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체어맨 W가 등장한 때는 지난 2008년이다. 그 해 체어맨 W는 연간 6,600대가 판매돼 벤츠 DNA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게다가 경쟁이던 현대차 에쿠스의 5,207대를 넘으며 국산 대형 세단 지존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현대차가 2세대 에쿠스를 내놓자 판매는 2,700대로 주저 앉았다. 이후 내리막을 걷더니 지난해는 1,290대로 마감을 했다. 그 사이 에쿠스는 또 다시 제네시스 EQ900으로 옷을 갈아 입으며 대형 세단 지존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판매가 떨어진 이유는 세대 교체의 미완성이다. 체어맨 W보다 늦게 등장한 에쿠스도 이미 EQ900으로 대체되며 신차 효과를 누리는 사이 체어맨은 후속 차종 없이 8년을 버텨오고 있다. 대형차의 신차 교체 주기가 보통 6~7년임을 감안하면 이미 후속이 등장해야 했지만 개발비 부담이 발목을 잡으며 체어맨 W는 점차 계륵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쌍용차의 고민도 깊다. 후속을 내놓자니 엄청난 개발비가 부담이고, 그대로 놔두자니 판매가 신통치 않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게 "카이저"라는 새로운 브랜드다. 제품을 바꾸지 못할 바에는 상품성과 브랜드라도 바꿔 신차 효과를 노려보자는 속셈이다.
체어맨의 미래에 대해선 쌍용차 내부에서도 여전히 골치거리다. SUV 전문 기업을 표방한 상황에서 유일한 세단인 체어맨의 역할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어서다. 과연 체어맨을 유지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과감하게 단종하는 게 현명한 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저" 트림을 신설했다고 체어맨 판매가 갑자기 늘어날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갈 때까지는 간다"는 게 쌍용차의 판단이다. 카이저에 다양한 편의 기능을 추가하고, 담을 수 있는 모든 첨단 기능을 마련한 것도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본 제품의 변경 없는 트림 추가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실제 쌍용차도 체어맨 W에 대한 어려움은 가감없이 털어 놓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감을 말이다.
원래 체어맨은 1997년 쌍용자동차가 SUV에서 종합 완성차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여러 차례 대주주가 바뀌면서 개발이 지연됐고, 체어맨을 중심으로 계획하던 중대형 세단 라인업 계획도 사라졌다. 그러니 현상의 흐름이라면 체어맨도 단종되는 게 맞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하지만 판매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데다 공장은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수요가 없을 때까지 판매하자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후속 제품 없이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올 때까지 왔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과감하게 후속 신차를 내놓든지, 아니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단종 또한 검토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물론 내부적으로 지속과 단종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고민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미 단종하고, SUV 개발에 집중하는 방향 쪽으로 기울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데 "카이저" 트림을 내놓으며 제품 유지로 전략이 선회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서 쌍용차의 선택에 더욱 시선이 집중된다. 단종이냐, 유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 [기자파일]스타들의 애마, 사실은 연출된 파파라치?▶ [기자파일]OEM 국산차(?), 3만1,500대의 정체성▶ [기자파일]르노삼성 SM6, 서스펜션 논란의 진실은?▶ [기자파일]한국 대기업이 디트로이트로 몰려든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