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요선정과 마애불 강원도 영월땅에 들어서면 절로 마음이 급해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술사의 손끝에서 끝없이 나오는 색종이처럼 다양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익히 그 명성이 자자한 명소들은 물론이고, 곳곳에 자리한 숨은 비경들이 가뜩이나 바쁜 발걸음을 꼼짝없이 낚아채고 만다. 그런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곳,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에 자리한 요선정과 마애불이다.
‘영월에 그런 이름의 명소도 있었던가?’ 갸우뚱해하며 찾아간 이들은 주천강을 내려다보며 자리한 요선정의 절경을 마주하면 말문을 잃고 만다. 드높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 단아한 정자와, 둥근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의 생생한 입체감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 속 풍경처럼 나타난다. 구불구불 몸을 비튼 소나무의 멋스런 모습은 그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요선정은 실상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은 아니다. 1915년 이 마을의 원·곽·이 씨 성을 가진 세 사람이 조선 숙종이 하사한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숙종의 어제시는 원래 청허루라는 정자에 봉안됐으나 일제 강점기 때 이 마을에 있던 일본인 경찰서장이 소유한 걸 사서 되찾았다.
앞면 2칸· 옆면 2칸의 단촐한 정자 앞면에는 오른쪽에 ‘요선정’, 왼쪽에 ‘모성헌’이라 적힌 현판이 있다. 정자 안에는 청허루중건기, 요선정기, 중수기 등이 걸려 있다.
요선정의 아름다움은 정자 그 자체보다 주변 풍경과의 어우러짐이다. 발밑을 흐르는 주천강 물줄기와 우거진 소나무숲, 기이한 암석들이 어우러진 이 곳에 거대한 마애불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 앞쪽에는 허물어질 듯한 오래된 석탑이 있어 이 곳이 단순한 풍류지가 아니라 암자나 절이 있었던 자리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앞선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둥근 바위의 입체감으로 인해 언뜻 배불뚝이 부처님처럼 느껴진다. 전체 높이 3.5m에 이르는 마애불은 타원형의 얼굴에 양감이 풍부해 박진감이 넘친다.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 눈·코·입과 귀가 큼직큼직하게 표현됐다. 묵직한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간략한 옷주름을 선으로 새기고 있다. 손의 모양도 독특한데,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오른손과 평행하게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연꽃무늬가 도드라진 머리광배와 두 줄의 선으로 몸광배도 표현해 놓았다. 하체는 지나치게 크게 나타내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으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에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나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인 불균형한 모습이 이 마애불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애불 뒤쪽으로 펼쳐지는 풍광도 놓쳐선 안된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흐르는 주천강과 바위틈에 자리한 구불구불한 노송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산언덕을 내려가 만나는 이 곳은 일명 요선암 계곡으로 불린다. 계곡물에 씻긴 새하얀 바위들이 마치 빚어 놓은 도기처럼 정교하고 매끄럽다.
조선 중기 풍류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 곳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이 곳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신선을 맞이한다는 그 뜻처럼, 맑고 투명한 물줄기가 기운차게 흘러가는 요선암 계곡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신선들의 놀이터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찾아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에서 나와 영월방향으로 향한다. 황둔 - 주천면을 지나 법흥사 가는 길인 무릉법흥로를 탄다. 법흥계곡 길목에 자리한 호야지리박물관 3거리에서 ‘요선정’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곧 미륵암 가는 입구가 나온다. 초입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미륵암 뒤쪽 등산로를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