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마칸에 직렬 4기통 2.0ℓ 엔진을 탑재했다. 덕분에 뒷말도 무성하다. 오랜 기간 수평대향 또는 V형에 최소 3.0ℓ 이상 배기량을 적용해 온 탓이다. 포르쉐 세계에선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포르쉐’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느낌은 어떨까? 포르쉐가 처음 시도한 2.0ℓ 엔진의 마칸을 시승했다.
흔히 포르쉐 제품군은 정통 스포츠카와 SUV로 구분된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아들과 사위"에 비유하곤 한다. 설립자인 포르쉐 박사부터 줄곧 이어져 온 정통 스포츠카 제품군이 아들이라면 포르쉐 최초 전문경영인이었던 벤델린 비데킹의 주도로 세상에 등장한 SUV 카이엔을 사위로 부른다. 굳이 따르자면 마칸은 카이엔에 이은 포르쉐의 둘째 사위이고, 그 중에서도 4기통 2.0ℓ는 첫 째인 V6 3.6ℓ 터보, 둘째인 V6 3.0ℓ에 이은 막내에 해당한다. "보급형 포르쉐"라는 다소 어색한(?) 수식어가 붙게 된 배경이다.
▲디자인 배기량이 2.0ℓ에 불과하다고 디자인이 다르지는 않다. 트윈 타입 헤드램프와 넓은 그릴은 포르쉐 DNA를 감추지 않고, 좌우로 넓게 포진한 리어램프와 트윈머플러는 여전히 공격적 성향을 띤다. 게다가 카이엔보다 작은 중형 SUV지만 밖에서 보면 그리 작다는 느낌도 별로 없다.
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공간 면에서 막내 SUV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넉넉하다고 할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빨간색 가죽시트가 주는 강렬함은 시선을 잡아당긴다. 색상에서부터 스포츠 감각을 발산, 포르쉐임을 주지시킨다.
물론 인테리어는 여느 포르쉐와 마찬가지다. 키홀더는 스티어링 휠 왼편에 있고, 속도계 또한 중앙의 엔진회전계를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한다. 변속레버 주변은 여전히 로직 버튼이 가득하고, 룸미러 주변도 로직 방식의 버튼이 좌우 대칭형으로 정렬돼 있다. 한 마디로 막내 포르쉐라고 생김새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성능 및 승차감
기본적인 엔진 제원은 직렬 4기통 1,984㏄ 가솔린 터보다.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직렬 4기통에 두 개의 터보차저가 장착된 트윈터보이며, 직접분사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얻어내는 최대 출력은 1분당 엔진이 5,000회 이상 회전할 때 237마력이다.
그런데 엔진에서 주목할 점은 최대토크 발휘 구간이다. 1분당 1,500회 회전할 때 35.7㎏.m에 달하는 최대 토크가 4,500회까지 유지된다. 최대토크 유지 구간이 매우 넓다는 것은 속도 영역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가속에 유리하도록 엔진을 설계했다는 의미다. 스포츠 DNA를 생명처럼 여기는 포르쉐로선 마칸에 적용된 2.0ℓ 가솔린 엔진의 작은 배기량 한계를 넘기 위해 성능 향상을 위한 기술은 모두 동원한 셈이다.
그러나 2.0ℓ는 마칸의 가장 아래에 배치된 만큼 효율도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공차중량을 1,770㎏에 묶은 것도 효율을 감안한 선택이다. 덕분에 국내에서 복합효율은 ℓ당 8.9㎞를 획득했다. 쉽게 보면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잡기 위한 전략 제품이 바로 마칸 가솔린 2.0ℓ였고, 이런 포르쉐의 생각은 제품에 여과 없이 담겨 있다.
시승 중 내내 머리를 맴돌았던 단어는 "2% 부족한 포르쉐"였다. 분명 주행 감성은 포르쉐인데, 강렬한 배기음이 감돌지 않아서다. 물론 SUV 성격에 2인승 로드스터와 같은 묵직한 배기음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면 뾰족한 변명도 없다. 진동소음이 잘 억제된 작은 SUV에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포르쉐 라벨을 붙인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포르쉐 라벨이 주는 무게감은 분명 다르다. 가속성이 뛰어나야 하고, 운동성능은 기본이다. 이런 기준을 적용할 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런 아쉬움을 포르쉐가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4기통 2.0ℓ 엔진을 선택한 것은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함과 동시에 커져가는 중소형 SUV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칸 2.0ℓ 가솔린은 포르쉐를 향한 비판(?)과 대안 사이를 오가는 운명인 셈이다.
시승해 보면 가속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감안할 것은 포르쉐 기준일 뿐이다. 일반적인 4기통 2.0ℓ 차종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에 6.9초가 걸린다는 설명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제동은 매우 뛰어난데, 제 아무리 고속이라도 페달을 밟는 순간 정확히 속도를 줄이며 스티어링 휠의 흔들림도 없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승차감이 단단해지고, 변속 시점이 달라지며 야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포르쉐 DNA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도록 변신하는데, 충분히 체감 가능한 수준이다. 중소형 SUV의 주 무대가 도심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편안함을 많이 담아냈다면 ‘포르쉐 정신’은 스포츠 모드에 듬뿍 반영했다. 게다가 네바퀴굴림 방식이어서 코너를 돌아나가는 운동성능도 좋다. 물론 네바퀴굴림은 혹시 모를 오프로드 상황도 대비하자는 선택이다.
진동소음은 잘 억제됐다. ‘포르쉐’라는 점에서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SUV의 특성 상 여럿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당연한 조치다. 게다가 최근 스포츠카 DNA를 편안한 SUV로 확대하는 중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긍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게 보면 포르쉐라고 무조건 배기음이 귀를 때려야 한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포르쉐에 앞서 세단(파나메라)과 SUV(카이엔, 마칸)라는 제품 성격도 중요해서다. 4기통 마칸이 나오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총평
마칸 2.0ℓ는 최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제품이다. 포르쉐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평가와 오히려 접근성을 높였다는 의견이 공존해서다. 그런데 되돌려보면 마칸의 형님 격인 카이엔이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이엔과 포르쉐의 정체성을 두고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카이엔은 포르쉐 전체를 살려낸 차종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서서히 SUV 주도권은 중소형으로 넘어가는 중이고, 덕분에 4기통 마칸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장벽은 7,560만원의 가격이다. 적절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지만 포르쉐로선 "그래도 포르쉐"라는 자존심을 듬뿍 넣은 가격이 아닐까 한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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