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가 지난 2011년 선보인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정통 SUV만 다루는 회사의 새 방향성을 제시했다. "도심형 SUV"라는 컨셉트를 바탕으로 고급감을 부여한 것. 도시 이미지와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레인지로버"를 융합한 크로스오버 성격을 지닌다.
이보크의 주 무기는 디자인이다. 2008년 북미모터쇼에 공개된 LRX 컨셉트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디스커버리, 레인지로버 등 주력 제품보다 날렵한 외관, 차체와 색을 달리한 지붕, 사방을 검게 둘러싼 듯한 창 처리는 양산형이 공개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더불어 재규어랜드로버의 동력계 다변화 정책에 따라 새 심장, "인제니움"을 부분변경과 함께 탑재한 점은 "회춘"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스타일 외관은 거의 유지하되 신차효과를 낼 수 있는 정도만 개선했다. 전면부는 램프와 그릴의 그래픽이 달라졌다. "W"형태의 LED 주간주행등을 채택해 전보다 간결하면서 세련됐다. 커버 위로 올라간 안개등은 얇아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측면은 휠 디자인이 바뀐 것 외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라인은 랜드로버 제품 가운데 유일하게 기울기를 만들었다. 지붕을 따라 흐르는 곡선은 이보크가 지닌 곡선 중에 가장 길다. 후면부는 전조등과 마찬가지로 테일램프를 재설정했다. 와이퍼는 길게 뺀 스포일러 안쪽에 배치해 깔끔한 뒷태를 연출했다.
실내 역시 큰 변화는 없다. 수평형 대시보드 안에 6각, 8각 등의 다각형 프레임으로 스티어링휠, 모니터, 기어레버 등 각 조작부를 묶었다. 8인치 터치스크린을 구동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각 조작 버튼은 직관적이다. 센터페시아 아래로는 시동을 걸면 솟아오르는 다이얼식 기어 등 주행에 필요한 스위치를 구성했다.
편의품목으로 카메라를 통해 사방을 살필 수 있는 어라운드 뷰 시스템을 장착했지만 화질과 사용자 환경이 아쉽다. 여러 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앞좌석은 열선만 제공한다. 여름철 유용한 통풍기능은 없다.
뒷좌석은 머리와 다리 공간은 여유있지만 등받이 각도가 세워져 있어 다소 불편하다. 트렁크는 "제스처 테일게이트"라 불리는 품목을 통해 범퍼 아래에서 발을 흔드는 동작으로도 개방이 가능하다.
▲성능 새 이보크의 가장 큰 변화는 동력계다. 재규어 XE가 먼저 얹은 인제니움 엔진을 이식한 것. 유로6 기준을 충족하는 직렬 4기통 2.0ℓ의 평범한 형식이지만 회사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잡았다. 그 중 주력인 디젤은 최고 180마력, 최대 43.9㎏·m를 발휘한다. 배기량과 최고출력이 전보다 200㏄, 10마력 줄었지만 토크가 1.1㎏·m 증가했다.
엔진 성능은 2t에 가까운 차를 끌기엔 모자람이 없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 시간도 9초면 된다. 고효율을 위한 변속기는 9단 자동으로 예전과 같다. 그러나 변속충격은 단수를 생각했을 때 의외로 크다.
하체는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설정이다. 지상고가 낮지 않아 운전 자세가 높아졌지만 전반적인 주행질감이 안정적으로 와닿는 이유다. 무거운 차체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제동력도 제법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만큼 적극적인 소음, 진동 대책을 마련해 높은 정숙성을 보인다.
이보크는 도심형 SUV에 걸맞게 모노코크 방식의 차체를 쓴다. 그러나 온몸으로 느껴지는 차체 강성은 프레임 못지 않다. 오프로드 주행에서 자주 맞이하는 차체 비틀림에 대응한 것. 덕분에 천장은 별도의 프레임이 없는 파노라마 선루프를 얹을 수 있었다. 나아가 랜드로버는 이보크에 고강성 차체를 요구하는 컨버터블 버전을 추가함으로써 자신감을 표현했다.
포장이 안 된 평지에 진입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오프로드 주행에 나서봤다. 폭우가 내린 직후라 노면은 미끄러웠고 거칠었지만 나름 경쾌하게 달릴 수 있었다. 랜드로버가 오랫동안 숙성시켜왔던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과 4륜구동 시스템 등이 상황에 따라 구동계를 잘 조율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을 만난다면 500㎜ 깊이까지는 무리없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에서는 전·후진 상관없이 저속주행장치가 활성화되면서 페달 조작 없이도 속도를 유지한다.
인증받은 연료 효율은 복합 13.8㎞/ℓ, 도심 12.1㎞/ℓ, 고속도로 16.7㎞/ℓ로, 실제 효율은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총평 새 이보크는 지난해 10월 단정된 얼굴, 새 심장을 통해 상품성을 강화했다. 이에 반해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의 개선폭은 그리 크지 않은 모습이다. 부분변경인 만큼 변화 폭은 적었지만 달리 접근하면 원작의 완성도가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비자 반응도 제품을 따라가고 있다. 이보크의 올해 상반기 판매대수는 1,03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834대보다 약 23.9% 올랐다. 브랜드 성장률(68.4%)에 비하면 적지만 브랜드의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제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적이다.
가격은 6,600만~8,220만원.
구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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