문화제(10월 11~13일)는 멋과 풍류가 돋보이는 축제다. 해학과 풍자의 시선(詩仙)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열리는 김삿갓문화제는 올해로 16회째를 맞는다. 축제가 열리는 와석리 김삿갓유적지는 2003년 조성된 곳으로, 김삿갓의 묘소와 주거지, 문학관과 시비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면의 명칭을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바꾸고 ‘김삿갓마을’로 새롭게 태어난 이곳은 평생을 방랑시인으로 살아간 김삿갓의 기구한 생애를 한눈에 접할 수 있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시 짓는 재주가 남달랐다. 6세 때(순조 12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하였는데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그 죄로 조부는 처형당하고 집안은 삼족이 멸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모친은 자식들을 데리고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고, 후에 영월로 옮겨왔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랐던 김병연은 20세 때 과거에 응시해 김익순을 비난하는 글을 써 급제하게 된다. 그러나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기고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삿갓과 죽장을 친구삼아 동가식서가숙 떠돌아다니며 각지에 즉흥시를 남긴 그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백성의 애환을 노래했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주유하며 수많은 시를 뿌렸던 그는 57세를 일기로 전라도 땅에서 객사했다. 그의 시신은 차남인 익균이 거두어 지금의 자리에 모셔 놓았다.
영월읍 덕포 삼거리에서 88번지방도를 따라 태백방향으로 가다보면 김삿갓 조형물과 노래비가 선 김삿갓마을 입구가 나온다. 때 묻지 않은 수려한 계곡을 따라 쭉 들어가면 곧 김삿갓 유적지에 이른다.
삿갓모양을 한 문학관은 지상 2층·지하 1층(876㎡)으로 이루어졌는데, 김삿갓의 삶을 기록한 연구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된 ‘기획전시실,’ 김삿갓의 삶을 보여주는 ‘일대기실’,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학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난고문학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일대기실에서는 김삿갓이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지었다는 실제 장원급제 시험지를 볼 수 있다.
문학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김삿갓 묘역은 유적비와 함께 동상, 생전에 지은 한시들이 새겨진 시비 거리, 시의 소재가 된 부조물 등이 어우러져 공원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샘물을 떠 마시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읊었다는 시도 눈에 띈다.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 새 백발이 되었네.
성황당 앞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생가로 이어지고, 오른쪽 버들고개로 들어서면 묘지로 이어진다. 다듬어진 비석도 상석도 없는 외로운 무덤에는 투박한 돌비석만이 그의 자취를 알려준다. 청운의 푸른 꿈을 접고 구름처럼 떠돌며 풍자와 조롱으로, 해학과 풍류로 한 세상을 살다간 그의 삶이 느껴지는 무덤이다.
*찾아가는 방법
중앙고속도로 제천IC-국도 38호선 영월방향-영월 시가지-고씨동굴-영춘향교-소백산수련원-김삿갓유적지.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