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는 현재 시장에서 가장 저평가된 브랜드 중 하나다. 견고한 성능에 소비자 요구에 맞춘 다양한 편의장치, 볼보하면 떠오르는 안전품목, 북유럽 스타일의 세련미로 무장했지만 진가를 알아차리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 것. 실제로 올해 누적 등록(~9월)은 1,320대로 지난해 1,348대에 비해 2.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입차 전체 시장이 21.3%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조금 걱정되는 수치다.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것은 국내 무대에서 활동할 동력 자체가 빈약해진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보는 수입차 트렌드를 가장 빨리 받아드리는 브랜드다. 디젤 인기에 발맞춰 디젤 라인업을 누구보다 공고히 갖추고, 호평을 받아왔던 안전품목들도 적용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 차종의 페이스리프트를 감행해 분위기도 일신했다. 핵심은 북유럽 스타일의 재해석이다. 과하다 할 정도로 멋을 부려 간결미를 해쳤던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첨단 기능 등을 추가했다. 선봉은 역시 플래그십 S80이다. 새로워진 볼보를 만나봤다.
▲스타일
시대를 떠나 볼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단순미다. 이번 페이스리프트 S80도 이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심심한 디자인이지만 그만큼 질리지 않는다. 절제되고 또 절제된 선의 사용은 플래그십으로서의 위용을 드러낸다. S80 자체가 큰 차는 아니지만 대형 세단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가진 것은 이 때문이다.
전면부는 넓어진 느낌이 확연하다. 프런트 그릴의 좌우 길이를 늘린 것. 범퍼에 들어간 그릴 역시 수평구조로 변화했다. 수평 구조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다. 안정감을 주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낸다. 프런트 그릴에 불청객같이 자리 잡았던 레이더 커버는 그릴에 파묻히는 형태로 바뀌어 전체 디자인과 조화를 이룬다. 주간주행등은 프런트 범퍼에 사각 LED 형태로 들어갔다. 테일램프 역시 LED가 사용돼 세련된 느낌을 배가 시킨다.
측면은 큰 변화가 없다. 굵은 선이 볼보의 안정감을 나타낸다. 존재감 확실한 숄더 라인은 트렁크 리드까지 이어진다. 후면은 전형적인 볼보 패밀리룩인 "스칸디나비아 라인"이 두드러진다.
사실 개인적으로 볼보의 백미는 실내 인테리어다. 마치 북유럽 가구를 보는 것 같은 센터페시어 디자인은 꽤나 감각적이다. 무엇을 더 넣을 것이 없는 단순의 미학이 극대화됐다. 여기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어댑티브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더해졌다. 운전자에게 필요한 각종 정보를 디지털화해 표시하는 것. 주행 모드에 따라서도 계기반 구성과 색을 달리해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새롭게 적용된 인테리어 라이팅 패키지는 은은한 분위기를 낸다.
▲성능 및 승차감
엔진은 기존의 것과 동일하다. 직렬 5기통 2.4ℓ 디젤 트윈터보 엔진이다. 최고 215마력, 최대 44.9㎏․m의 견인력을 확보했다. 연료효율 역시 도심 12.4㎞/ℓ, 고속도로 17.3㎞/ℓ, 복합 14.2㎞/ℓ로 기존과 같다. 변속기는 기어트로닉 자동 6단이 조합됐다.
시동을 걸었다. 디젤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진동과 소음이 잘 억제됐다. 하지만 5기통 특유의 거친 느낌도 여전하다. 진동과 소음에 크게 민감하지 않다면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이다.
저회전 영역부터 최대로 뿜어져 나오는 토크 덕분에 순발력이 좋다. 단지 디젤 특성이라고 바라보기에는 D5 특유의 가속감이 일품이다. 단단한 하체 구성과 좋은 하모니를 낸다. 출발 가속이 경쾌하다보니 중속에 이르는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변속기는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변속이 부드럽다. 전반적인 운동 성능이 꽤나 훌륭한 편이다. 움직임이 날래다.
가속 페달을 꾹 눌러 밟으면 높은 엔진음이 귀를 때린다. 단순한 외관에 숨겨진 터프함이다. 직선 주로에서의 움직임 역시 큰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하체 강성이 좋기 때문에 독일차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눈이 많은 스웨덴의 도로 환경을 감안한 세팅이라고 할 수 있다. 곡선 주로에서도 무리가 없다. 제동은 반응 속도가 재빠르다.
스티어링 휠의 반응도 굼뜨지 않아 좋다. 경쾌한 움직임을 위한 초석이다. 플래그십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민첩성을 보인다.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볼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안전장치다. 기존 호평을 받았던 보행차 추돌 방지 장치, 시티 세이프티 외에 새 버전에는 자전거 감지 시스템이 장착됐다. 자전거 사망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자동차 추돌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작동 원리는 시티 세이프티나 보행자 추돌 방지 장치와 흡사하다. 이를 위해 넓은 감지 범위를 자랑하는 광각 듀얼 모드 레이더를 새롭게 추가했다.
▲총평
볼보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여전히 가격 프로모션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판매 방식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지만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되는 활동도 많지 않다. 이런 것들은 볼보가 가진 뛰어난 상품성을 가리는 요소가 된다. 상품이 좋으면 저절로 팔린다는 말은 이제는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이야기다. 묵묵히 제품력을 높여 온 볼보에게는 화려하게 드러내는 홍보는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조용한 볼보일 수 없다는 의미다. 볼보는 본인들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조금 더 확실히 그리고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S80 D5의 가격은 6,100만원이다.
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