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馬車 이야기④]태양을 품은 폭스바겐 페이톤(Phaeton)

입력 2015년08월25일 00시00분 송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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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와 폭스바겐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다. 현대차에 에쿠스가 있다면 폭스바겐에는 페이톤이 있다. 페이톤(Phaeton)은 폭스바겐의 모든 라인업 중 최고의 정점에 있는 모델로 폭스바겐 브랜드 위상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고급 세단이다.

 남 다른 품격을 갖추기 위해 폭스바겐은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손꼽히는 독일 드레스덴에 투명유리공장을 짓고 하루 30대만을 생산하는 한정 생산의 원칙을 지켜가며 완성시켰다. 특히 페이톤만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투명유리 공장의 생산라인은 모든 과정이 공개되며, 매우 조용하고 청결한 분위기다. 캐나다산 단풍나무 원목 마루가 깔린 바닥에는 먼지나 기름 한 방울 찾아볼 수 없으며, 작업장에는 기계소리 대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또한 흰색 작업복과 장갑을 낀 엔지니어들은 무인 컨베이어 시스템 위로 지나가는 각 공정을 손으로 조립한다.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을 통해 명차(名車)를 완성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페이톤 디자인은 폭스바겐 고유의 디자인 DNA가 적용돼 품위 있고 강렬한 느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페이톤의 자랑은 비행기 1등석에 탑승한 듯한 편안한 승차감이다. 페이톤 전 라인업에는 4륜구동 시스템이 기본으로 장착돼 뛰어난 접지력과 코너링 시 탁월한 주행 안정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차체는 모든 강철 요소들이 아연 도금돼 최고 수준의 강성과 진동 대응성, 안전성 및 내구성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주로 바람의 이름에서 차명을 선택해 온 회사로 유명하다. 하지만 간혹 신화 속 인물을 내세우기도 한다. 대형 럭셔리 세단 페이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이름인데, 태양의 신 아들이 탄 전차처럼 신이 타는 자동차라는 의미를 가져 대형 세단에 걸맞은 장중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버지 헬리오스를 찾아간 페이톤은 하루 동안 태양마차를 몰 수 있도록 요청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헬리오스는 페이톤에게 태양마차의 고삐를 넘겨주며 태양마차 길에 대해 설명해 줬다. "하늘이라고 마음대로 달려서는 안된다. 잘 보면 아버지가 달리던 조그만 마차바퀴 자국이 보일 게다. 그 위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정신을 아주 바짝 차려야 한다. 하늘은 늘 회전하고 있거든. 이때 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길을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늘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기서 헬리오스가 하늘에 내놓은 태양마차 길을 우리는 "황도"라고 부른다. 또 마차가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12개의 별자리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이 "황도 12궁"이다. 첫 번째 주인은 양, 이어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약 30도의 간격을 두고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과 물고기가 자리하고 있다. 지구에서 볼 때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하루에 약 1도씩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페이톤이 몰았던 태양마차는 어떤 마차였을까? 말 두필이 끄는 사륜마차라고도 하고,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스Ⅱ" 시(時)에선 이륜마차라고 표현돼 있는데 지금부터 마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마차는 바퀴수에 따라 이륜마차와 사륜마차로 나뉜다. 대표적인 이륜마차로는 기그(Gig), 카트(Cart), 커리클(Curricle), 카브리올레(Cabriolet), 핸섬(Hansom) 등 5종류가 있고, 사륜마차로는 코치(coach), 브로엄(brougham), 쿠페(coupe), 페이톤(Phaeton), 해크니(Hackney), 랜도(Landau), 컬래시(Calash), 빅토리아(victoria), 캐리지(Carriage), 옴니버스(Omnibus) 등이 있다. 


 모든 마차 중에서 페이톤(영어명 : 페이튼)이 가장 빨랐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스포티한 모양을 추구했지만 커다란 바퀴로 전복(顚覆) 위험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특히 좌석에 앉아도 좌우로 몸을 지탱할 격벽이 없어 빠르게 몰면 흔들려 추락할 위험이 컸다.

 이처럼 마차에서 파생된 페이톤이라는 명칭은 자동차 디자인 형성의 산파 역할을 한다. 원래 페이톤 형태의 마차는 운전석 뒤로 차체를 따라 종으로 시트가 마주보는 형태였지만 문을 열고 닫는데 불편해 뒷좌석을 1열만 만들게 된다. 미국에서 1912년 "트리플 페이톤"이라는 형태가 나왔는데, 3열의 좌석이 들어가도록 넓게 설계됐지만 2열만 넣어 뒷좌석 공간이 충분하게 설계됐다. 즉 뒷좌석에 좌석을 1열 더 추가해도 될 만큼 넓은 공간을 가진 자동차를 페이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페이톤 디자인 자동차들은 2차 세계 대전 초창기까지 유행했는데 페이톤 형태의 차로 유명한 것은 1925년형 스투드베이커 페이톤, 1941년형 뷰익 로드 마스터 4도어 페이톤이다.  

 귀족용 마차로는 "코치(coach)"가 손꼽힌다. 당시 고급 마차 생산지로 유명한 헝가리의 "코치"라는 도시명을 따왔다. 코치는 마차 지붕을 벨벳 또는 가죽으로 덮어 무게를 가볍게 하고, 중세보다 발전된 충격 완화 기술을 적용해 승차감을 향상시켰다. 코치의 가격은 장식이나 적용기술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지만 18세기를 기준으로 귀족용 코치는 약 1,000파운드 이하(약 2억5,000만원), 국왕용의 도금된 마차는 8,000파운드(약 20억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이런 마차들도 20세기 들어 자동차 보급으로 서서히 그 수가 줄어들더니 현대 들어선 관광용이나 장식용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 하나, 바로 자동차 디자인과 이름에 녹아들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라는 점이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페이톤이 몰았던 태양마차처럼 지금도 폭스바겐 페이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빛을 발산하고 있다. 

 송종훈(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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