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9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이색대결이 펼쳐졌다. 오랜 세월 달리기 성능을 갈고 닦아 온 포르쉐 박스터와 이제 막 태어난 쉐보레 전기차 스파크 EV가 드래그레이스(단거리 달리기 경주)를 벌인 것. CJ헬로비전 슈퍼레이스 시즌 6라운드 이벤트로 치른 이 승부에서 스파크EV는 초반 가속성능에서 박스터에 앞서며 인상적인 주행실력을 드러냈다.
전기차는 100년이 넘는 자동차역사의 시작을 함께했다.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내연기관에 밀려 한동안 모습을 감췄으나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기아자동차 레이EV,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등과 경쟁할 스파크 EV는 강력한 동력성능을 무기로 삼았다. 작은 체구의 단거리 육상선수같은 스파크 EV를 시승했다.
▲스타일&상품성 스파크는 모닝과 함께 국내에서 생산하는 경차다. 그러나 스파크 EV는 경차가 아니다. 길이 3,720㎜, 너비 1,630㎜, 높이 1,520㎜, 휠베이스 2,375㎜로 국내 경차 기준인 "길이 3.6m, 너비 1.6m"를 초과했다. 동력원인 배터리를 장착하면서 뒷범퍼 크기를 늘린 결과다. 취·등록세 면제 등 경차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친환경차에 대한 정부 지원은 상당하다. 공영주차장 할인이나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은 경차와 동일하되 취득세도 140만 원 할인받을 수 있다. 여기에 연료비 절약분을 포함하면 경제성은 충분하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겉모양은 2013년형 스파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이만 50㎜ 낮아졌다. 그나마 차이점은 앞모양이다. 알루미늄 소재의 그릴 장식이 주는 첫인상과 달리 천천히 살펴보면 화려함보다 단순함에 무게가 실렸다. 그물코 모양의 그릴이 디자인만 유사한 덮개로 바뀌었다. 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모터는 공기 유입 및 배출을 하지 않아 라디에이터 그릴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릴 아래쪽 크기도 절반으로 줄었다. 또 헤드 램프 주위와 앞범퍼를 타고 흐르는 라인을 없애고, 아래에서 받쳐주는 듯한 일체형 범퍼 디자인은 안개등과 에어댐 부분을 분리했다.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측면 실루엣은 기존 스파크와 동일하다. 일부 국산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차와 달리 휠 디자인을 스파크와 똑같이 만든 점도 반갑다. 주유구를 대신하는 충전포트는 우측 뒷바퀴쪽 휠캡 상단이 아니라 좌측 앞바퀴쪽에 위치한다.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저구름저항 제품이며, 뒷모양은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 특성 상 머플러를 없앴다. 그래서 범퍼 디자인도 단순화했다.
실내, 특히 계기판과 멀티미디어는 많은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주행속도는 계기판 중앙에 숫자로 표시하고, 엔진회전수 대신 속도표시계 양 옆으로 주행가능거리 및 다양한 정보를 나타낸다. 계기판 왼쪽 버튼을 조작해 가감속 페달 답력, 전력사용 및 충전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주행가능거리의 경우 평균 외에 최대/최소거리를 별도로 확인할 수 있다.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아 "언제 설 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게 해주는 기능이다.
멀티미디어 화면 주변을 유광 소재로 마감한 건 스파크S와 같지만 직물시트와 도어트림 등을 플라스틱으로 정리한 건 경량화 및 원가절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벼운 문은 의외의 단점을 드러낸다. 평소와 같이 문을 닫으면 여지없이 문열림 경고등이 뜬다. 감성적인 아쉬움과 함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요소다.
안전품목은 꽤나 충실하다. 8개의 에어백, HBA(급제동 시 브레이크 답력을 높여주는 장치), ARP(전복방지장치), FTCS(구동력제어 시스템), HSA(언덕밀림방지장치) 등 다양한 차체제어 시스템을 갖춘 것.
편의품목으로는 스마트폰을 연동해 내비게이션 및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마이링크, 2개의 7인치 LCD 디스플레이, 후방카메라, 오토 헤드 램프, 앞좌석 히팅시트, USB포트, 가정용 코드셋 등을 갖췄다.
▲성능
영구자석 전기 모터는 최고 143마력(105㎾), 최대 57.4㎏·m의 성능을 발휘한다. 스파크S의 최고 75마력, 최대 9.6㎏·m와 비교하면 출력은 약 2배, 토크는 6배 정도 높다. 특히 출발 직후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전기모터 특성 상 치고 나가는 맛은 일반 경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스포츠카와 드래그레이싱 이벤트를 자신있게 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안전과 효율 상의 이유로 최고시속은 148㎞로 제한했다. 국내 도로사정과 전기차 특성을 고려했을 때 수긍할만한 요소다. 시속 80㎞까지 올라가는 성능은 여느 스포츠카 부럽지 않다. 엔진 소리와 배기음없이 고요한 가운데 마치 끌려나가는 듯한 이질적인 주행감각은 역설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몸놀림도 꽤나 수준급이다. 차체 높이가 낮아지고 하부에 배터리를 장착해 무게중심이 낮다. 910㎏(스파크 자동변속기)에서 1,280㎏으로 늘어난 무게의 대부분은 배터리가 차지했지만 전기모터 힘이 움직임을 경쾌하게 만든다.
제원표 상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135㎞다. 완충 후 차를 받았을 때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가능거리는 131㎞. 이 상태에서 최대 157㎞, 최저 104㎞를 달릴 수 있다는 표시도 뜬다. 시승결과 전반적으로 숫자정보들은 신뢰할 만했다. 급속도로 주행가능거리가 줄어들거나 실제 주행거리 이상으로 감소하는 일이 없었다. 다만, 냉난방 기기를 과도하게 작동하거나 과격하게 운전하면 걱정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아담한 차체와 순발력은 도심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혼잡한 도로상황에서 차선 변경에 부담이 적고, 주차도 편안하다. 저속 영역은 차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극히 제한된다. 대형 가솔린 세단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기차가 도심형 단거리 이동수단에 적합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총평
전기차는 그 동안 친환경 성격에 가려져 자동차 본연의 즐거움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 내연기관과 직접 경쟁하는 또 하나의 선택으로 등장하고 있어서다. 스파크 EV도 뛰어난 실내 정숙성과 강력한 초반 가속성능을 가진 "즐거운" 차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이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약간의 불안감이 있다는 점이다.
짧은 주행거리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 그래서 스포츠 모드는 물론 난방기기를 가동하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기온이 뚝 떨어진 늦가을 저녁에 히터를 잠깐씩 켰다껐다 하는 모습이 첨단을 달리는 전기차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희극같았다. 물론 스파크 EV만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전기차가 주류가 되기 위해선 획기적인 배터리 성능 개선이나 급속충전기 보급이 절실한 셈이다.
도심형 단거리 이동수단을 표방하는 스파크 EV는 불행히도 서울시내에서 급속충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그나마 전기차 민간보급이 시작되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창원시에서 한국지엠 주도로 급속충전기 설치사업이 시작됐다. 충전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차임에 분명하다. 판매가격은 3,990만 원.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으면 1,700만 원 정도로 구매 가능하다.
시승/ 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사진/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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