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자동차 배출가스가 대두된 현대 사회와 자동차업계에 있어 "친환경"은 이미 거대한 흐름이다. 자동차를 발명한 이래 140여 년간 지구를 지배한 내연기관의 종말은 벌써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분위기다. 그 대안은 단연코 전기동력이다. 인류의 생활 전반에 뿌리를 내린 에너지다. 그러나 일순간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서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전기동력을 이용한 차들이 내연기관의 역할을 대신해 나간다. 하이브리드는 그 과도기에 있는 기술이다. "잡종"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의 내연기관과 미래의 전기모터를 동시에 담고 있다.
기아자동차 니로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과 함께 친환경의 선봉을 자처한다. 미래 먹거리로 친환경을 지목한 만큼 앞으로 다수의 친환경차가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니로는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동력계까지 갖춘다. 아이오닉은 전기차도 라인업에 포함하지만 기아차는 쏘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과연 니로는 기아차 미래 먹거리의 포문이 될 수 있을까. 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소형 SUV 니로를 시승했다.
▲디자인 기아차는 확실히 SUV 만들기에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 2014년 신형 쏘렌토를 시작으로 지난해 신형 스포티지, 올해 니로까지 과감한 디자인이 화제다. 최근 연료효율을 위한 공기역학 구조와 보행자를 보호하는 차체 구조는 디자인적 한계를 지녔지만 기아차에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형태지만 그 대범함에 대해선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전면의 호랑이코 그릴은 기아차의 정체성이다. 스포티지보다 아담하지만 캐릭터를 살리기에 충분하다. 눈 꼬리가 위로 쭉 뻗은 헤드 램프도 개성이 뚜렷하다. 후드의 굴곡 또한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 보는 재미가 있다.
측면은 다부지다. 2,700㎜에 이르는 휠베이스는 전체적인 비율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볼록 튀어나온 휠하우스도 재미있는 요소다. 시승차는 18인치 타이어를 끼웠는데, 이 차가 단순히 연료효율만을 위한 차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뒷면은 꽤 세련됐다. 스포티지의 경우 약간 복잡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니로는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눈에 걸리는 게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하단의 크롬 장식은 SUV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머플러는 차 바닥 밑으로 숨겼다. 후방카메라 또한 와이퍼 중심 아래에 넣어 불필요한 시선 분산을 막았다.
실내도 질감이나 디자인의 향상을 엿볼 수 있다. 적절한 블랙 하이그로시 사용으로 고급스러움을 표현했고, 직선 디자인을 가미해 작은 차여도 시원한 맛이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폭 쌓이는 느낌을 주는 콕핏 구조다. 다만 많은 숫자의 스위치는 여전히 아쉽다. 스위치 글자나 멀티미디어 모니터 상에 사용하는 글자도 조금 더 세련된 폰트로 바꿨으면 좋겠다. 요즘 스타일은 아니다. 스티어링 휠에는 무려 12개의 버튼이 있는데, 운전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실내공간은 넉넉하다. 작은 SUV임에도 휠베이스를 길게 확보한 덕분이다. 레그룸이나 헤드룸 모두 불편함이 없다. 뒷좌석도 쾌적하다. 성인 남성이 여유롭게 타고 내린다. 다만 시트에 앉았을 때의 느낌은 다소 단단하다. 북미를 주력시장으로 하지만 유럽의 감성을 덧입혀서일까.
▲성능
하이브리드 전용 동력계를 얹었다. 아이오닉과 동일하다. 최고 105마력, 최대 15.0㎏·m의 힘을 내는 1.6ℓ GDI 엔진에 36마력을 보조하는 32㎾의 전기모터를 조합했다. 변속기는 하이브리드 전용 6단 듀얼클러치다. 7단이 아닌 6단을 얹은 이유는 6단의 동력전달효율이 더 좋기 때문이란 게 회사측 설명이다. 무게가 6단이 더 가볍다는 점도 고려했다.
통합 주행모드를 도입하고, 기본적으로 에코와 스포츠 두 모드를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하이브리드이지만 최대한 내연기관의 동력구성 및 주행모드와 흡사하게 구성한 점이 특이하다. 보통의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 쓰임새를 강조하기 위해 "전기차 모드"를 마련하거나 전원이 들어왔다는 의미로 "레디"라는 문구를 강조하는데 니로에선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기술적으로 생소한 하이브리드의 한계를 지우기 위해서다.
출발할 때도 전기모터만 "우웅" 울리기보다 엔진이 돌아가는 느낌을 동시에 준다. 즉각적인 토크가 매력적인 전기동력 활용도 중요하지만 운전자에 익숙한 출발감성을 구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 물론 전기모터만으로도 출발은 가능하다.
속도를 올리는 일에도 전기모터와 하이브리드는 꾸준히 동력을 교환한다. 전환 시 약간의 이질감이 나타났던 점도 훌륭하게 잡아냈다. 친환경 제품군을 향한 기아차의 자신감이 괜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이렇게 빠르다.
단단한 하체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국산차는 물렁하다는 선입견이 있기 마련인데 니로는 완벽하진 않아도 상당하게 유럽차와 닮아 있다. 이를 두고 현대차그룹 내 친환경 제품군을 담당하는 윤성훈 PM(프로덕트 매니저)은 "개발단계에서부터 유럽을 지향했다"며 "이는 니로에 무조건 유럽차의 감성을 이식해야 한다는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의 의지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즉, 니로를 시작으로 기아차에서도 비로소 운전의 즐거움을 얘기할 때가 왔다는 것.
실제 니로의 움직임은 굉장히 경쾌하다. 두 동력원의 특장점을 제대로 버무렸다는 생각이다. 칭찬 일색인 건 정말로 칭찬할 수밖에 없는 제품력 덕분이다. 하이브리드는 심심하다는 고정관념도 이제는 옛말이다.
스포츠 모드로 달리는 방법을 달리했을 때는 약간의 감동도 있었다. 예전처럼 흉내만 내는 스포츠 모드가 아니다. 엔진 사운드는 풍부해지고, 에코 모드에서도 묵직함을 줬던 스티어링 휠은 손에 힘을 더욱 들어가게 했다. 비어만 효과가 니로에서 터졌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아 좌우 롤링이나 상하 움직임도 적다. 단단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효율은 70여㎞를 주행한 결과 ℓ당 17.4㎞를 기록했다. 18인치 타이어의 복합효율은 17.1㎞/ℓ로, 오히려 실효율이 높은 걸 알 수 있다.
차음대책에 만전을 기했다고 하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노면소음이나 풍절음은 약간 거슬린다. 니로는 분명 잘 만든 차이지만 기아차라는 대중 브랜드의 한계도 명확한 셈이다.
또 하나의 불만은 제동력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느낌이 유쾌하지 않다. 밀리는 느낌은 물론 잘 안밟히는 것 같다. 윤성훈 PM은 "내연기관의 제동이 직접적인 반면 제동 시 에너지를 회수해야 하는 친환경차의 제동장치는 페달과 제동 시스템 사이에 IBAU(Integrated Brake Assist Unit)가 위치해 제동 이질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제동능력은 내연기관보다 친환경차가 더 좋다는 시험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세대 회생제동 시스템을 개발중이지만 더 많은 에너지 회수를 목표로 하고 있어 이후에도 이질감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역동적인 하체와 운동성을 반감시키는 제동 이질감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총평 기아차는 이례적으로 언론 시승회에 니로의 초기 계약상황을 알리면서 순조롭게 인기몰이를 시작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분명 SUV 형태의 니로는 아이오닉과 비교해 현재 자동차시장의 트렌드에 더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이 담보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니로는 하루 150대 이상의 계약대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할 때 연간 4만 대 판매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게 김창식 기아차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계약상황을 소상하게 밝히는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이 차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기아차의 불안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성공의 확신을 주기엔 소형 하이브리드 SUV라는 시장 자체가 생소한 탓이다. 따라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선구자 지위에 있는 만큼 니로의 성패는 기아차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기아차는 하이브리드 SUV라는 이름보다 스마트 SUV라는 마케팅 용어로 소비자가 느끼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는지도 모르겠다. 성능이나 차 안에서의 인상, 실제 움직임 역시 하이브리드의 흔적은 크게 없다. 그러나 니로는 기대 이상의 제품이다. 시승에서 경험한 건 니로의 충분한 제품력이었다.
앙평=박진우 기자 kuhir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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