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었던 고물차? 천만에 '작품'이지요

입력 2016년03월22일 00시00분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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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와 서울시립미술관이 특별한 전시회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시즌2: 동행"을 열었다. 폐차 직전의 자동차에 예술가의 상상력을 불어넣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한데 모은 것.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각과 조형언어를 소개 하고자 하는 게 이번 전시의 취지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주제는 "동행"이다. 12명의 작가들은 수명이 다한 자동차가 가진 사연을 바탕으로 차와 차주가 함께한 삶을 보여주고 "산업화", "여정", "이동성" 등과 같은 개념을 드로잉, 퍼포먼스, 조각, 비디오 등 다양한 수단으로 조형화했다. 

 전시는 크게 "자동차를 매개로 한 특별한 추억"과 "자동차가 환기하는 삶과 문화의 의미",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계문명과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 등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김기라-김형규 작가의 협업작 "잘자요 내사랑(Good bye my love Tra!!)"이다. 1995년식 엘란트라에 도색작업을 거쳐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념비로 만들었다. 전시장에는 주인의 추억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상과 360도 카메라로 자동차의 마지막 주행 풍경을 기록했다. 차주이자 사연 신청자 손기동 씨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첫 사랑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엘란트라를 구입했다고 한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한 여행을 통해 추억을 쌓았고, 덕분에 첫 사랑과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고 말한다. 손 씨는 작품을 통해 "(엘란)트라야 그동안 참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재영 작가의 "다운라이트 메모리 시뮬레이터(DownLeit Memory Simulator Vol.1)"의 사연은 아련하다. 작가는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사연자의 어머니가 몰던 1998년식 쏘나타3를 기억환기장치로 재창조했다. 기어모터와 엔진, 멀티채널영상을 조합해 제작한 이 작품은 와이퍼의 움직임과  창 위에 투사된 풍경, 작게 울려 퍼지는 실내 라디오 소리, 빗물냄새와 어머니의 화장품 향기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심리를 떠올리게 한다.


 1995년식 그레이스6밴의 실내를 꽃으로 가득 채운 이주용 작가의 "창 너머 기억"의 사연은 이렇다. 전북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사연자의 장모님이 처음 구입한 그레이스는 지금의 아내인 딸이 물려받은 이후 아내의 취업과 이사, 상견례, 사연자의 결혼과 첫 딸의 출산까지 늘 함께 있었다. 2대에 걸쳐 가족의 시간을 기억하는 매게체였던 것. 작가는 내부를 비워내고 들꽃이 가득한 꽃밭을 만들었다. 여기에 2개의 문을 추가 제작해 총 6개의 문에 투사식 홀로그램을 설치했다. 녹색 빛으로 재현된 불특정 인물들이 가족들을 연상케 한다.     


 전준호 작가는 "타틀린, 코발트 블루, 나부의 쏘나타"를 통해 독특한 시각을 어김없이 표현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1994년형 쏘나타2를 매개로 두 세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40대 가장의 사연에 주목, 일상의 사물로 촉발되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오래된 쏘나타2를 해체해 철과 알루미늄, 나무, 전기 모터 구동장치를 더해 키네틱 조각의 형태로 작품을 완성했다.


 정연두 작가의 다층 사진 콜라주 작품 "여기와 저기 사이"는 탈북민을 주제로 삼았다. 1994년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사연자는 당시 남한의 거리를 가득 채운 국산 자동차에 큰 인상을 받았다. 북한의 대도시 함흥에서도 흔치 않은 고급 승용차가 거리를 줄지어 다니는 것을 보고 믿겨지지 않았다는 것. 작가는 1994년 현대차와 거리의 풍경을 카메라로 촬영해 모으기 시작했다. 작가는 각각 아크릴판에 배접한 11개의 이미지를 1㎝ 간격으로 겹쳐서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재구성 했다. 작품 안쪽에는 보이지 않게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해 사연을 제공한 새터민의 인터뷰를 틀어놓은 게 특징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월급을 쪼개 구입한 1994년 식 유로 엑센트를 처분하지 않고 23년 동안 함께한 사연자의 이야기는 김상연 작가의 "길" 이라는 설치작 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차체부터 계기판, 스티어링 휠, 손잡이, 기어 등 손때 묻은 부품을 해체 후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재구성했다. 사연자의 "첫순 간"을 함께한 함께한 엑센트의 이야기는 수 천개의 활자로 부품 사이사이를 채웠다. 작가는 사연자의 달려온 길을 목적지로 향하는 도로가 아닌 차와 함께한 여정 그 자체로 해석했다.


 일명 "각그랜저"로 불렸던 1991년식 그랜저 2.0은 "블랙스타"라는 이동식 플랫폼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홍원석 작가는 오래된 각그랜저를 아트택시로 변신시켜 서울 동북부 5개구 지역을 직접 운행해 불특정 다수를 만났다. 요금 대신 소소한 기념품을 받고, 승객들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서 동북부지역 변화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아트 택시는 전시 기간 동안에도 동북부 5개구의 특정 공간에서 세미나, 영화상영, 공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골판지를 활용한 민우식의 "사이클로이드 스크린 휠", 현대차 공장 시설 내부를 로봇의 시선으로 촬영한 2채널 미디어 작품인 박경근의 "1.6초", 싼타모의 라디오 부품을 수 천 개로 분해해 재구성한 김진희의 "천개의 기억", 리베로의 운전대와 7,000의 나침반으로 만든 김승영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부부의 고단한 삶과 함께한 포터를 사막 속에 핀 생명의 모습으로 표현한 박문희의 "사막에서 핀 생명" 등 12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소재와 시각으로 동행자로서의 자동차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자동차는 오늘날 첨단기술의 결정체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차는 매순간마다 함께하는 동행자이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깃든 노스텔지어의 의미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시즌2: 동행"은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에서 내달 21일 까지 열린다. 이어 5월4일부터 8월7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관람료는 무료.

 김성윤 기자 sy.aut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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