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시승한 차는 "푸조 508" 중에서도 1.6ℓ 럭스 트림이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차는 처음이어서 그 느낌이 무척 궁금했다. 게다가 푸조 또한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독일차에 비해 브랜드 입지가 약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오래된 역사가 주는 아이덴티티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며 살펴봤다.
▲디자인
왠지 프랑스 자동차라고 하면 예술적 감각이 돋보일 것 같다. 실제로 푸조와 시트로엥 디자인을 보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독특한 차들이 많다. 그런데 독특함은 개성이 강해 선택에 제한이 되기도 한다. 튀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그런 이유로 흐름을 이탈한 디자인보다는 무난함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푸조 508은 그 흐름을 어느 정도 맞추면서 프랑스만의 독특한 감성도 가지고 있다. 외관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으로 세련미를 더했다고나 할까? 전면에는 가벼워 보이지 않는 듬직함이 있고, 뒤태는 심플한 테일램프로 마무리했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으나 전방 풀 LED 램프의 날렵한 디테일과 사자 발톱 자국을 표현한 테일 램프는 푸조만의 개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실내로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공간이 넓다. 뒷자석도 넉넉한 편이어서 가족들을 태우고 다녀도 불편함이 없다. 센터페시아에 있는 모니터는 터치스크린 방식이라 다루기 편하고, 내비게이션도 국산이 내장돼 사용하기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이 차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세단이지만 포르쉐와 같은 스포츠카처럼 시동버튼이 왼쪽에 자리하고 있어 처음 탔을 때 생소한 느낌이 있었다. 첫날은 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오른쪽에서 시동버튼을 찾곤 했는데, 그래도 익숙해지면 크게 상관없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수납공간이다.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수납 공간은 너무 비좁다. 핸드폰 하나 편하게 둘 곳이 없다. 기어박스 아래 흔히 볼 수 있는 컵홀더 공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컵홀더가 있는 곳에는 꼭 음료수가 아니더라도 핸드폰 등과 같은 소형 물품을 놓을 수가 있는데 508은 기어박스 부근에 컵홀더가 없는 대신 비상등 옆에 컵홀더가 자리했다. 버튼을 누르면 컵홀더가 밖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비상등 양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 BMW에 이런 식으로 컵홀더가 달려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 생각이 났다. 컵홀더도 사이즈가 작은 편이라 조금 큰 텀블러나 컵은 들어가는 데 무리가 있다. 그리고 위치가 애매해서 운전석 쪽 컵홀더에 음료를 올려 놓으면 중앙 모니터가 가려져 정보를 확인하거나 내비게이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좀 아쉬운 부분이다.
▲성능
시승차는 유로6에 맞춘 1.6ℓ 블루 HDi 디젤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인 ETA6를 탑재하고 있다. 디젤 엔진에서 말이 많은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배출을 현격하게 줄였으며 새로운 6단 자동변속 시스템은 부드럽고 빠르게 변속되면서 민첩하게 반응한다. 제원상 수치는 120마력에 30.6kg.m의 토크를 가지고 있다.
천천히 차를 움직여 보았다. 스티어링 휠의 느낌은 꽤 무거운 편이다. 초반 움직임도 상당히 묵직하게 세팅돼 있다. 다소 가벼운 느낌의 차를 타다가 508을 경험하니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졌다.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치고 나간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안정감도 함께 올라간다. 가속감도 1.6 배기량치고는 괜찮은 편이고, 노면의 충격도 잘 흡수하는 편이라 운전자 피곤을 덜어주는 세팅이다.
실제로 필자는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면 허리가 아파오는 증상이 있는데, 508은 장시간 운행해도 그런 증상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그날따라 몸 상태가 좋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만족스럽다. 코너를 돌 때에는 만족감이 조금 더 올라간다. 약간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도 지면을 꽉 움켜쥐고 잘 돌아 나간다. 달리기 실력은 무난한 편이고 핸들링 실력은 수준급인 느낌이다.
또 하나 수준급인 게 있다. 바로 연료 효율이다. 3박4일간 320㎞ 정도를 타면서 표시 연비인 14.2㎞/ℓ보다 높은 14.8㎞/ℓ의 효율을 보였다. 내가 차를 받았을 때 2,500㎞ 이상 탄 상태였는데 평균 연비가 15.4㎞/ℓ 로 표시돼 있었다. 실제로 운전해보니 고속도로에서 마음먹고 정속 주행하면 20㎞도 거뜬하다.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정숙성은 어떨까?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제 아무리 디젤 엔진이 좋아졌다지만 디젤의 특성상 떨림과 소음은 완전히 제거하기 힘들다. 얼마나 줄였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요즘 나오는 디젤 엔진은 예전에 비해 떨림과 소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 해도 집중하고 신경써서 들으면 가솔린 엔진과 다른 디젤 특유의 소리와 진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