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체로키가 다시 태어났다. 필자가 탔었던 1992년식 체로키 리미티드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20년 전 체로키가 넓은 초원에 풀어진 야생말이었다면 지금의 체로키는 조련사에 의해 제대로 길들여지고, 유명 헤어 디자이너가 한껏 멋을 낸 느낌이다. 20년 전 체로키가 2.5ℓ와 4.0ℓ 가솔린 엔진이었던 것에 반해 지금은 2.0ℓ 디젤, 2.4ℓ, 3.2ℓ 가솔린 심장이다. 다운사이징 추세를 따라가는 체로키가 과연 어떤 감성으로 다가오는지 시승을 통해 알아봤다.
체로키는 야성적이다. 적어도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하드코어여야 한다. 또한 랜드로버와 같은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진흙탕에 빠져도, 바위산을 올라도, 강물을 가로질러도 체로키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적어도 20~30년 전 체로키, 웨고니어 등은 그랬다. 90년 초 그랜드 체로키에게 최고 자리을 넘겨주기 전까지 랭글러와 다른 마초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2000년 후반 잠시 주춤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짚 가문의 혈통은 체로키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어떻게 변했을까.
▲디자인 앞모습은 뱀의 머리가 떠오른다. 혹자는 방향지시등이 있는 전면부 위가 뱀의 눈을 닮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주 접하면 익숙해질 것이다. 필자도 처음 체로키를 접하면서 "과연 체로키일까?"를 많이 생각했다.
일단 많이 부드러워졌다. 전면에서 후면부까지 곡선을 많이 사용했다. 차폭등, 방향지시등, 헤드램프, 안개등을 3등분해 매우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한 앞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뒷모습은 최근 출시되는 중소형 SUV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나름 짚 혈통을 드러내기 위해 엠블럼만이 강조된 듯하다. 이외 주간주행등과 브레이크램프는 요즘 흐름에 따라 LED 소재가 적용됐는데, 밤에는 조향각에 따라 안개등이 점등되는 코너링 램프 기능이 포함됐다.
운전석에 앉으면 먼저 재미나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전면 유리창 센터 아래에 윌리스 짚 그림이 유리창을 따라 둘러진 검은색 띠 중간에 들어가 있다. 짚이 바위를 올라가는 형상이다. 폭스바겐도 그렇지만 요즘은 제품 곳곳에 기업 이미지를 형상화한 상징적인 아이템을 포인트로 넣는다. 작지만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운전석에서 바라본 체로키 대시보드는 최근 짚 스타일을 반영하듯 간결하다. 대부분의 기능을 센터에 있는 대형 모니터 화면에 넣었다. 자주 사용하거나 운행 중 안전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들만 외부에 배치를 했다. 또한 크기가 큰 컵홀더를 도어와 센터콘솔 앞에 비치하고, 저장장치 연결을 위한 USB, SD카드 커넥터와 충전용 파워아웃렛을 구비하고 있다. 거기에 센터 암레스트 내부에는 스마트 기기 홀더가 있어 스마트 폰과 같은 기기의 거치가 편리하다.
룸미러 위쪽에는 5인 좌석벨트 착용 유무를 나타내주는 경고등이 있다. 유럽 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시승차의 경우 우레탄 매트가 적용됐는데, 신발이 진흙에 많이 오염돼도 큰 걱정을 하지 않도록 했다.
▲성능 및 승차감
엔진은 2.0ℓ 디젤로 무장했다. 물론 북미에선 2.4ℓ, 3.2ℓ 가솔린 엔진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디젤 선호 현상을 반영해 디젤을 주력으로 삼는 중이다.
탑재된 2.0ℓ 디젤 엔진은 170마력이다. 일상적인 주행과 적당한 고속에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35.7㎏․m의 토크는 1,750rpm에서 발휘된다. 여기에 ZF 9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효율이 향상됐다. 하지만 순수 시내 주행에선 8~9㎞/ℓ, 고속화 도로는 10~11㎞/ℓ, 고속도로는 12~13㎞/ℓ의 효율을 나타낸다. 구간구간 경쾌한 운전을 적용한 효율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물론 효율에 비중을 두는 소비자라면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브레이크는 충분하다. 고속 또는 반복적인 풀브레이킹에도 잘 선다. 일반적인 양산차로서는 만족스러운 성능이다. 그리고 후방 주차시 주차거리 감지 센서와 브레이크 도움으로 위급상황 때 저절로 멈추는 기능도 있다.
체로키 AWD 시스템은 그랜드체로키 시스템과 유사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만 세팅해 놓았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주로 "오토(Auto)" 기능으로 사용하지만 복잡한 도심을 떠나 오프로드를 만나러 갈 때 짚의 혈통을 이어받은 실력을 발휘한다. AWD의 시스템은 오토(auto), 스노우(snow), 스포트(sport), 샌드/머드(sand/mud)로 간결하게 나누어 놓았다.
소음차단 기술도 적당한 편이다. 매우 높은 속도에 돌입하려면 일부 풍절음을 감당해야 하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선 조용한 편이다.
노면의 충격력도 각족 부싱들이 잘 흡수하고 있다. 다만 승차감은 전형적인 이전의 미국차보다 단단하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의 지역(유럽, 북미, 아시아)적인 추세가 많이 섞여지는 듯하다.
▲총평
국내에 2.0ℓ 혹은 이하 디젤엔진 SUV 시장은 뜨겁다. 정말 다양한 차종이 포진해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다. 이러한 전쟁터에서 체로키가 과거 명성을 얻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가격과 부품이다. 합리적인 제품 가격, 그리고 서비스 공급 확대가 소비자에게 매력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디자인은 너무나 개인차가 많아서 호불호가 많이 나뉜다. 많은 안전장치와 옵션으로 중무장한 중소형 SUV인 체로키가 틈새시장 명맥을 겨우 이어갈 것이냐? 아니면 질주하는 2.0ℓ 중소형 SUV시장을 한번 제대로 잡아볼 것이냐는 소비자의 뜻에 달려 있을 듯하다.
시승/박재용 박사
(이화여대 건축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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