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1881~1973)".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현대미술의 거장. 급진적인 미술 성향으로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며 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뜬금없이 예술가 피카소 얘기를 꺼낸 건 시트로엥이 국내에 네 번째 소개한 차가 "그랜드 C4 피카소"였기 때문이다. 파격을 추구했던 피카소의 영감을 그대로 계승한 듯 보이는 디자인과 실용성은 그야말로 급진적이다. 디자인이 피카소의 실험적 성격을 보여준다면 곳곳의 수납 아이디어는 실용성의 극한인 셈이다. 한 마디로 ‘실용예술’이 자동차에 가감없이 접목된 MPV가 바로 그랜드 C4 피카소라는 얘기다.
그랜드 C4 피카소는 DS3, DS4, DS5에 이은 시트로엥의 네 번째 제품이다. 시트로엥을 의미하는 "C"에 네 번째를 나타내는 "4"를 더해 C4가 됐다. C4의 제품군에는 그랜드 피카소 외에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한 소형 SUV 칵투스도 포함된다. 한 마디로 크로스오버 제품을 C4 카테고리에 넣었다. 시트로엥의 첫 MPV 그랜드 C4 피카소 2.0ℓ 디젤을 시승했다.
▲디자인 개성이 넘친다. 마치 정통 순수미술을 벗어나 파격을 일삼은 피카소를 보는 것 같다. 앞모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LED의 적용위치다. 통상 많이 자리하는 헤드 램프 안에서 벗어나 라디에이터 그릴 옆에 별도로 배치했다. 덕분에 헤드 램프가 위아래 두 개처럼 보이는 효과를 낸다. 더불어 보닛에는 캐릭터 라인이 들어가 날렵함을 보탰다.
측면을 보면 지붕에서 뒤로 흐르는 선이 매끄럽다. 주행방향에 맞춰 디자인한 절삭형 휠은 미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앞모양과 어울린다. 뒷모양도 파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테일 램프는 2단으로 설계해 다부져 보인다. 생산비 절감을 위해 잘 시도하지 않는 디자인이지만 시트로엥은 과감히 채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지나친 비용절감은 오히려 정체성 확립을 느리게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C4 피카소는 5인승이고, 앞에 "그랜드"가 붙으면 7인승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5인승으로 봐야 한다. 3열 공간은 비좁아 사람이 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실내 공간 활용성은 무척 뛰어나다. "2+3+2" 형태의 좌석 중 2열과 3열은 접을 수 있고, 변속레버가 스티어링 휠에 있어 1열의 공간은 곳곳이 수납함이다. 특히 센터콘솔은 상당히 깊어 사용이 잦은 물건을 보관할 수도 있다. MPV의 주요 항목 중 하나인 다양한 공간활용성은 피카소에서 배워야 할만큼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1열 헤드레스트 뒤에는 조그만 미니 테이블도 마련됐다. LED로 조명이 들어와 밤에 매우 유용하다. 또한 1열 동승석은 다리 받침대가 설치돼 최대한 몸을 눕힐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역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항목이다.
디지털 계기판은 대시보드 중앙에 배치했다. 일부 MPV 등에서 쓰는 방식인데, 논란은 여전하다. 전통적 위치인 운전석 스티어링 휠 너머에 있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고, 중앙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시트로엥은 MPV라는 성격을 감안해 동승자들도 배려했다. 게다가 첨단 이미지를 위해 디지털 방식을 적용했다.
센터페시아는 넓은 모니터에 다양한 기능을 모두 디지털로 넣었다.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몇일 시승하면서 쉽게 익숙해진다. 모니터는 터치 방식이어서 글자나 아이콘을 누르면 된다. 이 때 사용자가 확실히 터치했음을 알려주는 신호음이 발생한다. 감성적이고 편리하다.
변속레버는 스티어링 컬럼 시프트 방식이다. 그런데 시프트 레버 조작이 매우 가벼워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나름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시프트 포지션을 계기판 속도계 아래에 표시하는 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능 4기통 2.0ℓ HDi 디젤 엔진을 얹어 최고 150마력, 최대 37.8㎏·m의 성능을 낸다. 6단 자동변속기와 중저속 토크 위주의 설정 덕분에 가속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다. 가족들을 모두 태운 상황까지 고려한 듯 하다. 덩치에 비해 엔진이 작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C4 피카소는 푸조 308과 공유하는 신형 플랫폼인 EMP2를 썼다. 고장력 강판과 알루미늄 비율을 높여 구형에 비해 70㎏ 정도 가벼워지고 강성은 높아졌다. 엔진을 아래쪽으로 밀착 배치해 무게중심 또한 낮아졌다. 덕분에 크기와 성격을 잊을 정도로 운전은 경쾌하다. 효율은 아직 국내 인증을 받지 않았다. 국내 기준으로는 다소 낮아지겠지만 유럽 기준으로 ℓ당 26.7㎞를 기록했다.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진동까지 잘 잡은 데다 하체는 전형적인 유럽차다. 그러나 가족형 차임을 고려해 조금 부드럽게 설계했다. 패밀리카로선 전혀 불만이 없는 수준이다. 7인승 MPV라는 점을 감안해도 코너링의 롤링 억제력이 비교적 뛰어나서다. 또 스포츠카처럼 송곳같은 제동력은 아니지만 제동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총평 그랜드 C4 피카소의 가장 큰 특징은 실용성에 더해진 예술개념이다. 이를 위해 시트로엥은 엔진도 고효율을 선택했다. 고효율 자체가 실용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변속기는 "부드러움의 예술"이라고 강조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랜드 C4 피카소를 보고 있으면 미래지향적이면서 감성적인 짜임새가 인상적이다. 곳곳에 숨겨진 수납공간과 편의품목은 심미성과 실용성을 모두 담아냈다. 7인승임에도 크지 않은 차체와 탁 트인 시야는 재미있는 요소다. 게다가 국내 저공해차 2종 인증 예정인 클린 디젤 엔진은 부수적인 혜택이다. 사전계약 100대 돌파엔 분명 이유가 있다.
국내 시장에는 먼저 7인승을 판매한다. 그리고 연내 5인승 C4 피카소도 출시할 예정이다. 인텐시브와 인텐시브 플러스 두 가지 트림이 있다. 판매가격은 각각 4,290만 원과 4,690만 원이다. 360 비전 시스템, 제논 라이트, 라운지 팩은 딜러를 통한 개별 주문으로 장착할 수 있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 [시승]가족을 위한 대안, 르노삼성 QM5 네오 2.0ℓ 4WD ▶ [시승]가족을 위한 대안, 르노삼성 QM5 네오 2.0ℓ 4W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