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바이러스는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전염성 병원체를 뜻한다. 자동차에선 강렬한 성능, 아름다운 디자인에 반한 마니아들이 걸리는 일종의 상사병으로 인식한다. 그 중에서도 "포르쉐 바이러스"는 매우 강력한 것으로 꼽힌다. 치유법은 포르쉐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만큼 치명적이되 매혹적인 바이러스라는 얘기다.
포르쉐 바이러스의 강력함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중독성이 다른 바이러스와 차원이 다르다. 가장 최근에는 눈과 얼음의 나라, 북유럽에 포르쉐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윈터 퍼포먼스 드라이브"라는 글로벌 행사를 스웨덴 시골 셸레프테오에서 개최한 것. 이 자리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한국 언론이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위해 모였다. 판매가 임박한 카이엔 GTS와 카이엔 터보S의 성능을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셸레프테오의 기온은 영하 10도. 며칠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겨울 드라이빙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최적의 조건이다. 포르쉐 윈터 퍼포먼스 드라이브는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숙소에서 셸레프테오 드라이브센터까지의 자유시승 그리고 셸레프테오 드라이브센터에서의 핸들링 서클, 슬라럼 트랙, 가속 트랙, 숲길(포레스트) 트랙, 동굴, 핸들링 트랙 등이다.
▲자유시승 카이엔 터보S에 올랐다. 카이엔의 최고속도를 자랑하는 동시에 고급스러움까지 추구하는 차다. V8 4.8ℓ 엔진으로 570마력을 뿜어낸다. 최대토크는 81.6㎏·m에 이른다. 구형과 비교해 출력은 20마력, 토크는 5.1㎏·m 향상됐다. 포르쉐 트랙션 매니지먼트(PTM), 포르쉐 스태빌리티 매니지먼트(PSM)에 의한 스포츠 주행성능이 장점이며, 스포츠 크노로 패키지를 기본으로 갖췄다. 스포츠 배기 시스템, 사운드 심포저 등은 선택품목이다.
외관에서는 고광택 소재를 덧칠한 21인치 911 터보 디자인 휠이 눈에 띈다. 또 프론트 엔드에는 대형 에어 인테이크를 적용했다. 포르쉐 다이내믹 라이트 시스템(PDLS 플러스)을 장착한 점도 특징이다. 차체와 루프 스포일러, 휠아치 몰딩은 색을 통일했다.
숙소에서 셸레프테오까지의 이동거리는 62㎞. 소요시간은 50분 정도로, 눈이 쌓인 도로를 달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미쉐린 스노타이어는 눈 위에서 최상의 접지력을 발휘했고, 카이엔 터보S의 주행성능도 녹록치 않았다. 눈도 수분이 적어 얼지 않고 흩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몰았다.
높은 속도를 낼 수 없다는 환경적 제약이 있었던 탓에 엔진음이나 핸들링 감각, 접지력 등을 최대한 느꼈다. 그 중에서도 V8 엔진이 갖는 중후한 음색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소리를 "조각"한다고 하지만 포르쉐는 인위적인 장비로 소리를 "왜곡"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소음을 줄이기 위한 "노이즈 캔슬러" 등도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엔진음을 운전자 귀에 전달하는 게 포르쉐의 음색이라는 설명이다.
도로 대부분이 눈길이었지만 핸들링에는 여유가 있었다. PTM과 PSM 덕분이다. 특히 PTM은 통상 후륜구동으로 주행하다가 필요할 때는 전륜으로 토크를 배분, 눈길주행에 있어 높은 수준의 접지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된다. 여기에 전자식으로 좌우 흔들림을 조절하는 포르쉐 다이내믹 컨트롤 시스템(PDCC), 주행 역동성을 위한 포르쉐 토크 벡터링 플러스(PTV 플러스) 등이 기민하게 작동하면서 안정적으로 차를 잡아준다.
제동능력도 상당했다. 포르쉐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 시스템(PCCB), 카이엔 최초로 장착한 10피스톤 프론트 캘리퍼, 4피스톤 리어 캘리퍼(디스크 크기 전륜 : 420㎜, 후륜 : 370㎜) 덕분이다.
▲드라이브센터 드라이브센터에서의 세션은 크게 세 가지, 구체적으로 총 6개의 세부 카테고리로 구성했다. 준비차종은 역시 카이엔 터보S와 GTS다. 전자식 차체제어장치는 모두 기능을 해제했다. 미끄러지며 운전하는 게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각 카테고리는 전문 드라이버가 인솔했지만 주행 자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참가자가 자유롭게 각 코스를 충분히 경험하며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핸들링 트랙에서는 드리프트를 이용해 원을 그렸다. 얼음 트랙이어서 뒷바퀴를 흘리며 미끄러지듯 주행하는 드리프트의 메커니즘을 아주 간단하게 체득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슬라럼 구간 역시 인스트럭터는 출발시간만 알려줄 뿐 기술적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운전자 스스로 드리프트를 익혀야 하는 것. 처음에는 익숙치 않은 거동에 당황했으나 이내 드리프트의 묘미를 알아가며 슬라럼 구간을 통과했다. 포르쉐의 절묘한 핸들링과 가속을 몸으로 느꼈다. 얼음 위에서 드리프트를 가리켜 왜 "아이스댄싱"이라고 하는 지 이해했다.
가속 트랙은 카이엔의 폭발적인 가속과 안정적인 제동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세션이다. 차체제어장치 기능을 해제한 탓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뒤꽁무니가 좌우로 크게 미끄러지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정 속도에 이르면 제동 페달을 끝까지 밟아야 하는데, 눈길이라 제동거리는 조금 길었다.
포레스트 트랙은 랠리 방식의 코스였다. 상당히 긴 구간을 빠르게 이동하며 성능을 만끽했다. 코너에서 코너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역시 드리프트를 사용해 차를 움직였다. 어려움은 없었지만 얼음길이어서 미끄러지는 재미가 상당했다. 이어 동굴구간을 통과하는데, 이 코스는 포르쉐의 배기음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인스트럭터의 설명이었다. 실제 느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바람소리가 더 크게 나 아쉬웠다.
마지막 핸들링 트랙은 프로그램을 위해 만든 트랙을 몇 바퀴 도는 것으로 진행했다. 지금까지 체험한 드리프트 기술을 발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빠른 속도를 내진 못했지만 상당히 미끄러운 탓에 코너에서 차가 돌기를 반복했고, 몇몇 참가자들은 눈 방벽에 파묻혀 견인차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의 트랙을 도는 동안 마치 드리프트를 완전히 익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프로그램 이수 후에는 "포르쉐의 전설" 발터 뤼를의 택시 드라이브가 이어졌다. 47년생인 뢰를은 포르쉐 신차로 뉘르부르그링서킷 기록을 측정하는 베테랑 드라이버다. 70세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운전할 때 그는 어느 누구보다 천진난만했다. 뢰를이 운전하는 911 터보S에 올라타는 일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뢰를은 내내 여유롭게 운전했지만 그가 가진 기술은 실로 대단했다. 용기를 내 드리프트를 잘 하는 비법을 묻자 그는 갑자기 눈 방벽에 차를 부딪치며 "여유로운 코너워크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드리프트는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는 역동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움직이는 운전에 대해서도 역시 여유를 가지라고 강조했다.
▲소회
고성능차회사를 중심으로 최근 아이스 드라이빙 행사를 여는 일이 잦다. 그러나 각 브랜드마다 그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포르쉐는 자신의 유산과 함께 운전자의 운전능력을 높여주는 의미가 강하다. 그 중에서도 스포츠카 DNA체험에 집중한다. 브랜드 전통과 역사, 제품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물론 포르쉐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데 있어 체험만큼 강력한 수단이 없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 것이 눈밭이라도 말이다.
셸레프테오(스웨덴)=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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