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 도요타가 내부 개혁에 따른 회복기를 거쳐 이제 본격적인 도약에 나선다. 그간 엔저로 착실히 체력을 기른 도요타가 공격 경영으로 전환함에 따라 환율로 어려움을 겪는 현대차·기아차에 대한 압박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현지시간) 도요타 경영진이 "자기성찰"의 시기는 끝났다고 밝혔다며 이 회사의 그간 부활과 앞으로 도약 계획을 조명했다. 도요타는 14억 달러(약 1조5천500억원)를 투입해 중국·멕시코에 공장을 신축하는 계획을 지난달 발표하며 3년 만에 공장 신축을 재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요타의 도약을 이끄는 최대 무기는 세계적 규모의 플랫폼·부품 공용화 프로젝트인 "도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TNGA)다.
TNGA는 자동차 플랫폼과 부품을 대폭 공용화하고 공용 부품을 기존의 일본 국내 협력업체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플랫폼 3∼4개에서 전체 차종의 60% 가량을 생산해 신차 개발비를 약 20% 줄이고 수요 감소나 환율 변동 등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도요타의 목표다. 유자와 고타 골드만삭스 연구원은 도요타가 TNGA로 차량 대당 부품비 1천 달러(약 111만원)를 줄일 수 있으며, 이 중 절반은 고스란히 이익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도요타가 지난 3년간 준비해온 TNGA는 올해 하반기 하이브리드 차량 프리우스의 새 모델 출시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전체 생산 차량의 절반을 커버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몇 년간 TNGA 기반의 신차 출시 결과는 도요타의 도약 성공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애널리스트들은 전망한다.
애버딘 자산운용의 구보타 게이타 펀드매니저는 FT에 "도요타가 다시 도약을 해낼 수 있을지는 TNGA에 달려 있다"며 "새 프리우스가 첫 리트머스 시험지이므로 모두 흥분하면서도 초조하다"고 말했다.
앞서 2009년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현 사장이 취임한 이후 도요타는 회사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도요타는 차량 결함에 따른 대규모 리콜 사태 끝에 자동차업계 사상 최대인 벌금 12억 달러(약 1조3천억원)를 냈고 도요타 사장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직접 사과했다. 도요타의 안전 이미지가 무너진데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까지 겹쳐 도요타 매출액은 금융위기 이후 28% 감소하고 연간 적자는 4천370억 엔(약 3조9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도요타 영업이익은 2조7천505억 엔(약 24조6천억원)으로 전년보다 20.0% 불어나 2년 연속 최고 기록을 깼다. 물론 도요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적극적 통화완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 FT는 지난 2년간 도요타 영업이익의 약 23%가 환차익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도요타의 부활은 그동안 도요타 사장이 치열한 내부 개혁을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도요타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회사 경영 실태를 가차없이 비판했다. 도요타가 판매량만 광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고객과 소통이 단절되면서 많이 팔리지만 재미없는 지루한 차들을 쏟아냈다는 것이었다. 그는 리콜 사태의 원인이 규모 확장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효율화 중심의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을 폐쇄하고 3년간 공장 신축을 중단했으며, 일본 국내에서는 일자리는 유지하고 대신 장비·생산라인 지출을 줄였다. 많은 돈을 잡아먹는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에서 철수하고 한때 800가지에 이른 엔진 세부 모델 종류를 대폭 줄이는 등 "칼질"에 나섰다. 효율적인 차량 생산을 위해 기술자들에게 신차 초기 설계단계부터 다른 부문 및 협력업체들과 협조하도록 했다. 이에 전 경영진과 협력업체들은 반발했으나, 도요타 사장은 창업자 도요타 가문의 후손이라는 지위에 힘입어 어려운 결정을 강행해 회사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한 전직 임원은 FT에 말했다.
이제 도요타가 완전히 살아났지만, 일본 도요타 본사에서 여전히 자만감은 찾기 어렵다고 FT는 전했다. 한때 회사 경영 원칙이었던 정신없는 규모 확장은 이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임직원들은 도요타 사장 앞에서 "사상 최고", "1등" 같은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도요타 사장은 최근에도 베테랑 생산직 직원을 임원으로 발탁하고 협력업체에서 고위 임원들을 데려오는 등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도요타에 놓인 도전은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중국 등 신흥국 시장이다. 도요타는 작년 처음으로 중국 판매량 100만대를 넘겼으나, 판매량이 각각 350만대 이상인 폴크스바겐이나 제너럴모터스(GM)를 따라가려면 갈 길이 멀다. 중국에서 도요타는 현지 취향에 맞지 않는 모델을 선택하는 판단 착오를 했다고 하라다 사토미 IHS 오토모티브 연구원은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요타는 최근 신흥국 판매 부진 등으로 올해 판매량 목표 달성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국제 유가 하락의 여파로 러시아·중동 시장이 부진한 가운데 올해 1∼4월 판매량은 3.3% 감소했다. 반면, 북미 시장에서는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도요타는 일본에서 북미로 수출을 3년 만에 처음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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