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게임 디자이너 K씨는 매일 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출퇴근길을 항상 음악과 함께 해왔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자신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의 K씨.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자신의 통제 아래 있어야 마음이 그지만 음악이 자신의 운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에게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무료함을 달래주는 BGM(Back Ground Music)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K씨는 문득 떠올렸다. 같은 상황에서도 음악이 다르면 자기 행동패턴이나 감정상황이 달라지던 경험을 말이다. 하다 못해 여행을 떠날 땐 신나는 노래를 일부러 찾아 듣지 않았던가.
"운전하다보면 다른 차랑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있잖아요. 조용한 음악을 들을 땐 그냥 신경쓰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을 땐 속도를 내서 따라붙거나 추월하기도 하더라구요"
왜 음악이 그의 운전방식에 영향을 주었을까. 어떤 음악이 여행의 기분을 한층 신나게 할까. 소음에 신경쓰지 않고 운전에 몰두하도록 돕는 음악은 무엇일까. 매일 쏟아져 나오는 많은 음반들, 라디오의 신청곡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음악들은 어떻게 이런 필요를 적절히 채워주고 있을까?
그렇다면 K씨의 선곡 리스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뉴에이지 스타일의 "Sky Walker"는 퇴근길 평안한 느낌을 주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쿠바에 관심을 가지면서 듣게된 "Homenaje"는 반복적인 리듬과 재즈풍, 서민적 공감대를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는 과거 연인을 떠올리면서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선희의 "노을"과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은 한강변의 건물과 노을을 바라보며 노래에 몰입하기 좋았다.
드라이빙에서의 음악은 단순히 걸을 때나 일하면서 듣는 노래와는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음악의 청각적 자극이 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전달되는데, 운전자의 눈과 생각은 운전에 몰입된 상태에서 음악은 배경처럼 자신의 공간을 채운다. 운전자는 계속 앞을 보면서 긴장감과 함께 순식간에 복잡한 사고과정을 거쳐 차의 속도와 방향을 본능적으로 조절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음악은 순차적으로, 동시에 의미 있는 패턴과 구조를 가지며 운전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음악이 각성과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긴장과 이완의 형태를 반복하는 동안 운전에 의미 있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리듬은 차선 변경이나 속도 변화에 영향을 준다. 가사와 악기의 음색과 선율은 전이의 감정을 갖도록 만든다. 드라이빙과 음악의 상호작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차 안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유발하며 각자의 드라이빙 패턴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한(뮤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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