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i8 PHEV(Plug-in Hybrid Vehicle)는 문이 위로 열리는 걸윙 도어가 적용된 스포츠카다. 공격적인 디자인에 낮은 차체, 그리고 안정감을 주는 너비 등은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양만 스포츠카를 지향한 것은 아니다. 최고 231마력 및 32.6㎏.m의 토크를 발휘하는 3기통 1.5ℓ 트윈파워터보 엔진과 최고 131마력에 25.5㎏.m의 회전력을 갖는 전기모터가 결합됐다. 두 개의 동력원이 순간적으로 힘을 합치면 탄소섬유플라스틱 적용으로 1,485㎏에 불과한 차체를 단숨에 고속으로 끌어 올린다. 그럼에도 이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당 49g에 머문다. 그래서 i8은 "친환경 스포츠카"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다. 프랑스 마르세이유 일대에서 BMW i8을 시승했다.
개인적으로 i8을 처음 본 것은 지난 2011년이다. 모터쇼 공개 전 순수 전기차인 i3와 PHEV인 i8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i3가 먼저 양산됐다. 그리고 얼마 후 i8도 이른바 BMW "i" 브랜드에 포함되며 "i" 드라이브 시대 개척에 동참했다.
기본적으로 BMW "i"는 전기 동력 기반의 친환경 제품 브랜드를 의미한다. EV인 i3와 PHEV로 분류되는 i8은 물론 향후 다양한 전기 동력 기반의 친환경 제품이 "i"에 추가될 예정이다. 한 마디로 전기와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할 때 주동력이 전기라면 "i", 내연기관이라면 "BMW"에 남는 식이다. 따라서 "i" 브랜드 제품에는 공통적으로 전기 동력이 적극 활용된다. 실제 마르세이유에 위치한 BMW 미라마스(Miramas) 주행시험장에 나타난 BMW 차세대 PHEV 시스템이 탑재된 차종도 "i" 브랜드로 출시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5시리즈 GT에 초기 시스템이 적용돼 2020년 출시를 위한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다.
▲디자인 납작한 보닛, 위로 올려지는 도어, 공격적인 눈매 등은 누가 봐도 한 눈에 i8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이미 컨셉트 시절부터 많은 전시회에 등장한 탓에 눈에 익숙하기도 하다. 우선 스포츠카라도 친환경 차종인 만큼 블루 색상을 덧댄 키드니 그릴이 인상적이다. 460㎜ 미만의 낮은 설계로 앞모습은 전형적인 스포츠카다. 물론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헤드램프다. LED와 함께 세계 최초로 레이저가 활용됐다.
레이저 램프는 밤에 제 역할을 톡톡히 발휘한다. 해가 진 뒤 잠시 경험한 헤드램프는 밤길 주행에 나설 때 지능형으로 작동된다. 반대편 차선이 비었을 때는 상향등이 작동되고, 이어 시속 70㎞가 넘어서면 레이저 램프가 추가로 불을 켠다. 동시에 야간 시야가 확 트인다. 먼 거리까지 불빛이 도달하는 만큼 밤길 운전도 문제가 없다. 때마침 반대편에 차가 나타나자 일시적으로 상향등이 하향등으로 바뀌고, 지나가면 다시 상향등으로 길을 밝혀준다. 짧게나마 i8의 시승 시간을 야간에 정해 놓은 이유도 i8의 레이저 램프를 자랑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경험해보면 충분히 자랑할 만한 기능과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측면은 날렵함 그 자체다. 얇은 보닛에서 출발해 뒤로 갈수록 살짝 높아진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실루엣이다. 덕분에 저항은 0.26Cd로 낮췄다. 통상 스포츠카의 공기저항 조건이 0.30Cd 이하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저항은 매우 낮은 셈이다. 동시에 도어부터 리어 펜더에 이르기까지 볼륨감을 극대화시켰다. i8의 제품 성격이 친환경 미래형 스포츠카란 점에서 첨단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 올린 결과다.
이 같은 미래지향적인 모습은 뒤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뒷 유리와 연결된 트렁크 도어가 좌우 날개와 연결돼 스포일러 역할을 하며, 범퍼에도 블루 색상이 더해져 친환경임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게다가 배출가스가 거의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머플러는 차 아래에 최대한 밀착시켰다. 밖에서 보면 머플러는 발견하기 어렵다.
실내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디지털 컬러 계기판이다. 두 개의 원형 그래픽 중 왼쪽은 속도, 오른쪽은 전기 구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중앙 아래에는 연료계와 전력계가 동시에 마련됐는데, 전기로 구동 가능한 거리는 물론 전체 주행 가능한 거리가 표시된다. 전기모터의 출력을 디지털로 표시해 운전자에게 수시로 알려주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외 시트는 버킷 타입으로 온 몸을 흔들림 없이 지지하는데, 뒷좌석도 마련돼 있지만 어른이 타기에는 불편하다. BMW로선 ‘2+2’ 시트 구성을 강조하지만 자주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또한 센터페시어 상단은 모니터가 자리해 내비게이션 등 각종 필요 정보를 제공하며, 그 아래에 넓은 공조 덕트가 자리했다. 센터페시어를 비대칭으로 설계해 역시 미래적 이미지를 담아냈다.
▲성능 및 승차감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전원이 공급된다는 표시가 뜬다. 이어 가속페달을 밟으면 전력 기반의 구동을 한다. 천천히 페달에 힘을 줬지만 오르는 속도는 가파르다. BMW가 결코 잃지 않으려는 역동성 만큼은 제 아무리 배터리 용량이 작아도 지켜내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전기로 구동할 때 ‘eDrive’ 버튼을 누르면 전력이 소진될 때까지 전기로 구동된다. 최고 시속 122㎞까지 속도가 오르고, 최장 35㎞를 주행할 수 있다. 물론 운전자마다 거리는 다를 수 있다.
전기로 주행하다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프트다운이 일어나며 "eDrive" 모드는 해제된다. 3기통 트윈파워터보 엔진이 동력을 공급하는데, 본격적인 스포츠카의 면모를 보인다는 뜻으로 배기음이 뿜어져 나온다. 배기음은 거칠지 않고, 경쾌하다. 성악에 비유하면 바리톤보다 테너에 가까운 음색이다. 이 때 주행모드는 전기와 엔진이 상황에 따라 역할을 바꾸거나 동시에 작동하는 "오토 이드라이브(Auto eDrive)"로 변한다.
한적한 길에 들어섰을 때 시프트 레버를 스포트 위치에 놓자마자 계기판이 BMW 고유의 주황색으로 돌변한다. 동시에 배기음이 커지고, 승차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전기와 엔진이 순간 낼 수 있는 최대 힘을 공급하는 상태다.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 인근 산간도로를 움켜쥐고 돌아나가는 성능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노면도 한국의 국도와 달리 매우 거칠어 고속 코너링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고 여겼지만 생각은 기우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티어링 휠에 즉각 반응, 운동성능의 정수를 보여준다. i8의 기본 성격이 스포츠카임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대목이다.
물론 운동성능의 극대화는 네바퀴굴림 방식도 분명 한 몫 했다. 1.5ℓ 엔진이 뒷바퀴를 구동한다면 전기모터는 앞바퀴 구동에 관여하는데, 좌우 운동성능의 극대화가 필요할 때 앞뒤 구동력이 ECU로 제어돼 코너링 성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PHEV 스포츠카답게 에너지를 순식간에 충전하는 시간도 빠르다. 전기와 내연기관이 함께 작동하는 오토 이드라이브(Auto eDrive)에 두고 주행할 때 차가 속도를 줄이면 어김없이 브레이크를 통해 회생에너지가 배터리에 충전된다. 의외로 충전율이 뛰어나 잠시만 속도를 줄여도 표시돼 있는 전기 주행 가능거리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흔히 말하는 친환경 운전을 한다면 전력으로 37㎞ 이상 주행도 충분할 것 같다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BMW는 왜 전기 구동 가능 거리를 37㎞로 설정했을까? 이유는 한 가지, 소비자들이 평균적으로 이용하는 하루 주행거리였기 때문이다. BMW 연구센터 헬무스 뷔슬러 연구원은 "오랜 기간 도시 거주자들의 패턴을 조사한 결과 도심에서 가장 많이 주행하는 거리가 35㎞ 내외였다"며 "그 이상 거리를 늘리면 배터리 무게증가에 따라 역동성이 손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섬유복합플라스틱 활용에 따른 경량화 전략이 배터리 무게로 상쇄된다면 BMW 제품 철학인 역동적 드라이빙을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고속에서 제동력은 스포츠카답게 일품이다. 마음속으로 설정한 지점을 두고 고속에서 짧은 거리 급제동을 시도했는데, 오히려 기대한 지점보다 앞에 선다. 그만큼 캘리퍼와 디스크의 조화가 적절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효율은 유럽연합 기준 ℓ당 47.6㎞다. 엔진 배기량이 1.5ℓ라는 점에서 연료탱크도 30ℓ면 충분하다. 30ℓ의 연료와 충전됐거나 또는 주행 중 충전되는 전력을 모두 소진하면 최장 600㎞ 이상을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EV 충전이 없어도 500㎞ 이상 역동적인 주행은 충분하다는 게 BMW의 설명이다. 하지만 EV 모드 활용이 극대화될수록 제품 개발 컨셉트인 친환경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내비게이션에 커넥티드(Connected) 기능을 최대한 담아냈다. i3처럼 도심의 충전기 위치 정보와 충전 효율을 스마트 기기로 관리할 수도 있다.
▲총평 i8을 타면서 뇌리에 남은 또 하나의 특징은 편의품목이다. 오로지 달리기만을 위해 일부 편의기능을 포기하는 제품과 달리 BMW는 i8에 각종 첨단 편의장치를 최대한 많이 담아냈다. 특히 BMW가 추구하는 역동적인 드라이빙을 위한 품목은 나열이 어려울 만큼 많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하이빔 어시스턴트, BMW 커넥티드 운전자 지원 시스템, 시티 브레이킹 기능이 포함된 보행자 경고 어시스턴트, 주차거리 경보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시속 30㎞ 이하 전기모드로 주행할 때는 일부러 소리를 만들어 보행자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조용해 오히려 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만든 기능이다.
나아가 i8은 맞춤형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20인치 휠, LED 헤드라이트, 대형 연료탱크 등은 선택할 수 있다. 이 중 연료탱크는 42ℓ까지 늘릴 수 있다. 평소 충전기가 많지 않은 곳의 소비자를 배려한 셈이다. 이를 통해 BMW가 추구하는 "불편함 없는 전기차 생활"을 만들어 간다는 얘기다.
BMW i8 PHEV는 한 마디로 고효율, 친환경 정통 스포츠카다. 경쟁 브랜드가 최소 3.0ℓ 이상 고배기량으로 고속을 추구할 때 BMW는 1.5ℓ 엔진과 전기모터로 어깨를 견줬다. 달리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배출규제도 충족시켰다. 따라서 i8 PHEV는 탄소세와 거리가 멀다. 고배기량 스포츠카를 타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연료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오히려 친환경이어서 한국에선 구입할 때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년 한국에 들어올 i8 PHEV에 많은 기대가 된다. 어쩌면 정통 스포츠카 시장의 개념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고효율과 고성능의 편익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서다. 물론 유럽에서 1억5,000만원에 판매되는 가격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할 지 예측할 수 없지만 유럽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파괴력은 분명 있을 것 같다.
마르세이유(프랑스)=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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