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공동화(空洞化)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 중 하나다. 노동집약적인 특성이 강한 1차 산업에 종사하려는 젊은층은 줄어들고, 고연령층만 농촌에 남아 생긴 현상이다. 이와 함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특성상 농촌 지역의 수익 감소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이상으로 농촌 공동화를 걱정해 온 나라는 일본이다. 이미 70년대부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탓이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일촌일품(一村一品) 운동이다. 농민소득증대를 위해 1차 산업의 대표격인 쌀에만 의존치 않고, 과수를 식재한 것이 특징이다. 일촌일품 운동의 골자는 생산자가 직접 생산한 물품을 포장하고, 가격을 붙여 일본 전역과 전 세계에 유통하는 것이다. 전국 도로 휴게소(道の駅, 미치노에키)에 직매장을 운영하는 한편, 농가레스토랑, 가공공장 등을 만들기도 하는 등 농촌 협동조합의 육성 사례로 꼽힌다.
일본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일촌일품 마을은 큐슈 오이타현 히타시에 위치한 오오야마정(九州 大分県 日田市 大山丁)이다. 특히 지역 회사인 오오야마꿈의공방(おおやま夢工房)은 전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농촌 협동조합 기업의 중 하나다. 일촌일품으로 선택한 매실을 가공해 매실주를 만들었는데, 맛과 품질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일찍이 산토리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닛카위스키와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탄생한 매실위스키는 국제 주류품평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활약이 뚜렷하다.
오오야마꿈의공방은 매실주 외에 숙박과 온천 등 관광사업을 병행 중이다. 히비키노사토(ひびきの郷, 메아리 마을)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일종의 리조트다.
하지만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오이타현 소속임에도 후쿠오카 쪽이 가까워 렌터카 등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후쿠오카시에서 대략 1시간30분, 오이타시에선 2시간10분이 걸린다. 버스로 움직이면 후쿠오카에서 2시간30분, 오이타시에서 3시간 거리다. 다만 숙박 예약자에 한해 히타역(日田駅)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예약과정에서 미리 신청할 수 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큐슈자동차도로(九州自動車道)에 올라 남쪽으로 30분쯤 달리다보면 토스(鳥栖)분기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오이타자동차도로(大分自動車道)로 옮겨 히타ic(日田ic)에서 진출, 오오야마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이르는 길이 좁고 마을이 작아 넓은 도로에 익숙한 한국 운전자는 약간의 긴장감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핸들 운전이기 때문에 다소 까다로운 운전이 계속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소박한 일본 마을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오오야마가 가까워질수록 산골 마을 특유의 자연 경관도 아름다운 편이다.
내비게이션의 길안내에 따라 국도를 주행하면 어느새 히비키노사토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이를 기준으로 옆길로 오르면 매화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길이 나있다. 이 모든 나무들이 봄날 매화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댈 것을 생각하니 그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하다.
히비키노사토는 건물이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으며, 숙박, 요리, 온천, 공방 등을 구분해 놓았다. 우선 가장 안쪽에는 리조트형 료칸 아사모야(あさもや、아침안개)가 위치한다.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를 이용해 만든 건물이 단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내 역시 천연소재를 사용해 힐링이라는 테마에 잘 부합한다. 객실은 침대방인 양실(洋室)과 다다미와 침대로 구성된 화양실(和洋室) 등으로 구성했고, 방 안에서 간단히 요리를 할 수 있는 콘도형 객실도 존재한다. 객실에는 대부분 테라스가 붙어있다. 이 테라스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빼어나다.
일부 료칸의 경우 저녁식사를 방에서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아사모야는 옆 건물이자 식당인 히비키에서 아침과 저녁식사가 이뤄진다. 리조트형 료칸을 지향하고 있어 객실 내에 음식 냄새가 나면 쾌적하지 않아 식사 공간을 분리했다. 히비키에서는 주로 가이세키(懐石料理)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가이세키는 본래 술안주 위주의 손님 접대용 상차림을 일컫지만 보통은 정찬 코스 요리를 지칭한다. 일본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는 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계절에 따라 시각적인 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히비키의 가이세키에는 반드시 분고규(豊後牛)가 나오는데, 분고규는 분고 지역의 소고기를 이른다. 분고는 과거 오이타현에서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포함했던 곳으로, 현재도 그 이름이 남아 오이타를 대표하는 소고기로 인정받고 있다.
히비키의 2층에 오르면 온천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날 수 있다. 온천은 지역 특산품인 매실을 강조하기 위해 매실향을 첨가한 것이 특징이다. 이름은 나고리노유(なごりの湯)로, 나고리는 우리말로 "자취, 흔적"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인 욕탕과 노천탕이 혼재돼 있다. 노천탕의 경우 객실과 마찬가지로 히비키 협곡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눈이 즐겁다. 온천수의 온도는 기온 25.5℃에서 37.2℃며, 1분당 156ℓ를 뿜어내는 약알카리성 용천수다. 신경통, 근육통, 관절염, 오십견, 만성 소화불량, 냉증, 피로회복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회 입장료는 600엔, 숙박을 한다면 횟수에 제한없이 무료다. 여기에 원적외선 사우나도 숙박자에 한해 1인당 2회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히비키노사토의 맨 앞쪽에는 매실주 공장과 특산물 판매점인 우슈쿠(うしゅく)가 위치한다. 오오야마에서 생산된 매실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만큼 스스로도 최고의 매실주 공장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로 히비키노사토의 매실주는 매우 유명하다. 우슈쿠의 1층에는 다양한 매실주를 만날 수 있는데, 이 중 3년의 숙성과정을 거치는 유메히비키(ゆめひびき)는 2015년 일본매실주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특산품 상점의 2층에는 매실주 공장이 들어서 있다. 각 탱크마다 매실주의 숙성 시작일과 용량 등을 표시한다. 생산 전과정은 견학 유리창을 통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지켜볼 수 있다. 단체 관광객이 찾아올 경우에는 공장장이 직접 생산 과정 등을 설명하기도 한다.
히타시 오오야마는 만화 진격의 거인을 그린 이사야마 하지메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히비키노사토의 경우 그의 인기에 힘입어 "진격의 거인 상품"을 판매하고, 판매점 한 켠에 그의 서명이 새겨진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거인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마 하지메는 과거 한국의 일제 강점기 시절을 왜곡하는 등 우익 논란이 있어 한국에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점을 비춰봤을 때 판매점 안의 전시품들은 한국인에게 있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한편, 오오야마에서는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한 달간 매화축제(梅祭り)가 열린다. 올해로 36회째를 맞은 지역의 전통적인 축제다. 이를 기념해 특별 매실주를 출시하고, 불꽃놀이도 진행한다.
히타(일본)=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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