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전체 자동차의 1.3%, 하지만 최근 들어 연간 판매되는 신차의 13%에 달할 만큼 빠르게 증가하는 것, 모두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전기차 얘기다. 그만큼 오슬로에서 전기차를 보는 것은 마치 택시를 마주하는 것처럼 흔한 일이다. 전기차 종류도 많아서 3인승 초소형차 버디(Buddy)가 있는 반면 테슬라의 럭셔리 스포츠 전기차 모델 S도 흔하게 굴러다닌다. 일찌감치 유럽 내 전기차 시장을 개척한 닛산의 리프(Leaf)는 판매되는 전기차의 30%에 달할 만큼 국민 전기차 대우를 받는다.
이처럼 오슬로가 전기차 선도 도시로 떠오른 데는 노르웨이 정부, 소비자, 자동차회사의 이해 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노르웨이 정부는 친환경 정책 확산을 위해 전기차 5만대 보급 계획을 세웠다.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크리스티나 사무총장은 "정부가 2018년까지 5만대의 전기차를 공급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지금 추세라면 2017년에 이미 5만대를 넘어설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앞장 서 노르웨이 대기환경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드러냈고, 그에 걸맞은 다양한 혜택을 내놨다는 의미다.
노르웨이 정부, 산업으로 전기차 접근 후
친환경 정책으로 전환, 탄소배출 절감 차원 두 번째는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이해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공공 충전망을 무상으로 적극 활용,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내연기관 대비 전기차 사용에 따른 경제적 이점이 부각되면서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지 않는다. 신차 등록세가 면제되고, 버스전용 차선도 다닐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면서 폭발적인 판매 증가를 견인했다.
사실 노르웨이의 전기차 확대 노력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1990년 수입 전기차의 관세를 면제했고, 1994년에는 노르웨이 내 전기차 수요를 촉발시켰던 피브코(현재는 think로 판매된다)가 12대의 전기차를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공급하며 관심을 끌었다. 뒤 이어 곧바로 노르웨이 전기차협회가 발족돼 전기차 알리기에 나섰고, 1996년 정부는 전기차협회의 건의에 따라 자동차세를 감면했다.
이렇게 조성된 전기차 확산 기반은 유럽 내 전기차 제조사를 자극했다. 전기차회사들이 앞 다퉈 노르웨이에 진출한 것. 덴마크에 본사를 둔 케웨트(현재 Buddy로 판매된다)가 1999년 노르웨이에 안착해 현지 전기차인 팅크(Think)와 경쟁을 시작하자 노르웨이 정부는 더 많은 전기차기업 유치를 위해 2001년 25%에 달하는 자동차 부가세를 전기차는 면제했다. 또한 2003년에는 정체가 덜한 버스전용차선 이용도 허락했다. 출퇴근 교통 정체를 겪어야했던 소비자에게 버스전용차선 이용은 구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전기차협회 크리스티나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이어 2008년에는 다양한 방식의 충전기를 시내 전역에 확대 설치했고, 그 결과 올해 10월 현재 전국적으로 1,900여기의 충전기가 마련됐다. 그리고 지금은 급속 충전기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의 노력으로 전기차 이용 불편함이 크게 떨어지자 해외 제조사 반응은 뜨거웠다. 2011년 100% EV 아이미브(i-MiEV)를 런칭한 미쓰비시는 그 해에만 1,050대를 판매했고, 같은 해 전기차 리프(Leaf)를 내놓은 닛산은 6개월 만에 판매량이 1,000대를 돌파했다. 심지어 리프는 엔진을 구분하지 않는 자동차판매 순위에서 노르웨이 내 판매 1위를 달성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현재 판매되는 리프는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1회 충전 주행거리를 160㎞에서 190㎞로 늘린데 이어 실내 공간도 최대한 넓게 확보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최고 차종으로 떠올랐다.
현재 노르웨이 전기차 시장은 올해 8월 기준으로 1만5,000대 가량이다. 판매량에선 인근 스웨덴과 비슷하지만 노르웨이 전체 인구가 스웨덴보다 300만명 적은 500만 명임을 감안할 때 전기차 비중은 높은 편이다. 그 결과 2006년 1,654대에 불과했던 전기차는 올해 8월 누적 기준 3만6,033대로 껑충 뛰었다. 한 마디로 3만6,000대의 전기차가 노르웨이 전국에 설치된 1,900여 곳의 충전기를 통해 무상 전력을 제공받으며, 정체된 시내에서 버스전용차선을 달리고, 페리에 실었을 때 비용을 내지 않고, 공영 주차장 아무 곳이나 세우고, 도로 이용료를 내지 않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2018년까지 5만대 전기차 적극 보급 지원
제조사, 가격 낮추기로 경쟁력 유지 방침 이렇듯 전기차의 선도 도시로 오슬로가 우뚝 서자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하다. 전기차 선두기업을 표방한 닛산을 비롯해 시트로앵, 미쓰비시, 푸조, 르노, 포드, BMW, 폭스바겐 등 기존 완성차 대기업 외에 전기차만 전문 제조하는 테슬라, 미아, 버디 등 11개 기업이 나름의 특화된 전기차를 앞세워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판매 1위는 단연 닛산이다. 닛산 전기차 리프는 전기차 시장 내 45%의 판매 점유율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어 미쓰비시와 시트로앵이 각각 14%와 8%로 뒤를 추격 중이다. 같은 전기 동력을 쓰지만 리프와 아이미브 등은 차급이 다른 만큼 리프의 시장 지배력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오슬로 내 닛산 판매사인 니르거의 에릭 닐슨 매니저는 "리프는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길고, 크기에서 다른 전기차와 비교해 경쟁력이 매우 높다"며 "리프 구매자의 대부분이 공간 활용성과 주행거리를 구매 이유로 꼽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테슬라를 제외한 일반 전기차 중에서 닛산 리프는 현재까지 주행거리 1위 차종으로 꼽힌다. 게다가 최대 토크도 25㎏.m로 충분해 사용에 따른 불편함이 전혀 없다는 게 닛산 노르웨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노르웨이 국민들은 전기차를 구입, 운행할 때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노르웨이 전기차협회 크리스티나 사무총장은 전기차 구매자들의 특성으로 "고학력, 고소득, 대도시, 1가구 2차" 등을 꼽았다. 이들은 가까운 쇼핑이나 출퇴근용으로 전기차를 운행하며, 만족도는 91%에 이른다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또한 전기차를 구매했던 소비자는 다음 차로도 전기차를 사겠다는 응답이 74%에 이를 정도로 높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만큼 경제적 이점이 불편함을 상쇄할 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노르웨이 정부의 면세 혜택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협회는 1만3,000명의 노르웨이 전기차 보유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를 보여줬다. 여러 혜택 중에서 세금 면제가 사라져도 16%의 응답자가 전기차를 구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크리스티나 사무총장은 "가장 큰 장점인 세금 혜택이 사라져도 16%의 구매자가 전기차에 남겠다고 응답한 것은 그만큼 대중화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노르웨이 정부가 5만대 보급 이후 혜택 중단을 언급했지만 축소 폭을 줄이되 제조사들이 전기차 주행거리를 꾸준히 늘리면 구매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야만 2020년까지 ㎞당 평균 85g 이하의 이산화탄소 배출기준 충족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노르웨이 정부의 대책도 발 빠르다. 정부는 세금 혜택 축소가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국민들의 전기차 이용 불편함을 줄이는데 최대한 치중한다. 이른바 완전충전에 20-30분이 걸리는 급속 충전기 보급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특히 급속 충전의 경우 여러 차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복합 방식을 집중 보급, 제조사에 관계없이 국민들이 손쉽게 이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협회 크리스티나는 "노르웨이 정부는 원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름 값 인상, 대중교통요금 절반 인하 등을 검토했지만 배출저감 효과가 미미해 전기차를 선택했던 것"이라며 "교통 부문 배출 저감의 최고 친환경 정책은 결국 차종 교체였다"고 설명했다.
닛산, BMW, 폭스바겐, 푸조, 미쓰비시 등 전기차 각축
소비자 선택, 공간 활용성 높은 리프 구매율 높아 하지만 전기차 보급의 걸림돌에 대한 솔직함도 드러냈다. 바로 세금이다. 크리스티나 총장은 "노르웨이는 자동차 세금이 매우 높고, 이 중 상당수가 지방 재정"이라며 "보급량을 5만대로 설정한 것도 재정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기차 제조사들의 가격 낮추기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한 마디로 초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급 정책이 필요하지만 이후는 제조사 스스로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대중화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한 셈이다.
한편, 노르웨이 전기차 보급 정책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기차의 시작은 결국 정부 주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그런 다음 제조사의 노력과 소비자 불편함이 줄어야 결국 확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최근 일부 지자체가 전기차 보급 때 보조금을 주며 구입을 장려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배경이다. 그러나 보급에 따른 재정과 에너지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노르웨이처럼 전력을 수출하는 곳도 아니고, 노르웨이처럼 정부 재정이 풍부하지도 않아서다.
오슬로=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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