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회가 남달랐다. 기사(2013년10월14일자
▶ [르포]50살 맞은 포르쉐 911, 67년생도 "쌩쌩")를 작성하면서도 이 차를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반신반의했다. 1967년에 생산한 1세대 911이 달리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흥분과 기대감에 스투트가르트에서의 재회를 기다린다고 썼던 문장이 기억난다.
인연이 닿은 걸까. 상상이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에서 만났던 46세의 노장 911을 한 해가 지나 독일 스투트가르트 포르쉐 박물관에서 다시 마주했다. 지난해 911 50주년 기념투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차다. 이 것 하나만으로도 포르쉐 박물관을 찾은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포르쉐는 회사 거점인 독일 스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에 지난 2008년 새 박물관을 준공했다. 연면적 5,600㎡의 전시공간에 80여 대의 차를 전시한 곳이다. 규모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 1976년 첫 개장 당시 포르쉐 박물관은 620㎡ 면적에 20여 대의 차가 있었다 하니 지금의 웅장한 입구만큼이나 새삼 규모가 크게 다가온다. 한편으론 총 9층, 연면적 1만6,500㎡에 완성차 160대를 포함해 1,500점의 전시품을 갖춘 벤츠 박물관을 떠올리면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단순히 숫자만으로 현재의 포르쉐 박물관을 평하는 건 왠지 촌스럽다. 100년을 넘는 세월을 지내 온 포르쉐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근처에는 포르쉐 공장과 대형 전시장이 있다. 공업도시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곳에 세련되면서도 아슬아슬한 외관의 박물관이 낯설면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으로 보인다. 건축업체 델루간 마이슬의 작품이다.
입장권과 해설기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눈 앞에 2층 규모의 전시관이 펼쳐진다. 맨 처음 방문객을 맞는 건 포르쉐의 창립자 페르디난드 포르쉐가 1939년 제작한 레이싱카 타입64의 차체다. 페르디난드도 즐겨 탔다는 포르쉐의 시초다. 당시 공도에서 기록한 최고시속 130㎞라는 기록은 지금과 다른 존재감이었을 것이다.
생경한 모습의 바퀴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바퀴와 전기모터를 일체형으로 제작한 인-휠 모터다.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했던 것으로,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의 추진력을 동시에 얻기 위해 고안한 장치다. 최초의 하이브리드카로 불리는 로너-포르쉐의 일부다.
멋스럽게 생긴 소방차 앞으로 다가갔다. 페르디난드가 다임러사에 책임 기술자로 재직했던 1912년에 제작한 차다. 사람을 태우고 워터펌프를 실은 최초의 내연기관차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다임러 공장에서 20년간 자체적으로 사용하다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주에서 36년간 현역으로 뛰었을 정도로 긴 세월 활동했다.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폭스바겐 비틀을 토대로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가 개발한 포르쉐 최초의 고유 스포츠카 356이다. 멀리서 봐도 비틀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다양한 356 중 유독 눈에 띄는 차가 있다. 올해 처음 박물관에서 공개했다는 1957년형 356 카브리올레다. 비틀과 공유했던 1.3ℓ 박서엔진에서 1.6ℓ 가솔린으로 교체한 후기형 차다. 1965년 단종한 356의 뒤를 잇는 게 911이다.
포르쉐는 끊임없이 더 빠른 속도를 추구했고, 수많은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동력성능을 끌어올리고 차체는 점점 더 가볍게 만들었다. 포르쉐라는 이름을 단 최초의 스포츠카부터 디자인에는 공기역학 요소를 고려했다. 차체 다이어트 성과는 탄소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무게가 130㎏에 불과한 908의 차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기 모터스포츠 대회는 드라이버가 운전석에 올라 키를 꽂는 것부터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 시간마저 단축하기 위해 시동키 삽입구를 왼쪽에 설치한 게 포르쉐다. 각종 우승트로피로 장식한 공간에는 그 동안의 우승횟수 "2만8,000"을 자랑스럽게 새겨 놓았다.
온갖 종류의 포르쉐차와 다양한 전시물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하나하나 꼼꼼히 보려면 며칠의 시간이 있어도 모자랄 것 같다. 2층으로 조성한 전시관에는 시대순으로 정렬한 차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눈길 닿는대로 취향껏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헐리웃 가족영화의 제목마냥 포르쉐 박물관은 말 그대로 살아있다. 초현대적 외관이 주는 생생함이 그렇거니와 전시한 차들 역시 박제가 아니다. 80% 정도는 당장이라도 도로로 뛰쳐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관람객들은 또 어떤가.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젊은 연인들이 진지한 얼굴로 차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생경하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있다.
전시장 입구 한켠에 워크숍을 마련하고 클래식카를 복원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 역시 포르쉐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사실, 한 지역에 공장과 판매점, 박물관이 얽혀 있는 모습 자체가 한 브랜드의 생생한 흐름 그 자체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스투트가르트=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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