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타임즈가 "그 남자의 시승" 코너를 마련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소비자 평가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두 번째 차종은 레인지로버 스포츠 3.0ℓ 디젤 HSE 다이나믹이다. 시승에는 이화여대 건축공학과 박재용 박사(40)가 참여했다. 자동차 공학 전공 후 구조 해석 연구에 몰두 중인 자동차 마니아이자 클래식카 애호가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그 남자"가 보내는 시승기 2탄이다 <편집자>.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영국에서 태어난 전천후 SUV다. 흔히 "사막의 롤스로이스"로 불리지만 정작 한국에서 사막을 경험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막의 거친 도로에 어울릴 만한 성능을 감안할 때 별명은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시승을 경험한 차종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3.0ℓ 디젤 HSE 다이나믹"이다. 랜드로버에는 다양한 SUV가 있는데, 궁극의 끝인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보다 역동적인 외모와 다소 작은 크기의 스포츠, 레인지로버 아래 등급인 디스커버리, 그리고 컴팩트 SUV 이보크와 완전한 하드코어 오프로더인 디펜더(국내미판매)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SUV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운전의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차다. 특히 이번 신형 에선 스포츠만을 위해 새로 개발된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도 중반, 레인지로버의 국내 판매 가격은 1억 원 초반에 육박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필자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를 접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수입사였던 인치케이프코리아는 V8 4.0ℓ 엔진과 V8 4.6ℓ 두 가지 엔진 버전을 판매했다. 그 시절에도 진정한 마니아가 있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를 차고에 넣어 두면 주차된 것만으로도 멋스러움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현재, 랜드로버의 한국 판매량은 눈부시다. 그 중에서 레인지로버는 "남이 안타는 차", "나만의 차"를 갖겠다는 심리가 작용해 인기를 얻고 있다. 여전히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럭셔리 SUV이기도 하지만 제품에 담긴 문화와 기업철학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동차를 이해하는 것에는 실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성능을 직접 느껴보고, 디자인을 즐기며 제조사의 철학을 이해하기까지 2박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10년, 20만㎞"를 주행해도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력셔리 SUV의 교과서인 레인지로버 문을 열어 시트에 오르며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과 실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스포츠 느낌이 다가온다.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은 언제나 평가가 엇갈린다. 어떤 이는 과거 레인지로버의 고풍스러움에 무게를 두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마찬가지 시각으로 신형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보고 있으면 맹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앞모습은 랜드로버 패밀리룩 스타일에 충실했는데, SUV 스타일의 각진 모습에 곡선을 적절하게 활용해 투박함을 세련됨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스포츠’ 성격에 걸맞도록 LED로 구성된 주간 주행등과 안개등도 추가됐다. 그리고 곳곳에 자리 잡은 LED는 첨단의 이미지를 부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옆모습은 C필러와 D필러에서 천장 라인의 각도를 낮춰 역동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또한 하부에는 전면부의 넓은 몰딩을 옆면과 후면까지 연장해 오프로드 주행 때 보호에 신경을 썼다. 뒷모습은 단순하지만 각각의 선을 묘하게 연결해 단단함이 돋보인다. 테일램프 옆은 레인지로버, 이보크 등과 통일성을 주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이 같은 모습을 랜드로버는 고유의 디자인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표현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자동차 외관을 볼 때 가장 먼저 브레이크 디스크와 캘리퍼를 보는 편이다.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할 때 언제든 정확하게 멈추는 게 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 유럽 양산차의 경우 ATE라는 부품회사의 브레이크 시스템을 사용한다. 실제로 유럽 뿐 아니라 미국차들도 ATE 시스템을 많이 이용한다. 반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브렘보 6피스톤 캘리퍼가 적용됐다. 이는 경쟁 차종인 폭스바겐 투아렉과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과 동일한 방식이다. 덕분에 휠 속에 숨겨진 붉은색 캘리퍼가 주는 신뢰가 상당하다.
내부는 역시나 멋지다. 통상 국내에서 "멋지다"는 "초대형", "력셔리", "프리미엄" 등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롤스로이스, 재규어 같은 영국 차종들은 력셔리, 프리미엄이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타보면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를 내뱉을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다.
실내 구성을 보면 역시 오너 드라이버 중심의 제품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뒷좌석보다 앞좌석 두 곳에 더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뒷좌석 공간은 넓지만 시트 열선기능과 등받이 각도를 2단계로 조절하는 것 외에 편의품목은 많지 않다. 장점이 있다면 역시 단점도 있는 법이다.
▲주행 랜드로버 제품군의 주행성능은 타봐야 가치를 알 수 있다. 서울 서교동을 출발해 춘천의 한 체육시설까지 대략 왕복 250㎞, 시내와 고속도로가 뒤섞인 경로를 설정했다. V6 디젤이지만 엔진 음색은 부드럽다.
기어변속은 기존 다이얼 방식이 아닌 스틱 레버 형태다. 주행할 때 ZF 8단 자동변속기의 변속감은 확실히 좋다. 디젤 특성에 따라 엔진회전수의 낮은 한계를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 시속 40㎞로 주행하는 동안에는 파노라마 선루프의 햇빛가리개를 열고 메리디안 서라운드 시스템을 이용해 음악을 틀었다. 외부 소음에도 음질이 명료하다. 실내로 모아지는 소리가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간간히 앞차와의 거리가 좁혀질 때는 충돌경고음과 메시지를 계기판에서 보여준다. 또한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이 작동돼 좌우 접근하는 차가 있으면 사이드 미러에 표시를 해준다. 볼보가 처음 시작했지만 요즘 대부분 최상급 차라면 기본 기능이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톨게이트에서 계기판 주행정보를 초기화하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3.0ℓ 디젤 엔진만으로 속도를 올리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꽤 높은 고속에서도 안정감이 넘치는 만큼 주행 성능은 흠 잡을 게 없다. 효율도 ℓ당 평균 14㎞ 정도로 높은 편이다. 비교적 평균 이상의 속도라는 점에서 정속 주행 때는 그 이상의 효율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승차감은 일품이다. 노면의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는 것과 동시에 고속에서 안정성이 인상적이다. 독일 자동차와 다른 영국적인 단단함을 운전자에게 선사한다. 약 18년 동안 재규어 승차감을 맛본 경험에 비춰 레인지로버의 승차감은 낯설지 않은데, 오히려 이전보다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온로드에서도 역동성을 즐길 수 있는 차로 진화한 흔적이 아닐 수 없다.
되돌아 올 때는 보다 스포츠 주행에 몰입했다. 역시나 주행정보를 다시 초기화 하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초반부터 가속을 시작해 마치 스포츠카처럼 운행했다. 핸들링은 기대 이상이고, 높은 시트 포지션이 불안할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그러나 시속 110㎞ 부근에선 A필러를 통해 풍절음이 들려왔다. 전방 유리의 A필러 부분 워셔액이나 빗물의 후방흐름을 방지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물론 개의치 않아도 될 수준이지만 굳이 흠을 잡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돌아오는 길의 평균 주행속도는 시속 104㎞였다. 순간가속과 순간감속을 다양하게 반복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니 효율은 11㎞로 떨어졌다. 매우 거친 운전을 했음을 감안할 때 결코 낮지 않다. 평소 재규어 XF를 비슷하게 운전했을 때보다 효율이 높은 편이다.
▲총평 앞서도 언급했듯 2박3일은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장단점을 알기에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컵홀더에 넣고, 한적한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리며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인생의 수많은 즐거움 중 하나가 마음에 드는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향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꼭 오프로드 명가에서 만들었다고 정통 오프로더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길이 있으면 달리면 되니 말이다.
현재 국내에 수입 판매되는 대형 SUV는 상당히 많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형 SUV 중 추천하라고 하면 당연히 랜드로버 제품군 중 레인지로버를 권할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동차를 공부했고, 또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받은 강한 인상은 뇌리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억이라는 게 레인지로버를 만나 추억으로 다시 떠올랐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글/박재용(이화여대 건축공학과)
사진/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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