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7월, 국내 자동차 역사에서 기록적인 일이 하나 벌어졌다. 르노삼성 SM5가 부동의 중형 강자 현대차 쏘나타 판매를 뛰어 넘었던 일이다. 당시 SM5는 월 판매가 9,687대에 달했던 반면 쏘나타는 6,977대에 머물렀다. 2000년 르노의 삼성차 인수 이후 줄곧 쏘나타를 위협하던 SM5가 당당하게 쏘나타를 뒤로 밀어낸 일이다. 물론 그 시기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벌여 쏘나타의 국내 공급량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 때 사건(?)은 현대차에 충격파를 던졌고, 르노삼성은 규모가 작아도 기본 제품에 충실하면 소비자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 SM5는 쏘나타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며 국내 중형 시장을 주도했다.
SM5가 떠오르자 가장 예민한 반응을 보인 곳은 역시 현대차였다. 지난 2005년 뉴 SM5가 나오며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입소문이 퍼지자 현대차는 당시 건설교통부(현재 국토교통부) 충돌시험에서 쏘나타가 최고 수준을 입증 받았다며 안전도에서 뉴 SM5에 밀린다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도 내놨다.
그리고 양사는 판매대수를 해석하는 입장도 달랐다. 지난 2005년 현대차는 쏘나타를 내수에 연간 9만3,000대를 팔았다. 같은 해 SM5는 6만2,000대가 소비자 선택을 받았다. 이를 두고 현대차는 "역시 쏘나타"를 외쳤지만 르노삼성은 쏘나타 판매의 절반이 LPG라는 점을 파고 들었다. 가솔린 자가용 수요만 보면 쏘나타에 밀리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 2007년 5월 SM5 가솔린은 6,243대가 판매된 반면 쏘나타 가솔린은 4,723대에 그친 일도 있다. LPG에 주력하지 않았던 르노삼성이 가솔린 경쟁 부문에서 쏘나타를 다시 넘은 셈이다.
이처럼 서로의 자존심을 세웠던 양사의 경쟁은 2009년 현대차가 YF쏘나타를 내놓으며 조금씩 엇갈렸다. 르노삼성이 3세대 SM5로 대항했지만 기아차가 K5로 SM5를 추격, 이른바 형제의 공격을 앞뒤로 방어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 결과 현대차가 YF와 NF 등으로 연간 14만대를 내수에 쏟아낼 때 SM5는 6만대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SM5는 2.0ℓ 가솔린 외에 1.6ℓ 터보, 1.5ℓ 디젤, 2.0ℓ LPe 도넛 등 엔진 다양화로 현대기아차의 공세를 막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데 최근 르노삼성이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한 때 쏘나타를 넘었던 과거 기억을 되살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전시장 옷을 바꾸고, 내년에 다앙한 신차를 쏟아내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특히 SM 시리즈 부활로 "30년 쏘나타"를 견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르노삼성도 역사로 보면 "SM 20년"이기 때문이다.
르노삼성 의욕의 중심에는 중형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겠다는 "탈리스만"이 자리잡고 있다. SM 시리즈로 편성해 쏘나타를 뒤로 밀어내겠다는 의지다. 중형이 엔트리카로 변모한 시장의 판도를 통째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결국 쏘나타가 무서워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소비자도 르노삼성의 그런 치열함을 바랬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야 경쟁이 살아나니 말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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