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광해군 묘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낙엽이 몰락한 왕조의 운명처럼 처량하다. 조선 제15대 임금이었던 광해군(光海君)의 묘를 찾아가는 길 또한 그러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을 소개하는 안내책자에는 조선왕릉 40기의 위치와 정보는 물론 유명 음식점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광해군 묘’는 나와 있지 않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명 송릉리.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팻말을 따라 가면 영락교회 천주교 공원묘원 입구가 나타난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싶지만 표시석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왼쪽엔 영락공원 공동묘지가, 오른쪽엔 양손을 길게 늘어뜨린 듯한 곡장 안에 봉분 두 개가 보인다. 바로 광해군 묘다. 안내소는 커녕 학술조사나 특별히 참배하러 오는 사람은 쇠문을 열고 들어가서 관람하고 나올 때 꼭 닫으라는, 놀이공원에도 없을 법한 안내판이 덩그러니 서있다. 소나무숲 사이로는 감시카메라 몇 대가 방문객을 지켜 보고 있다.
가슴 저 밑바닥에 휑한 바람이 불어오는 쓸쓸한 만남이다. 사후 연산군과 함께 패륜왕으로 몰려 ‘군’자가 붙었고, ‘역사적’ 업적은 아랑곳없이 당쟁에 휘말려 치욕의 말년을 보낸 광해, 혼(琿). 영화배우 이병헌의 열연에 1,000만 명 넘게 관람했다는 영화의 줄거리보다 더욱 파란만장한 생을 보낸 비운의 왕. 그의 자취는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렇듯 쓸쓸한 묘비와 봉분으로 남아 있다.
묘역 정면에서 왼쪽으로 광해군 묘가 있고, 오른쪽에 문성군부인 폐비 유씨의 묘가 있다. ‘내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제주도에 묻혔던 광해군은 1643년(인조 21) 생모 공빈 김씨의 묘가 있는 남양주로 천장(遷葬)했다. 강화도에서 사망한 부인 폐비 유씨도 양주에 장례를 지내고 광해군 사후 묘역으로 옮겼다. 광해군 묘 인근에는 생모 공빈 김씨의 묘와 친형 임해군의 묘가 있고, 마을 이름이 ‘송릉마을’인 만큼 주위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 송릉(松陵)이라 불린다.
군묘(君墓)의 예에 따라 묘역은 간소하게 조성돼 있다. 삼면의 곡장 안에 광해군과 부인 유씨의 봉분을 나란히 두었고, 각각의 상석과 비석을 세웠다. 지대석엔 안상, 받침돌엔 복련을 새기고 그 위에 비신을 놓았다. 둥근 이수엔 구름문이 새겨져 있다. 망주석과 문인석이 양쪽에, 4각 석등 하나가 가운데 있다. 석등은 세월의 풍파에 닳았지만 활짝 핀 꽃잎만은 선명하며, 지붕들은 경쾌하고 튼실해 죽어서나마 부부의 사랑이 꽃 피어 자란 듯하다.
광해군(1575∼1641)은 조선의 스물일곱 왕 중 근대의 고종과 함께 장기간 재위한 선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후궁인 공빈 김씨로 의인왕후 박씨의 소생이 없자, 당시 조정은 ‘성격이 어지럽고 사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왕이 될 재목이 못된다는 형 임해군을 제치고 총명했던 그를 주목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와중인 1592년(선조 25) 선조는 피난지 평양에서 서둘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의병을 모으는 등 왜구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1608년 선조가 죽자 그 동안 왕의 기량을 제대로 닦았던 그가 33세의 장년이 돼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태 전인 1606년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영창대군이다. 이에 당시 정권의 언저리에 있던 소북파는 광해군이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꼬투리를 잡아 두 살짜리 영창대군을 후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갈등이 깊어졌고, 대북파는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폐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정권에서 소외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서인은 인조반정(1623년)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패륜왕으로 규정하고 만다. 강화도로 유배를 간 광해군은 15년동안 교동 등지에서 지내다가 다시 제주도로 유배됐고, 1641년(인조 19) 6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바람에 솔잎이 울 듯 한 인간의 쓸쓸한 죽음이었다.
*찾아가는 방법
경춘국도인 46번 국도를 타는 게 포인트다. 서울 강북에서는 북부간선도로 - 46번 국도를 이용하는 게 편하고, 강남에서는 강변북로 - 구리 도농 3거리 - 춘천 방향 46번 국도를 타고 금곡으로 향한다. 금곡에서 우회도로인 우측길로 들어서지 말고 금곡으로 들어가는 좌측길로 가면 390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해 390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송릉리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 청량리역 앞에서 165-3번 버스를 타고 송릉리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 혹은 상봉역(7호선, 경춘선) - 사릉역 하차 - 버스 이용 - 송릉리 입구에 이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