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재규어 시승기를 처음 본 것은 작고하신 조경철 박사가 월간지에 투고한 글이었다. 그게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일 게다. X300이란 코드네임의 XJ시리즈였다. 이후로 세월이 20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길에서 제법 흔하게 보이지만 그 시절만해도 극소수의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재규어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통상 재규어는 유럽 브랜드 중 한국에서 유지 관리하기가 가장 어려운 차로 지목되곤 했다. 하지만 재규어를 약 18년간 타온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한국에서 매우 즐겁게 탈 수 있는 차가 재규어임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도 타고 있는 1996년식 코드네임 X300 다임러6의 경우 주행 거리가 5만2,700㎞를 겨우 넘어섰지만 오랜 세월 큰 고장은 거의 없었다.
올드 재규어를 뒤로 한 채 한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XF 3.0ℓ 슈퍼차져 AWD를 만나게 됐다. 2009년에 출시돼 재규어의 새로운 도약을 만들어 준 차가 바로 XF다. 그리고 XF의 업데이트 버전이 2013년식 XF이며, 여기에 슈퍼차저와 AWD가 추가된 차종을 경험했다.
지금의 XF는 이전 S타입의 후속이다. S타입이 90년대 재규어의 연속이었다면 XF는 2000년 중반 이후의 재규어 미래를 담은 제품이다. 현재 XF에는 2.0ℓ 3.0ℓ, 5.0ℓ 가솔린과 2.2ℓ, 3.0ℓ 디젤 엔진이 탑재된다. 이 가운데 가솔린 3.0ℓ와 5.0ℓ는 슈퍼차저가 부착돼 있다. 슈퍼차저 적용 차종은 AWD 구동 방식이 있고, 5.0ℓ 슈퍼차저는 R과 RS 버전으로 구분된다. 마음 같아서는 XFR이라는 무서운(?) 놈을 타고 싶지만 일상적인 운행을 위해 3.0ℓ 슈퍼차저 AWD를 선택했다. 현재 XF의 주력은 2.0ℓ 터보와 2.2ℓ 디젤이다. 이외 가솔린은 판매량이 많지 않다.
XF의 경쟁상대는 상당히 많다.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볼보 S80, 렉서스 GS, 인피니티 M(구형버전), 캐딜락 CTS 등 너무나 많은 차종들이 XF의 등급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재규어는 영국 디자인이라는 숨은 무기가 있다. 이안 칼럼의 부드러운 라인이 개성을 한껏 드러낸다.
▲디자인
없었던 전면 주간 주행등이 더해졌고, 후면부 LED 스타일을 변경했다. 부분변경 전 앞으로 돌출된 헤드램프 라인을 보닛과 일치시키면서 부드럽게 처리, 날렵한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3.0ℓ 슈퍼차저 이상 차급의 옆면은 휀더에 크롬 에어 인테이크 장식을 넣어 가솔린 슈퍼차저라는 점을 알려준다. 크롬 에어 인테이크 커버의 넓이만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지만 분명 디자이너 의도가 있었으리라 믿는다. 휠은 19인치이며, 245/40/R19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옆면의 라인은 상당히 매끄럽다고 표현할 수 있다. 특히 C필러 라인은 일품이다. 한편으로는 쿠페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여지없이 세단이다. 물론 C필러 라인 때문에 뒷좌석의 헤드룸이 좁다는 느낌은 버릴 수 없다.
뒷모습은 듀얼 머플러가 장착됐고, 3.0ℓ 가솔린부터는 "3.0"이라는 배지가 붙는다. AWD 또한 "AWD" 배지가 붙는다. 2012년식은 3.0ℓ 슈퍼차저 "3.0" 배지 아래 "supercharged"라는 배지가 붙었지만 2013년형부터는 그냥 "3.0"만 붙는다.
늘 관심있게 보는 브레이크 시스템은 ATE사 제품의 대용량 원 피스톤 캘리퍼를 가진 전륜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브레이크 시스템만으로 제대로 멈춰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하체 마감이 아주 깔끔한데, 최근 자동차회사들이 공기 저항 감소를 위해 하체 마감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것과 무관치 않다.
언더커버를 떼어내면 8단 ZF 자동변속기가 보인다. ZF의 8단 중에서도 높은 토크에도 잘 견디게 설계된 "8HP70"의 변속기다. 역시 이것만 봐도 기본기는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WD 방식이어서 변속기 후부에 AWD 트랜스퍼 케이스가 있다. 하체만 보고 있어도 달리기 성능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인테리어는 단순하다. 계기반은 요즘 흔히 사용하는 와이드 LCD 방식이 아닌 아날로그 스타일이다. 중앙에 조그마한 LCD가 전부다. 실제로 필요한 정보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열선 스티어링 휠에는 오디오 조절, 크루즈 컨트롤 버튼 등이 자리잡고 있다.
XF의 멋스러운 부분은 센터페시어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 방향 디자인이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물론 이런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감을 얻는다. 대시보드에는 가죽과 스티치를 넣어 마감했고, 송풍구는 자동슬라이딩 격납식으로 멋스러움을 더했다. 다이얼식 기어레버도 익숙하다.
재규어랜드로버 컵홀더에는 텀블러 뿐만아니라 신문이나 주간지를 끼울 수 있는 곳이 큰 컵홀더 사이에 준비돼 있다. 운전석은 10방향인데, 나름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임을 감안하면 보다 정밀한 시트가 어울릴 것 같다. 게다가 뒷좌석에는 별 다른 기능이 없는만큼 하이 오너 세단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앞좌석 시트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어야 한다.
오디오, 공조장치는 대쉬보드 모니터에서 모든 제어가 가능하다. 의외로 한글버전이 공급돼 익숙해지면 사용이 편리하다. 국내에 판매되는 수입차 대부분 이제는 한글 인터페이스를 많이 공급한다. 예전에는 재규어가 한발 늦었지만 이제 뒤처진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성능 및 승차감 스마트키를 몸에 지니고 차문을 열면 웰컴 라이트가 반겨준다. 시트에 앉기 위해 발을 넣는 순간 대시보드 송풍구 아래에 부딪친 경험이 적지 않다. XF 오너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선이 필요하다.
8기통 슈퍼차저는 아니지만 6기통 슈퍼차저의 으르렁거리는 배기음도 상당하다. 초기 냉간 시동 때 워밍업을 위해 약 1~2분간 1,500rpm을 유지했다. 냉각수 온도 게이지 대신 LCD창에 메시지가 뜬다. 운전하면서 상태를 수시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디지털로 바뀌는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속도로에 올라 비교적 역동적인 주행을 즐겼다. 약 400㎞ 주행하는 동안 효율은 ℓ당 11㎞ 정도가 유지됐다. 시속 110㎞ 정속주행을 한다면 상당히 좋게 나올 듯하다. 3.0ℓ 슈퍼차저 엔진과 AWD 시스템으로 시속 100㎞를 주행할 때 8단에서 1,200rpm 정도가 유지된다. 정속주행일 경우 효율은 분명 좋아질 수밖에 없다.
가끔 순간 가속을 했다. 속도계가 거침없이 상승한다. 배기음조차 멋진 사운드로 다가온다. 8단 ZF 미션과 AWD 도움으로 달리기 감각이 상당히 재미나다. 재규어 드라이빙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이다. 노면 충격흡수력도 상당히 좋다. 과거 다임러6 같은 경우 XJ 롱버전이어서 고속도로 주행 시 높은 속도에선 출렁이는 불안감이 있지만 XF는 전혀 다르다. 노면의 굴곡을 잘 타면서 달려 나가는 느낌이다.
경쾌한 고속도로 주행연비는 괜찮은 편이지만 시내에서의 효율은 높지 않다. ℓ당 4~6㎞ 수준이다. 하지만 2.5ℓ 이상의 중대형 가솔린의 상당수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다. 물론 연비운전을 하지 않은 조건이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총평재규어는 마니아적 감성이 짙은 차다. 따라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XF는 다르다. 3.0ℓ 슈퍼차저 AWD를 즐기는데 필요한 비용이 8,600만원이지만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한번 타볼만한 차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주력 XF보다 3,000만원을 더 주고 수퍼차저와 AWD를 살 이유가 있을까?"를 질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재규어를 5년 이상 소유해 본다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XF 슈퍼차저 AWD는 직접 체험해야 진가를 안다. 타보지 않고 평가하지 말라는 조언이야말로 XF 수퍼차저 AWD에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다.

시승/박재용 박사(이화여대 건축공학과)
사진/재규어랜드로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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